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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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성령충만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2)


 요즈음은 시기상 일년 중에서도 하루 해의 길이가 가장 긴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는데,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주님을 위해 더 열심히 충성봉사해야겠다고 다짐해보게 됩니다.

 모든 크리스찬들이 예수님의 최후의 분부대로 다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네가지 비결이 있는데 첫째가 순종하는 것이고(행 5:32), 둘째가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눅 11:13), 셋째는 갈급히 사모해야 하고(사 44:3), 넷째는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야 한다고(행 2:38) 말씀했습니다.

 성령론의 권위자인 토레이(K. A. Torrey) 박사는 성령충만함에 대한 일곱가지 과정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할 것, 회개하고 죄를 버릴 것,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를 버렸다는 것을 공중 앞에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을 것, 순종할 것 즉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항복하며 무엇이나 명령에 따를 것, 거룩한 욕망으로 갈급히 사모할 것, 명확하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 성령께서 한 약속을 믿고 또 이루어 주실 것을 확고히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순종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뜻과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것일까요?


 1. 영혼 구원에 동참함으로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첫째가는 순종은 하나님의 영혼 구원 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행 5:32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전도하지 않고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은 어쩌다 성령충만을 받는다 해도 얼마 안 가 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전도)은 크리스찬의 확실한 최고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마 28:19, 20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는 지상명령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동일하게 주신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눅 24:47, 48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행 1:8에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겠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만을 얻기 위함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도 지옥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것도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부름받은 목적도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에 무관심하고 기존 크리스찬들에게만 설교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목적도 멸망할 영혼 구원을 위해 세운 것이지, 정치 운동이나 구제 사업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고전 12:28에 보면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다 영혼 구원과 관계된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을 위해 마음의 부담도 없고, 눈물도, 희생도 없다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도 없고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의미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명령, 즉 영혼 구원을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앞에 두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하는 사람이 되기 원하면서도 이를 위해 희생도 헌신도 하지 않고, 그것을 생활의 첫 자리에 두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같은 사람은 약 1:8 말씀과 같이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영혼 구원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병원을 세우거나 학교를 세우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예배당만 잘 짓고 장식하기 위해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요 6:38-40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하는 것도 영혼 구원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2.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영혼 구원에 힘쓰므로 순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의로운 생활에 힘쓰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영혼 구원에 힘쓰는 사람도 매일의 생활에서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의로운 생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고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순종이란 율법의 의문이 아닙니다. 술, 담배하지 않고 남보기에 착하게 산다고 다 성령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영혼 구원보다 정치 참여나 사회 개혁 등의 활동을 더 중요시 하는 크리스찬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을 마치 의로운 생활이나 선행을 가르치는 것인 줄로 아는 사람이 많고, 교회 헌금은 자선사업이나 사회 개량을 위해 써야 되는 줄 아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어느 등대지기가 등대의 불빛을 밝혀서 지나가는 선박들의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선박의 파선을 막아주고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느날 밤 공부하다가 석유가 떨어졌다고 애원하는 학생에게 석유를 퍼주고 날씨가 추워서 얼어 죽게 되었다고 사정하는 사람에게 퍼주고 해서, 석유가 떨어져 등대의 빛을 비추지 못하여 여러 척의 선박이 암초에 부딪쳐 가라앉으면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고 합시다.

 정부에서 그 사람을 체포해다가 심문할 때 착한 일을 위해서 석유를 사용했다고 그 사람을 용서해 줄까요? 결코 용서 못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도 지옥갈 영혼 구원하는 데 최선을 다 해야지, 그 힘을 다른 데 허비하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영혼 구원과 관계된 일에 우선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영혼 구원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의 최고 본질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모든 교회와 크리스찬들은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불타 올라야 합니다.

 복음을 빨리빨리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떡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공급하려는 마음은 없이 자기들만 말씀을 깊이 연구한다고 기뻐하고 자만한다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위선적인 크리스찬이 되기 쉽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영혼 구원하라는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생활의 깊은 변화를 가르치면서도 영혼 구원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아무리 성별된 생활을 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해도, 영혼 구원에 무관심하거나 힘쓰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 경건이나 성경 지식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능력있는 증인이 되기 위하여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키 위하여 성령충만을 간절히 구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능력있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하여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뜨겁게 부르짖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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