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요 1:47-51

제    목 : 칭찬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


에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가을은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과 만나셨으니 특별히 칭찬하신 사람이 있고 특별히 저주하고 미워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같이 사랑 많고 인자하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무리들까지 위하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렇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분인데도 예수님답지 않게 격분하여 저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이 칭찬한 사람과 저주한 사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눔으로 우리의 생활 모습을 점검하고 지침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에수님이 칭찬한 사람

예수님이 감탄하며 칭찬한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과 진실한 사람입니다. 요하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성경에 예민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하고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는 때 예수님은 대뜸 "보라 이는 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하고 중심을 꿰뚫어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란 다나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할 때 "빌립이 너를 부르기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의심이 다 없어지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도다 해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 중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무척 사랑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하는 칭찬은 보통 칭찬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자기 정원이나 무화과 밭에 나이 못보는 은밀한 장소에서 나라를 걱정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는데 예수님은 그의 이같은 평소의 생활 자세를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외식하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남들 보는 데서만 기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거짓과 외식의 없고 간사가 없는 진실한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지금도 진실한 사람을 찾으시고 진실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가십니다. 세상에서도 진실한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까? 주인은 진실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창고 열쇠를 맡길 수 있지만 거짓된 사람은 아무리 재주가 좋고 학벌이 좋고 인물이 잘났어도 중요한 물건, 비밀 서류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간사함이 없고 중심에 진실함을 간직한 사람을 찾고 계시고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중요한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무엇보다 나다나엘 같이 거짓이 없고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 없고 거짓과 외식만 일삼는다면 이미 그는 마귀의 종이요, 마귀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거짓이 아비이기 때문입니다(요 2:44). 사도 바울도 자신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가 제일 먼저 가져야 할 성품은 진실입니다.

진실한 사람도 실수할 수 있고 죄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양심의 고통을 느끼고 슬퍼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거짓된 사람, 위선자는 양심의 고통이나 죄에 대하여 애통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양심이 이미 화인 맞았기 때문입니다.

딤전 4:1, 2에서 "후일에 이런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거짓말하고 양심이 화인 맞은 위선자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결국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 '화인(Hot iron)이란 말은 불에 벌겋게 달군 쇠도장을 말하며 양심이 화인 맞았다고 하는 것은 죽은 양심, 마비된 양심을 의미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꿈에라도 진실함을 잃지 말라. 꿈에라도 거짓되었으면 통회하라'고 했으며, '사람이 꼭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질실할 필요는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마음에 들고 예수님의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려면 간사가 없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도 진실하게, 기도도 진실하게, 설교도 헌금도 다 진실한 마음으로 햐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됩니다.


2. 예수님이 저주한 사람

그렇게 인자하신 예수님도 가중히 여기신 나머지 저주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마 23:12-29에 "화 있을진저"하는 저주가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그들은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인데 그들은 속과 겉이 다른 위선자(hypocrite)들었습니다. '외식'이란 말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란 뜻이며, 거짓말쟁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 용서받지 못할 죄가 바로 '외식'과 '위선'의 죄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 온 여인도 용서하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고 했고 일곱 귀신이 들려 창녀노릇하던 여인도 용서하고 훌륭한 성도가 되게 했고 흉악한 강도도 죽기 전에 회개할 때 용서해 주시며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하게 말도 하고 거룩한 음성으로 기도도 잘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서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는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책망하며 저주했습니다.

차라리 창녀, 세리, 강도가 하늘나라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님 앞에 나쁜 그대로, 죄인 그대로 나왔지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명작으로 꼽히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이중적 성격을 잘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동네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지킬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많이 구제하고 불쌍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등 너무도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어서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한 나머지 천사가 사람으로 나타난 분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밤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강간사건, 방화, 도둑, 소녀 유괴 등의 끔찍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그 범인이 잡히기를 바랬는데 범인이 체포된 다음에 보니까 바로 천사같다고 하던 지킬박사였습니다. 왜냐하면 카알경이란 사람이 단장에 살해되었는데 그 단장을 바로 지킬박사의 친구이며 변호사인 엔더슨이 지킬박사에게 준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지킬 박사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지킬 박사의 집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까 지킬 박사가 자살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지킬 박사는 약을 먹고 밤마다 하이드란 이름으로 가장하여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지킬박사에서 하이드로 변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면 하이드와 같이 되고 성령과 진리의 지배를 받으면 지킬박사같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같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거짓과 위선을 조심하고 중심에 진실함과 솔직함을 지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 5:1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한 말씀에서 '청결'이란 말은 '카타로스'(Katharos)인데 '순수한' '단순한', '위선이 없는'그런 뜻입니다.

한마디로 나다나엘과 같이 간사함이나 위선이 없는 마음의 눈이라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어느 명문가에 한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웃음짓는 모습이지만 다른 한쪽에는 교만하고 눈을 가재미 눈처럼 치켜 뜬 아주 흉악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모습의 동상을 세웠느냐면 그 집에 일하던 하인 하나가 주인이 무슨 명령을 내러면 앞에서는 '예, 예'하고 웃으면서 아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눈을 흘리기도 하고 아주 오만 불손한 태도를 보이더랍니다. 이것을 안 주인이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하인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말 것을 교훈하기 위해 그 하인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시 51:6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 했는데 하나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실족하는 일이 있더라도 얼른 털고 일어나 회개하고 자복하면 예수님의 피로 다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과 육신은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같은 사람, 거짓과 위선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셨으며 저주하셨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칭찬받는 사람은 바로 간사함과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요, 저주하는 사람은 바로 외식하는 자, 즉 거짓된 위선자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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