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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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누가복음 23장 32절-38절

제    목 : 예수님의 용서



   남아프리카의 줄루족 추장의 아내는 한 구세군 모임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 더 듣고 싶은 열망에 그녀는 뱃심 좋게 다시 찾아갔다. 그녀의 남편은 그 소식을 듣고 돌아오는 그녀를 사납게 구타하고 죽도록 내버려뒀다. 점점 그는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녀가 있는 곳에 가보았다. 부러진 잡목가지 밑에 누워 있는 그녀를 발견한 그는 사나운 눈초리로 '당신의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소?'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당신을 용서하도록 나를 도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우받기를 원하십니까? 과연 여러분이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로 여러분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여러분에게 용서를 받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까지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가 받으신 대우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가 받으신 대우

   1) 죄 없으신 분을 사형수로 대우하였습니다.

   그 날 갈보리 동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두 개의 십자가가 더 세워졌습니다. 본문 33절에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범죄자, 죽어 마땅한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사형 집행이 되어 있었습니다. 인류를 위해 사랑을 베풀고 구원을 선포하신 주님께서 사악한 강도들과 함께 취급되어 현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사형수의 대우를 받다니(참조, 히 4:15),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일입니까?

   2)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버렸습니다(참조, 마 26:56).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고(참조, 마 26:14-16),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예수를 알지 못하노라 했습니다(참조, 마 26:74). 군병들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고(34절), 백성은 서서 구경하였고, 관원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35절). 군병들은 희롱하며, 신 포도주를 주면서(36절), '네가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조롱했습니다(37절). 이사야의 예언처럼(참조, 사 53:1-3) 주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철저히 싫어 버려진 분이 되셨습니다. 이 얼마나 고독하고 슬픈 순간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저 십자가상의 칠 언 중에 최초의 말씀, 용서의 기도는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는 곳에서 드린 기도가 아닙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환호하며, 그분을 높이 받드는 곳에서 하신 기도가 아닙니다. 그의 기도는 극악한 죄인으로 사형수 취급을 당하며 철저한 냉대와 비웃음으로 버림을 받은 곳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용서의 기도는 자신의 생명이 소멸되는 곳에서 잔잔하게 드려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용서의 의미와 용서의 기도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가 드린 용서의 기도

   1)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고 아버지의 구원 섭리를 이루기 위해 이처럼 죄인 대우를 받고 버려짐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여'라고 정답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음성은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그의 넘치는 신뢰심과 사랑하심이 나타나는 목소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참조, 욥 13:15)라는 욥의 고백을 상기하게 됩니다. 참된 용서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신뢰심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2)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주님의 용서의 기도 속에는 무조건적인 용서의 결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진실로 용서하고자 할 때는 무조건적이어야 합니다. 조건이 따른 용서는 참된 용서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에 대해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말씀하심으로써 무조건적인 용서를 우리에게 교훈하셨습니다. 주님은 무조건적인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참조, 롬 5:8).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입니다(참조, 시 86:5). 하나님은 인자를 천 대까지 베푸십니다(참조, 출 34:7). 하나님은 노하시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이웃을 향한 우리의 용서도 무조건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용서에 있어서도 주님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인간을 이해하신 용서입니다.

   주님은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모멸과 배척과 미움을 겪으셨지만 자기를 그런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자기의 하는 것을 못함이니이다'(34절).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무수한 죄를 범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참조, 히 4:15), 깊이 이해하신 분입니다. 참다운 용서, 그리고 참된 용서의 기도는 상대방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가능합니다. 이웃 중에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를 먼저 깊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용서의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무조건적이며, 깊이 이해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용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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