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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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 2:37-47

제    목 : 교회 부흥의 원동력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 부흥에 원동력이란 제목의 말씀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대 교회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물어보면 뭐니 뭐니 해도 현대 교회의 최대의 관심사는 교회 부흥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교회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다음 세대의 최대의 관심사는 교회의 도덕적 재정립이라고 했습니다.



1. 교회 부흥에 영적 자원 


우리가 초기 기독교 역사를 자세히 살펴볼 때 옛날 초대 교회를 오늘날에 세계 교회로 발전시켰던 교회 부흥의 여러 가지 영적 자원은 역시 오늘날에도 교회 부흥의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행 1:14;2:46). 기도 없이는 교회가 절대로 부흥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행 2:42).  오늘날도 말씀의 가르침이 없이 결코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가령 말씀없이 교회가 일시적으로 부흥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전도하는 일을 생활화 했습니다.  전도하지 않고 결코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행 8:4절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두루 다니며 전도하였습니다. 아무리 명문 집안이라도 삼대째 아이를 낳지 않으면 그 가문에 대가 끊어지고 맙니다. 아무리 명문대학이라 할지라도 4년간 신입생을 받지 아니하면 역시 4년후에 폐교하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그리고 전 인류의 1/4을 복음화한 사실도 2.000년간 기독교가 목숨을 내놓고 전도한 결과입니다. 


초대 교회는 어느 시대의 교인들보다 헌신적이었습니다. 이 역시 교회가 헌신없이 절대로 부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도의와 의리가 몰락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교회에서도 헌신예배란 말은 있어도 헌신은 찾아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은 교회 부흥의 절대적 요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는 사랑이 뜨거운 공동체였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뜨거운 사랑에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초대 교회의 사랑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마다 베드로 전서1:22절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네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자 사랑하라”


이상에서 말씀드린 초대 교회 부흥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주후 4세기(313년) 초에 드디어 당시 천하의 지축을 흔들었던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굴복시키고 말았습니다. 세계 교회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입니까? 기도의 힘, 말씀의 힘, 전도의 힘, 헌신의 힘,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힘들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영력(靈力)이라 합니다. 


오늘날 세계교회를 움직이는 힘을 영력이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지성의 힘보다는 땀의 힘이요 땀의 힘보다는 눈물의 힘이요 눈물의 힘보다는 생명을 바치는 헌신의 힘이요 생명을 바치는 순교의 힘보다는 성령으로 기름 부어지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스미스는 말하기를 인간의 전 지성(知性)을 다하는 한편의 설교보다 성령으로 기름 부어진 한편의 설교가 백배의 값진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2. 사랑의 새계명 운동


교회 부흥의 두 번째 큰 영적 자원은 “사랑의 새계명 운동”입니다. 주님은 사랑을 새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느니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지금 한국 교회는 고도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풀러 신학교의 피터 와그너 박사와 맥가브란 박사는 한국 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한 교회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무섭게 급성장 했습니다. 세계 교회의 성장학 교수들이 한국 교회에 가서 교회 성장학을 연구해 가지고 오는 실정입니다.


또한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영적인 풍부한 자원도 한국 교회는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1)한국에 기도 운동은 세계 어떤 교회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교회의 정규 집회 때의 기도는 말할 것도 없이 새벽기도, 심야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단식기도 등이 있습니다. 금식기도를 50일 혹은 60일까지 하기도 합니다.


2)성경공부도 한국 교회만큼 열심히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15일내지 1개월씩 사경회를 열고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독하다가 지금은 성경을 암송하고 심지어는 성경을 기록하는 운동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3)전도는 한국 교회만큼 열심히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 교회는 매년 60-80만 신자가 증가하였습니다. 


4)헌금과 봉사 등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영적 능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중국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짜장면 집을 내고 일본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전자 제품 판매점을 내고 이탈리아 세 사람이 모이면 피자 집을 내고 한국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교회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교회는 믿는 일에 열심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교회는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영적 자원을 다 소유하고 있으면서 단 한가지 문제만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한가지는 다름이 아니라 사랑의 새계명 실천 운동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은 정이 있고 의리가 있으며 충효가 있고 의협심이 있으며 예의가 있고 종교성도 매우 강한 민족입니다.  심지어 어느 선교사는 비오는 날 한국 사람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경천사상(敬天思想)이 강한 민족이라고 보았습니다. 서양 사람은 비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손등을 내미는데 한국 사람은 두 손 바닥을 하늘로 펴들고 하늘을 우러러본다고 합니다. 


3. 사랑의 새계명 실천 운동을 합시다.


이 문제는 교회 성장과 부흥에 앞서 반드시 시정되고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 민족의 정서는 모두 가난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즉 좁은 땅, 좁은 집, 좁은 방, 좁은 밥상 등, 이러한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짜증내고 신경질 부리고 울고 울리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싸우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정서가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민족의 의식으로 굳어지고 이 의식이 사회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조급한 성격도 식탁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음식점에 가서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반찬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폭(暴)자가 들어간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폭음(暴飮)과 폭식(暴食)과 폭언(暴言)입니다. 즉 일어설 줄 모르고 술을 마시고 일어설 줄 모르고 음식을 먹고 또 함부로 말을 합니다. 그 중에 특히 주의할 것은 폭언입니다. 대다수의 싸움은 폭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0)고 했습니다. 또한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7)고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한 조각 마른 떡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의 근원이 되는 거친 말과 폭언을 삼갑시다.


한국 사람의 싸움은 산이 높은 지형 때문에도 온다고 합니다.  옛날부터 우리 나라를 산 높고 물 맑은 금수강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이 높으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마음대로 갈 수가 없고 강물이 깊으니 역시 이 마을에서 저 마을에 자유롭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옛 이야기에도 깊은 산을 혼자 넘다가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깊은 강을 건너다 강물에 휩싸인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옛날에는 지금처럼 통신망도 없고 교통도 편리하지 못하고 강을 건너는 교량이나 나룻배가 없으니 마을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끼리 끼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끼리 끼리 모여서 농사 짓고 혼인하고 장사하고 사고 팔고 그리고 끼리 끼리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살다 보니 그때부터 “끼리 끼리”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민족의식을 연구한 학자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우리도 중국이나 미국 사람들처럼 넓은 대륙에서 태어났더라면 우리 마음도 넓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대륙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넓힙시다. 그리고 사랑의 새계명 운동을 합시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서로 사랑하면서 삽시다. 


사람이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세 가지 불가사의를 가지고 삽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계시의 영으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둘째로 성경의 거울을 보지 않고서는 인간이 자신(자아)을 볼 수 없습니다. 셋째로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무디 목사는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요, 실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세 가지 갈망이 있습니다. 첫째 실컷 울어 보고 싶은 갈망입니다. 그 이유는 현대인의 정서에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취해 보고 싶은 갈망입니다. 이것은 황홀해 보고 싶은 갈망입니다. 그래서 환각제에 손을 댑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마약 중독자가 되는데 해마다 그 수가 증가합니다. 셋째 사랑해 보고 싶은 갈망입니다.


미움에 중독이 들어 있는 여학생과의 상담 기억이 납니다. 그 여학생은 세상이 다 밉고, 자기 어머니 마저 밉고 한 반 친구들도 밉고 얼굴 잘생긴 아이들도 밉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밉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왜 이럴까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기도하자!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믿음은 최악을 최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 놓는 것입니다. 저는 그 여학생에게 사랑의 사람이 되자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의 새계명을 실천하려면 기독교 최대의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은 절대로 억지로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의 새계명 운동에 앞장서는 주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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