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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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22∼25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믿고 기도할 때

4차원의 말씀으로 변화와 창조주시고

주신 응답 인내하며 기다리면 기적 일어나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유물론자는 자기를 믿고, 무신론자는 환경과 자연의 섭리를 믿고, 유신론자는 잡신 우상을 믿고, 종교인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의지합니다. 우리는 크리스쳔으로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1. 하나님을 믿으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불가항력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그가 우리의 일생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한없는 깊이와 높이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단지 믿을 따름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버림 받아야 마땅한 그대로 주님께서 끌어안고 우리의 죄악을 당신이 막아서 심판에서 면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내 사랑을 알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뿐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에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그 뜨거운 탯줄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그분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지음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우주만물은 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없다 있다’를 논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목숨처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고, 또 만물을 바라볼 때 주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능하신 것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 속에 이미 믿음이 다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내 곁에 계신데 문제가 있으면 이 하나님께 나가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로마서 4장 19∼2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구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첫머리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창조주라고 말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위대한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온갖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 다 뒤로하고 하나님께 나갈 때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이나 옆집 아저씨에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나아가 구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웃집 아저씨가 아닙니다. 권력이나 통치자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당신 생명처럼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만유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응답을 해주셔도 우리 아버지, 안 해주셔도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려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고 그것을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에 짓눌려 사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4차원의 기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이 파괴되고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3차원을 감싸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은 4차원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는 그 밑에 3차원의 물질세계는 변화받고 창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변화와 창조가 나타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4차원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면 바로 4차원의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다스리고 창조하는 일에도 함께 동참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죄를 짓고 죽으니 4차원의 역사가 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성령이 불어와서 우리 영이 살아나면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둘째 날에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어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셋째날에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따라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는 4차원 이상 영원차원의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도 무덤 문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걸어 나왔고, 열두 해 혈루병 앓은 여인에게 네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그 혈루병이 나았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여리고에서 예수님 앞으로 부르짖으며 보기를 원한다고 하자 네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눈이 번쩍 뜨이게 된 것입니다.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고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이 그를 고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므로 하나님과 함께 4차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우리의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스스로에게 “건강하라! 슬픔은 떠나가라! 행복하라! 좋은 일이 일어나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3차원은 우리의 명령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보고 믿고 말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속에서 보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태산을 움직일 수 있는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태산을 움직일만하다는 것은 집안 먼지나 청소하고 나온 쓰레기를 움직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믿음이 활동하고 창조적인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를 꿈꾸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꿈을 꾸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는 바를 꿈꾸는 것입니다. 내가 간절히 소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꿈꾸는 것입니다. 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느냐. 자기가 꿈꾸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믿음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꿈꾸고, 그것을 믿게 되면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명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4차원적 창조력을 나타내면 굉장히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고, 그 다음에는 믿고, 그 믿음대로 될 것을 명령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그가 75세에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였지만 85세가 되어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낙심해서 포기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밤에 들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하기를 너의 자식이 저와 같이 많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별들을 보고 ‘와∼ 내 자녀들이 저와 같이 많을 것이다’하며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아브라함의 등을 두들겨 주시며, “참 잘했다. 바라보고 믿고 그 다음 이름을 바꿔서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 아내는 사래 대신에 사라로 하라”고 많은 민족의 조상을 뜻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유대인의 조상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예체르’라는 말이 있는데 ‘예체르’는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로 ‘야차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창조한다”입니다. ‘예체르’라는 것은 “생각한다”고, ‘야차르’는 “창조한다”인데,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셔서 그 생각한데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 말씀이 우리에게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주 은혜로운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으면 창조가 되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류대학에 졸업장을 가지고 있어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창조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민족이 많은 창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으뜸이 되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로 창조를 가져오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야차르’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은 창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생각을 하시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양도 우리의 생각을 따라 창조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꾸 생각하고 있으면 나중에 그 생각대로 창조가 이루어지는  입니다.


 우리는 보고 믿고 말을 하는데 하나님이 이 보는 것을 통해 꿈을 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좋아질 수 있도록 하는 꿈을 마음속에 심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그 땅을 언제나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는 땅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원하는 바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겠다고 할 때에도 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나쁜 것을 보지 말고, 좋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 생각은 창조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고, 창조적 명령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하는 것이 이뤄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믿고 말하고 그 말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인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내할 때 결국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 아홉명 가운데 아들 중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에 아버지가 무엇을 하시면 꼭 나와 같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지게를 지는 법이었습니다. 과수원을 하시니 아버지가 과수원의 나무를 전지를 하면 그 가지들을 주워가지고서 지게에 싣고 부엌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한번은 고구마 줄기를 심는데 우리 동생들과 제가 함께 심었는데 저는 욕심이 많아서 아주 고구마 줄기도 좋고 살아있고 팔팔한 것을 심어놓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돌보며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제가 심은 고구마가 다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왜 그랬는가 보니 제가 고구마를 심어 놓은 다음 오래 참지 못하고 자꾸 파헤쳐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자랐나 보고서 덮어 놓고, 또 물주고, 그렇게 자꾸 파헤쳐 놓으니 바람이 들어가서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참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오래 참으면 줄기에서 뿌리가 나오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말아야 된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안에 의심이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안에 의심이 생기면 하나님 말씀을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갈 때 주님이 오라 하시자 바다 위를 걸어가다가 무서운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오라는 말씀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러자 곧 물에 빠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바람과 파도가 불어도 “주님이 오라고 했다. 주님이 오라고 했다”하며 주님의 말씀을 붙들면 의심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병이 들어도 안수기도 받은 다음에는 좀 더 괴로워도 “기록되었으되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기록되었으되 너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는 말로써 의심을 정복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심의 마귀는 말씀을 선언함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1일 째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다니엘아 네가 기도한 첫날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이 되어서 응답을 갖다 주라고 하셨는데 내가 응답을 가지고 오는 21일 동안 바사왕 군대들과 싸웠다”라고 했습니다. 바사는 페르시아인데 페르시아의 임금들과 군대들의 배후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마귀가 막아서 대치해 있다가 군대장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응답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21일 동안 하나님의 천사가 응답 가지고 온 것을 막았지만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고 오래 참았으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난 다음 믿어도 우리의 응답을 막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서 참으면 마귀의 진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38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기 때문에 인내하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꿈꾸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꿈꾼 것은 받은 것으로 믿고 있으면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바라보고 믿고 말씀을 고백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 믿음이 불꽃같이 타오르게 도와주시옵시고 소원하는 바 꿈을 항상 꾸고 그 꿈을 믿고 입으로 이루어질 것을 선언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보고 믿고 선언하고 감사하고 기다리면 없는 것이 나타나고 안된 것이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생기가 넘쳐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다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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