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의 마음을 합하게 했던 다윗
(행 13:13-23)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윗의 외양이 잘 생겨서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16:7에서 하나님은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로 다윗은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는 회중 교회 목사 오스왈드·스미스(Oswald J. Smith)는 30세 되던 해 생일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특별 기도를 드렸습니다. 즉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목사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는데,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스미스 목사가 구하지도 않은 유명한 목사도 되게 해 주시고, 유명한 부흥사도 되게 하시고, 한때 세계 최대의 교회를 맡게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의 눈에만 들어도 복된 일인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 먼저 구했습니다.

 블렛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나라에는 엄청나게 크고 힘센 거인 골리앗 장군이 있어서 아무도 능히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이렇다 하는 용맹한 장수들도 모두 사시나무 떨 듯 하고만 있지 감히 그와 싸우려고 나서질 않았습니다.

 이때 어린 소년 다윗이 형들을 찾아 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향하여 저주하고 욕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어린 마음에 의분이 솟아 올랐습니다. '아니, 감히 하나님을 욕하다니' 하며 자청해서 나가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왕도 '그는 큰 용사요, 너는 어린 소년인데 어찌 사울 수 있겠느냐'고 말렸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저 놈을 보고 그대로 있을 수 없노라고 싸우겠다고 강청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에도 사자와 곰이 나타나면 따라 가서 그 물고 가는 새끼를 빼앗고 쳐 죽였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라고 하며 나가 싸웠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지팡이 하나와 물맷돌 몇 개와 물매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비웃고 조롱했으나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화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하면서 물매를 잡아 돌리다가 던질 때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서 꽝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온 블레세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 저리로 도망가고 소년 다윗은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 목을 잘라 왔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중심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목숨까지 내걸고 골리앗과 싸운 것은 사울왕의 사위가 되고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서 믿음으로 나가 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고 희생하고자 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도 우리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광을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왕이 자기가 신이라고 하며 영광과 경배를 받을 때 바로 그 즉시 충이 먹어 창자가 썩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 48:11에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했고, 또 시 115:1에는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전 10:31에도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2. 겸손히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고 해서 한 번도 죄를 안지은 것은 아닙니다. 사울왕 못지 않게 큰 죄를 지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왕이 되고 나서 평안하게 궁궐에 거할 때, 자고 일어나 지붕 위를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짐승같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해서 데려다 범죄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필이면 그 여자가 임신을 해버렸습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그 여자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오게 해서 집에 들어가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충성된 장군이라 '여호와의 법궤가 지금 들판에 있고 내 부하들과 상관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편안히 집에 들어가 아내와 더불어 잠을 자겠습니까?'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므로, 결국 위험한 사지에 나가 싸우게하여 죽게 해 버렸습니다. 다윗은 간음죄, 살인죄, 권력남용죄 등을 다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의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죄를 깨우쳐 주고 책망할 때 그는 체면이나 위신같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즉시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 지은 시가 그 유명한 회개의 시편 51편입니다.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그후에 고통을 많이 당할 때에도 자기의 죄값이라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놈이 반란을 일으켜서 허겁지겁 도망갈 때 사울의 집 족속 가운데 시므이란 사람이 돌을 던지며 저주하고 욕해서 아비세 장군이 즉시 머리를 쳐 죽이려고 할 때에도 못하게 말렸습니다. 그러면서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버려 두라"(삼하 16:5-12삼하 16:5)고 했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후궁들이 욕을 본 것도,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는 것도, 모두 자기가 범한 죄의 값으로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고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후에 그 밧새바의 몸에서 낳은 귀여운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이나 어느 사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깊이 회개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왕권도 위신도 다 회복시켜 주시고 그를 저주하던 시므이도 다시 와서 그에게 무릎 끓고 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유명한 사무엘 같은 선지자가 간곡히 말하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시면서 그를 페위시키고 말았습니다.

 대하 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회복시켜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다윗은 시 19:14에서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만이 아니라 내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을 볼 때의 다윗이 얼마나 진실되게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을 때 고집부리지 말고 겸손히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였습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쇠해 가고 다윗의 집은 점점 흥해 가니라'고 했는데 사울은 자기 잘못은 회개할 줄 모르고 복수심에 불타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이 대해 같이 넓어서 넓게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다 지쳐서 군사들과 함께 엔게디의 굴 속에 들어가 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굴 속에 다윗과 그 부하들이 숨어 있었는데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당장 목을 쳐 죽이자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남이 기름부어 세운 왕을 내가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사울의 옷자락만을 칼로 베어 가지고 나가 멀리 서서 외쳤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당신은 내 생명을 해하려 하나 나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그때 사울왕은 소리 높여 울며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한 번은 십 황무지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군사들이 빙 둘러 진을 친 가운데 사울은 안심하고 그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다윗은 그 가운데로 들어가 사울의 물병과 창만 가지고 나온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울과 달리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압살놈의 구데타 반란으로 인해 피난갈 때 돌을 던지며 욕을 했던 시므이가 찾아와서 빌 때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마 6:15에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탈영병 하나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찾아가 애원했더니 특사를 내려 살려줬습니다. 그때 링컨을 만나고 나오는 어머니가 뭐라고 중얼거리더랍니다. '그래, 내 그것이 꼭 거짓말인 줄 알았어'. 그 여자는 링컨이 못생기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란 소문을 듣고 갔는데, 자기 아들을 용서해 주고 살려 준 링컨의 얼굴을 보니 환하게 천사같이 잘생겼더라는 것입니다.

 진정 관용하는 사람은 널리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4. 비천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겸비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양떼를 치던 비천한 목동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왕으로 삼고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지만 그는 늘 자기의 원래 신분은 비천한 자였음을 잊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까닭입니다.

 삼하 7:18,19에 보면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엔 겸손했으나, 왕이 된 뒤에는 교만하고 고집세고 완고해서 사람의 충고도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공자도 중용에 대해서 말하다가 '중용이란 나라에 정도가 행해져 입신하게 되어도 궁색했던 때의 마음 가짐을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 32:7에도 보면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비천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겸비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돌리며 또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베푸시는 온갖 영예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금의 '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5. 제일 귀한 것을 하니님께 드렸습니다.

 삼하 7:2에서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한 것을 보면 다윗은 무엇이나 귀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서 못견디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23:13-17에 보면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체는 베들레헴에 있었는데 그때 부하 장수들에게 분부하기를 "누가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떠나 나로 마시게 하려느냐"고 할 때 세 용사가 자원해서 나가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물을 떠 왔습니다. 이때 이 생명과 같은 귀한 물을 나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다윗은 제일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자주 들리시던 집이 있었는데 바로 시몬의 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가 늘 대접하기를 힘쓰던 집이요, 비싼 나드 향유도 아낌없이 깨드려 예수님께 부어 드린 집입니다.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물질을 드리기에 힘 쓸 때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림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자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고후 9:7에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삼상 2:30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가장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겸손히 회개하고, 남을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이전의 자신의 과거를 기억함으로 겸비하고, 제일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가 다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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