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순과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람이 죽게 되면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얼마나 부자로 살았느냐, 얼마나 부귀를 누렸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형편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1. 빈부의 경제적 모순
   1) 부자
   보문의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며 인생을 만끽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입은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이 입는 귀한 옷이었으며, 그것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비싼 것으로서 그것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부는 나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거지
   거지 나사로는 병을 앓고 있었으며,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들로 배를 채우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기까지 했습니다. 나사로는 자기 스스로 거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하여 개들이 자기를 핥아도 내어 쫓을 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나사로를 겸손한 자로 만들어 주었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며 그 환경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이 지닌 유한성
   1) 거지의 죽음
   나사로의 죽음은 장례식도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에게는 이 죽음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종말이었으며, 새로운 축복의 세계로 진입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요, 축복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2) 부자의 죽음
   아마 이 부자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유명한 의원, 몸에 좋다는 보약 등을 다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원이나 보약이 인간이 지닌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는 웅장한 장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부귀영화가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부귀도 끝이 났습니다(참조, 딤전 6:7, 8). 그리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했는데, 그곳은 부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은 결코 영원한 것이 못 됩니다. 성경은 인생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참조, 약 4:14)라고 했습니다.

   3. 사후의 공정한 심판
   1) 불신자에게는 지옥 형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부자는 이제 공정한 심판에 의하여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고통해 합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과 슬픔만이 있는 장소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죽은 후 지옥에 간 자들은 영원한 고통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은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적 장소인 것입니다.
   2) 신자에게는 천국 축복
   하나님을 믿었던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부자의 대문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겸손의 신앙을 지녔던 나사로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신자가 현세에서 비록 가난하게 살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도 굴하지 아니하고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예배된 하늘나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고 영원한 기쁨만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 생명 강가에서 우리의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토록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4. 재물을 선용해야 함
   본문의 기사를 읽고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이 불공평하지 않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유함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본문의 부자가 부도덕하게 돈을 모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서, 쾌락만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는 좋은 음식을 주었으나, 자기 집 대문 앞의 거지 나사로에게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무관심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축복의 산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였으며, 이것이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물질을 선한 청지기처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TAG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