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어느 날 환상 가운데 삼층천을 본 체험을 자랑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그 체험에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4절). 바울은 그곳이 '낙원'<paravdeiso' ; 파라데이소스> 이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낙원을 죽은 영혼이 가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음부는 약한 자의 형벌 받는 곳이지만, 낙원은 의로운 자들이 기업을 받아 찬미 부르는 행복한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를 기다리는 상태이고 모든 고난의 요소가 없는 평화로운 곳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낙원과는 달리 성도가 영원히 거할 곳은 천국입니다. 영원한 천국은 주님의 재림에서 돌연히 실현될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체험한 낙원의 자랑은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 누구나 신비 체험은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5절). 자랑하고 싶은 '이런 사람'은 그 신비 체험을 한 영적 자아이고,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치 않으리라는 '나'는 육적 자아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므로 육의 눈으로는 영적 세계의 환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비 체험은 그가 비록 육에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영적 자아가 체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영적자아의 체험을 육적 자아를 통하여 자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러한 자랑들은 때때로 청중들의 마음을 좀더 감동스럽게 하기 위해 어떤 부분은 과장되고 보태져서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신비 체험을 하고 있는데. 마치 그 체험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그 자신이 신앙적으로 교만해지거나 그 체험담을 상품화하는 경우를 허다히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천국을 보고 왔다'거나, 또는 환상 가운데서 '천사의 인도로 낙원을 보았다'거나 하는 주장들은 그러한 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비한 것이므로 상품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한 체험도 영적 자아를 위해서는 자랑할 수 있으나, 육적 자아는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체험은 그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6절). 성도가 개인적으로 받는 신비 체험은 인류 구속의 계시를 받은 요한의 밧모 섬 체험과는 달라 대부분 개인의 신앙적 향상과 필요에 의한 체험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신비 체험은 그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어떤 체험은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남에게 자랑하여 이웃 사람의 신앙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 동양의 속언에 '천기를 누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비밀스러운 하늘의 뜻을 알아낸 후 함부로 발설하여 화를 자초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쩌면 성도의 개인적 신비 체험은 하나님의 뜻과 세계를 그 성도 개인에게만 보여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성도는 그러한 세계를 체험해야만 신앙에서 이탈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만 그 신비 체험을 주신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의 승리자들이 믿음의 세계를 통하여 이와 같은 신비 체험을 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이 체험이 나 혼자만의 체험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참말을 하는 것일지라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3. 신비 체험의 자랑은 때때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6절). 육적 자아를 위한 자랑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영적 자아를 위한 자랑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영적 자아를 위해서 자랑한다는 것은 그런 체험을 주신 주님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당한 자랑도 남이 이해 못하고 오해할까봐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로 신비 체험을 한 후 오히려 자신을 과시하고 주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취하려는 작태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들의 자녀들이 신앙에서 이탈하는 경우를 이러한 예와 일치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신비적 신앙 체험이 그 자녀들에게는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비 체험을 자랑하는 그 사람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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