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분은 대개 낮고 천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얕잡아보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셨는가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바울은 구원에서 제외된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게 함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에게 더욱 겸손할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당시의 여러 교회들과 마찬가지로(참조, 행 4:13)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천한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회당장 그리스도(참조, 행 18:8) 같은 사람들도 있었고, 고린도 성의 재무를 보던 에라스도(참조, 롬 16:23)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귀족 계층의 사람과 상류 계층의 사람이 얼마만큼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렴구처럼 나타나는 '… 많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전체 교인 숫자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시에서 노예는 상당수에 이르렀습니다. 70만 명의 인구 중 약 3분의 2에 이르는 숫자가 노예였습니다. 아마 고린도 교회에는 이 노예들이 많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고전 7:21). 그들은 당시 혼재했던 많은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고 한결같이 부도덕하고 천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지위나 생활을 탓하기 이전에 오히려 이러한 악마의 도성 같은 고린도에 교회가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세계 가운데서의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 영광스런 성도의 지위
   당시 노예라 하면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이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 목록의 일부였으며 언제든지 죽일 수도,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아도 그것은 부모의 자녀가 아니라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병들거나 늙으면 버릴 수도 있었고, 그들의 개성이나 인격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한 인격으로 대우받지도 못하고, 인간미 넘치는 교양미, 지식, 양식 따위를 갖추지도 못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셔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도 각각 고귀한 인격체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난 셈입니다.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만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외모나 구비 조건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대우하십니다.

   3. 버림받은 세상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7, 28절). 세상의 지혜, 권세, 부귀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아름답습니다. 인간들을 모두 그것을 흠모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폐하시려 하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거기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입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더 진전시킨다면 그들은 이러한 세상적인 지혜와 권세와 부귀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 위력으로 성도들을 유혹해 믿음을 거두어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고(참조, 시 2:4) 꺾어버리십니다. 그것도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참조, 삿 11:1-11 ; 삼상 17:32-58). 여호와 경외함이 없는 세상적인 것은 모두 이처럼 허망한 것입니다(참조, 잠 1:7).

   4. 자랑치 못하는 인간 육체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절). 이제 바울의 논점은 확실해졌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화를 가져온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기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그들의 신분을 변화시켰으며 삶의 양태들을 변화시켰습니다. 한편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와 가진 자들 역시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부귀와 영화를 자랑하지만 '영원'에 견주어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했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패망케 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낮추시지만(참조, 잠 16:18), 겸손한 자는 높이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참조, 잠 18:1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