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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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바울처럼 ( 요10:9-11,고전11:1 )
   요절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힘든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이 시간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주님의 크신 위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오늘 거룩한 주일을 잊지 않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을 통해 큰 힘과 능력을 덧입고 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는 지금 가정의 달 5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5월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켰습니다.

나라에서 정한 어린이날과 우리 교회에서 정한 어린이주일을 지켰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돌이켜 볼 때 제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린이주일임에도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편리를 따라 어른 예배와 유치 아동부 예배가 시간대가 같다가 보니까 저는 우리 어린이들과 한 번도 제대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를 못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살린다 하면서 너무 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좀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어린이 주일 날 비록 일 년에 한번이라도 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우리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는 시간을 가지든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강구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지난 어버이날에 이어 지난주일 어버이주일을 지냈는데 어떻습니까?
이것 역시도 너무 겉치레 같고 또 너무 무슨 행사 치르듯이 하고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여러분! 요즈음 우리 교회 생긴 이래로 가장 열심히 불신 남편 전도를 위해 부부 세미나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 수고하신 모든 분들을 인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을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애쓰신 모든 분들께 크신 위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 제가 노파심에서 여러분에게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그 동안 시간들이고 물질 드려가면서 애를 많이 쓰셨는데 그리고도 우리 교회적으로도 많은 투자를 했었는데 오늘로서 모든 행사를 다 마쳐 놓고 후속 대책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 버릴까 무척 염려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을 모두 태신자요 베스트로 삼아 계속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을 셀 모임이나 열린 모임에 초청하여 계속 돕고 섬김으로 주님께로 나아오는 귀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지금까지 서론이었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스승의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을 보내고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은 가정의 달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 실감도 나고 또 부부세미나를 해서 약간은 피부에 와 닿는데 스승의 주일은 별로 느낌이 없으시지는 않습니까?
학교에서도 이 날 휴교하는 학교가 많아서 그냥 별로인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 가정의 달에 스승의 주일을 구태여 지킬 필요가 있는가 하는 분도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가정이 영적 질서를 세우고 또 행복해 지려면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스승을 통해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스승의 주일을 맞아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를 다시 한번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1절은 제가 부르고 2절 3절은 가사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1.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    시라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2.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며는 잊기쉬운 스승     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3.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     아 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     하오리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가사를 들으시면서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지금까지 그 옛날 나에게 정말 좋은 선생님으로 남아 계셨던 선생님 생각이 나시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시는 가운데 여러분을 위해 너무나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던 어느 집사님이나 권사님 혹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생각이 나시지는 않으신지요?

이 노래와 스승의 주일을 생각할 때에 마음에 이런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요즈음 어린이나 우리 학생들은 과연 이 노래를 부를 때 가슴에 감동이 올까 의문이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스승의 날 유래와 변천에 대해 잠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958년 5월 8일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시작하면서 스승의 날을 제정하는 의견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1963년 10월 서울과, 1964년 4월 전주에서 청소년적십자단의 각도 대표가 모여 회의를 열고, 불우한 퇴직교사 또는 질병에 걸린 교사를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전국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스승의 날 기념식 행사를 개최하다가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73년,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에 통합 폐지되었고, 1982년부터 다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날은 스승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각급 기관 및 단체별로 실시하고 있으며 교육 유공자 포상과 음악회, 체육대회 등이 열립니다.

정부에서는 교육부 직원뿐 아니라 중앙지방 행정기관의 공직자, 국영기업체, 정부투자기관, 사회단체, 일반기업체 임직원 등이 스승 찾아뵙기, 안부편지 보내기, 모교 및 자녀학교 방문하기 등의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했습니다.

한편, 교육에 헌신 전념하는 우수 교원을 발굴하고, 교원의 사기 진작과 스승에 대한 존경 풍토를 조성할 목적으로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교원들에게 훈장, 포장 및 대통령, 교육부장관 표창 등을 수여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경건한 뜻을 표하며, 불우한 퇴직 은사나 와병 중인 교사를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위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아름다운 스승의 날에 대한 유래에  비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제가 볼 때 오늘 우리 시대에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별로인 것 같고 이 날에 대한 취지와 이미지도 많이 퇴색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할지라도 잃어버린 우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스승의 은혜는 다시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것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나라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의 장래는 너무나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장래 역시 답답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결코 올바르게 키울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오늘 이 시대야말로 정말 그리운 선생님 즉 존경받을 만한 스승이 그리워지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사이는 정말로 영혼의 스승, 진정한 스승이 그리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시간 성경 속에 나타난 너무나도 귀한 두 스승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인간인 사도 바울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사도 바울의 스승이요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아름다운 스승상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준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 예수님과 바울 이 두 분은 우리 모두 존경받을 위대한 스승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분들이야 말로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귀한 스승들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두 분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들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이 분들을 통하여 어떤 스승상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 9장에 35-38절에 나와 있는 말씀들을 좀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마 9:35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3대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 주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탁월하게 가르치는 사역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무리들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세워 양육하여 세계를 먹이는 일꾼으로 길러내시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9:37, 38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우리 주님은 먼 앞을 내다보시며 묵묵히 제자양성을 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양육을 하신지 아시지요?

예수님은 그들과 동거동락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랑으로 열 두 제자를 양성하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제자들을 키우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 복음 전파 즉 전도 사역을 너무나 잘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당시의 많은 무리들에게 천국 복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요10:9,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 꼴 즉 생명의 말씀을 얻기 위함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도적 즉 마귀 사단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사단 마귀는 겉으로 볼 때는 우리를 굉장히 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양이라 할 수 있는 우리에게 생명 즉 현재는 생명력이 넘치는 삶 그리고 미래에는 영생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는 곧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당시 질병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치유의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온갖 질병으로 허덕이는 인생들을 고쳐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동시에 온갖 악령에 시달리는 영혼들도 귀신을 쫓아내어 주심으로 깨끗하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고쳐 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마음과 심령의 질병 즉 마음의 상처와 앞픔, 쓴 뿌리도 다 고처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우리 예수님은 한 마디로 능력의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신 줄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마 9:36 말씀을 보십시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우리 예수님은 능력의 주님이실 뿐만아니라 너무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하며 기진한 그들을 외면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들을 일일이 사랑으로 감싸 주시며 먹이시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선한 목자요 참된 스승이 되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사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가장 귀한 우리의 스승이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풍성히 주시고자 하셨습니까?
본문 요10:11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야말로 정말 우리의 참 목자요 우리의 가장 귀한 스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님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너무나 귀한 이 예수님의 스승 상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도 바울도 본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본문 고전11:1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잘못 생각하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교만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이 감히 우리에게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씀은 결코 바울 자신이 주제 파악을 못한 체 교만하여 한 말은 아닌 줄 압니다.
오히려 이는 바울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이야기 할 만큼 모범적인 본이 되는 삶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도 바울 역시도 믿음의 길을 달려갔고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할 때에 눈물과 겸손으로 양떼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바울이 어떻게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11:1절 상반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의 대 스승이신 우리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무척 애를 쓴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더욱 귀하게 쓰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생각할 때 예수님은 예수님이시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바울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니까 바울이 그런 삶을 산 것에 대해서는 도전받고 배우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울에 대해서도 그는 워낙 우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또 우리가 배우고 본받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니 교회학교를 섬기시는 교사 여러분! 이 시간 우리 모두 예수님과 바울을 통해 훌륭한 스승상과 귀중한 교훈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중직자 여러분! 또한 셀 리더 여러분! 또한 부모 여러분! 진실로 우리 역시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겸손히 낮아지십시다.
우리 주님의 낮아지심의 사랑을 배우십시다.
사도 바울의 겸손과 눈물도 배우십시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바울의 모범적인 스승상을 몸에 익힙시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므로 좋은 스승이 되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감동을 주는 삶을 살자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처럼 바울처럼만 살 수 있다며 이 분들의 스승상만 배워 실천한다면 우리를 정말 귀하게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닮고 바울을 닮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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