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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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참 스승/요13:12-17

 

사람이 어떤 스승에게 어떤 교육을 받느냐는 것은 그 사람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사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된 우리의 최고의 스승은 누구일까요? 또 여러분의 최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최고의 스승인 예수님을 찾는 것이 인생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한결같이 목숨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받칠만한 인생의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로부터 위대한 가르침과 위대한 생활을 배웠다는 증거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로 받은 좋은 제자들이 많습니다. 세상역사를 바르게 바꾼 사람들을 살펴보면 모두 예수님의 위대한 교훈을 배운 자들입니다.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 사회 변혁가들은 거의 대다수가 충실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서 수고하신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의 스승과 온갖 무술을 가르치는 스승과 학원에서 각가지 기능을 가르치는 스승 그리고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대 스승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참사랑과 생명을 주신 스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스승이 되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우리 교회에서 교회학교에서 가르치는 작은 선생인 교사들을 돌아보는 일은 참으로 헛되지 않고 보람과 기쁨과 축복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Ⅰ. 모본이 되신 선생님



(요13:12-15)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그들을 섬기며 행동으로 모본을 보여 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으신 아들이시면서도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2:7). 주와 선생이 되면서도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시고 본을 보였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말로만 스승 노릇을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소경이 되어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인도하는 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의 근본이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은 깨끗하지만 주님께 지적받기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방패니'(막7:21)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더럽혀진 인간이 참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23:7-8)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스승이요, 영원한 스승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스승이 있지만 참된 스승을 찾아보기란 힘든 세상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는 참 인격을 가진 스승이 적으며 그 가르치는 것도 제한된 지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며 또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된 스승을 알아야 하며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서 참된 스승을 얻을 수 있습니까? 참된 스승은 성경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참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모본을 보여준 어느 선생 이야기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사회적으로 덕망이 높은 스승을 찾았다. ‘선생님, 아무리 타일러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모두 썩었는데도 제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이애는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듣거든요.’

스승은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한 달 후에 다시 오너라.’

스승의 뜻밖의 태도에 소년의 엄마는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먹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될 텐데 한 달 후에 다시 오라는 이유가 대체 뭘까. 스승님은 매우 지혜로운 분으로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척척 풀어 주시는데 이렇게 사소한 일을 한 달씩이나 미루다니 이해할 수 없어. 한 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스승을 찾았다. 스승은 말했습니다. ‘한 달 만 더 기다려라.’

소년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또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합니까?’

스승은 말했다. ‘글쎄 한 달 만 더 기다리라니까요. 그때 다시 오십시오.’

다시 한 달 후 모자가 스승을 찾았을 때 스승은 비로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소년은 말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금부터는 절대로 사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사탕을 먹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습니까?’

스승은 말했습니다. ‘실은 나도 사탕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처음 한 달 동안 사탕을 끊으려 노력해 봤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지요. 그래서 다시 한 달을 연장해서 더 시도해 본 것입니다. 이제 나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떳떳이 말할 수 있습니다. '소년아, 너는 사탕을 끊을 수 있다. 늙은 나조차 사탕을 끊었는데, 아직 어린 너는 사탕을 끊는 것 말고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말보다 실천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이 선생은 제자에게 본을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선생은 본을 보여준다면 이는 진정으로 선생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스승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삶으로써 본을 보여 주신 분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13:1). 유대 사회에서는 주인과 스승이 종의 발을 씻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종들이 주인을 받들어 먼지 묻은 발을 씻기는 일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종의 자리로 내려가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섬김 받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기 위해서 오셨으며 자신의 목숨을 주려고 오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막10:4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스승이십니다.



주님은 고난에도 본을 보이셨습니다.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苦難)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봉사의 본만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고난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순전히 우리를 위한 고난입니다. 특히 죄인을 위한 고난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의 죽음을 당하신 분입니다(사53:5). 일반 사람들이 남을 위해 봉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한 의인으로서 고난을 몸소 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인류 역사에 찾아볼 수 없는 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그 고난을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弟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고 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눅9:23).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 그 영광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롬8:17)



Ⅱ. 길을 인도하신 선생님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路)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생의 근본 된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르치심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라야 그 길을 알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일반 스승은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학문을 가르치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그 길을 가장 정확히 알고 제시하신 분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눅2: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요1:14). 인생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인 도마는 주님께서 가는 길을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 길을 확실히 알고 주를 위해서 살았습니다(요20:27).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은 좁은 길이지만 생명의 길입니다(마7:13).



⑵ 자신이 친히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친히 길이심을 밝혔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생명나무의 길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창3:24).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생명나무의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길이심을 확증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행16:17)이시며 생명의 길(행2:28)이시며 평강이 길(눅1:79)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인생은 길 되신 그리스도에게로 나가야 합니다. 모든 왕들도 그리스도를 찾아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길 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天國)의 백성(百姓)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느 젊은 벤처회사 사장

이분은 너무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학벌 배경도 없습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겨우 밤에 야간 공고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3년을 직장생활 하다가 퇴직을 했습니다. 그때 퇴직금 50만원을 받아서 그것으로 가게를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0여 년 만에 사업이 대성해서 정부가 인정하는 벤처기업인으로 선정되었고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 만에 사업규모가 1천억 규모의 사업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이분에게 "왜 사업을 시작했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주일을 내 마음대로 지키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까 주일날도 출근해서 예배에 출석을 못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교회에 맡기고 출근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안 되겠다싶어서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그 동기가 참 중요합니다.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동기가 분명하고 자신이 있으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참 길을 찾는 다는 것은 쉽게 찾아질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길을 찾았다면 혼자만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찾은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사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살기는 살되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길과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 길로 함께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일하는 교사들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신앙의 덕을 쌓기를 바랍니다.



Ⅲ. 희생하신 선생님



(요13:13-14)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도 자신은 희생할만한 신분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자신이 희생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가운데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자신이 희생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알로 범죄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마27).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생명이 없는 인생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신 스승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나눠 주신 분입니다. 그 생명은 또한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1:4).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십니다(요6:35).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생명의 떡을 먹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안에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생명의 주를 모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 자는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원한 스승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희생을 하신분입니다.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목숨은 그 누구의 강압에 이끌려 버린 목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순순히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10:18)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우리를 위하여 자원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값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자원하여 오셨으며 자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으며 자원하여 잡히시고 자원하여 죽으신 것입니다(마27장). 이러한 사실을 볼 때에 그리스도는 인류의 참된 스승이십니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는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봉사해야 하며 기꺼이 마음과 몸을 드려야 합니다.



■ 아우그스트 프랑크의 이야기

17세기에 할레라는 곳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아우구스트 프랑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고아들 먹일 돈이 없어 고민하는데 한 거지 과부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돈 좀 달라고 하는데 마음은 아팠지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도와줄 여유가 없어요."

그러자 그 과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파서 프랑크는 골방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곧 신비한 평화가 그의 마음속에 임했습니다. 한 끼 정도는 굶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방에서 나가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금화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프랑크는 아이들에게 한 끼만 금식하자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그는 한 부자로부터 금화 12개와 스웨덴의 친구로부터 금화 2개를 받았고 곧 이어 그의 필요를 들은 근처의 한 영주로부터 금화 500개를 기부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프랑크의 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희생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 세상에 희생이 없는 성공이란 없습니다. 희생이 없었는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있던 누군가가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맙시다.



맺는 말
진정한 우리의 스승은 그리스도입니다.
1) 본을 부여주신 스승입니다.
2) 길을 가르치신 스승입니다.
3) 희생을 보여주신 스승입니다.

오늘날은 배움의 시대입니다. 많은 선생에 수요를 느끼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많지만 스승이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는 비탄스러운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처럼 본을 보여주시며 길을 가르치며 희생하는 스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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