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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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주일 -대표기도-요약설교8편 ▒


본문 : 막 3:13-19    

                           

제목 : 교사이신 예수님


一.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시는 스승” 이셨습니다.        

  

14절,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려고“(동거 하려고)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二. 예수님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스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제자들과 동거하시면서,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족한 자들을 위대한 일꾼으로 키워주시는 스승이십니다.

 


16절,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의 명단을 보면,
당시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三. 예수님은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시는 스승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부르신 제자들을
강한 훈련을 통하여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셨습니다.


14절,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성도님!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선정하신 목적은
‘파송’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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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스승 (히13:7-17)

 

스승이란 가르치는 교사만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모두가 스승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좋은 스승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스스로 신앙적으로 좋은 스승이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첫째, 본받을 스승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보통사람이나 학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능력 있는 선한 선생님이셨습니다(마7:29).
세상의 학문이 줄 수 없고 덕망이 줄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셨고(마11:29)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요13:15).
어떤 스승도 할 수 없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주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좋은 스승이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본받을 스승은 부모님입니다.

 

훌륭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찬송 ‘나의 사랑하는 책’ 작사자는
어머님이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은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찔리지 않습니까?
무릎 위에 자녀를 앉히고 성경을 가르쳐줌으로써
신앙을 물려준 어머니는 분명 좋은 스승입니다.
어느 교사가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징검다리를 건너다
잘못 놓인 돌을 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급히 달려 왔습니다.
“물에 빠졌구나. 그래 그 돌은 바로 놓고 왔느냐?”
어머니의 물음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뇨” “이 녀석, 그래서 무슨 선생이냐.
빨리 그 돌부터 바로 놓고 와서 옷을 갈아입어라. ”
그는 그날 이후 ‘돌을 바로 놓고 왔느냐’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새기며 교육에 임했다고 합니다.
자녀의 인성과 신앙교육은 어머니가 맡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본받을 스승은 교회 지도자입니다.

 

7절의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은
과거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분들은 순교하여
지금은 생존치 않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마음에 새겨 기억하고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17절의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은 현재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분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분들은 오늘의 목회자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하고 은혜로운 생활을 하려면
목회자를 스승으로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잘 따라야 영혼이 건강하게 되고
신앙이 올바르게 성숙해집니다.

 

결언/

 

가장 좋은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우리는 좋은 스승의 신앙과 삶의 행보를 따라가며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 또한 다른 이들에게 좋은 스승으로,
잊혀 지지 않는 스승으로 남으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12월 7일(주일) 진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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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주일 설교 -스승의은혜- 우리가 닮고 싶은 참 스승 예수님

 

본문: 요 13:1-11

이 과정을 통해서
1. 선생님의 참아주는 사랑을 깨닫게 된다.
2.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3. 선생님께 마음을 열고 가르침을 받는다..

▨ 주 제 : 스승의 사랑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보답하자.
준비물 : 학생용 토론 자료(24절지- 학생수만큼)

본문 이해

1. 우리가 닮고 싶은 참 스승 예수님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 참으로 눈물겨울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마지막 한 주간 동안의 일을 기록한 요한복음 13장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히 "끝까지"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먼저 "끝까지"는 말 그대로 끝까지 참아주며 사랑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아 주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고전 13:4에서 사랑을 말할 때 "언제나 오래 참는 것"을 앞세운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2)한편 NIV성경은 "끝까지"를 "충만한 사랑"(the full extent of his love)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하거나 변함이 없는 사랑, 곧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룟유다를 대하시는 태도를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가 배반하여 자기를 팔아 넘길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고의적으로든지 무의식적으로든지 간에 유다를 미워하거나 차별대우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도 유다를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참된 스승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반을 지도하다 보면 선생님께 반항하며 골치거리가 되는 학생들이 한 두명은 꼭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학생이 속을 썩일 때 자칫하면 그를 미워하고 차별대우하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참고 기다리면서 그를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2. 우리가 닮아서는 안될 제자 가룟 유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를 좋아했던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더라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그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많이 주었건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면 분명 생각을 바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있었기에 자기의 악한 계획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자기만 옳고 스승인 예수님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가운데도 유다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에는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자기가 좋아하는 잣대로 선생님을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사랑에 눈을 뜨지 못했기에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선생님의 실수나 부족한 점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사랑으로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를 보면서 스승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선생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토론은 이렇게 이끄십시오.
말문을 이끌어 내기 위한 질문들입니다.
1. 나의 장점을 말해 주세요. (이름: )
미리 준비해둔 24절지 메모지를 각 학생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혹은 주보에 한 면을 공백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위에 자기 이름을 써서 친구들 사이에 돌리게 합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그 종이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의 장점을 기록하게 합니다. 아직 친밀한 분위기가 아니라면 장점을 말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최소한 5분 이상 기록하게 합니다. 특히 선생님 것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기록했다면 몇 학생들에게 친구들이 꼽은 자신의 장점을 발표하고 평가해 보게 합니다. 그런 후 학생들이 말하는 선생님 자신의 장점을 발표하고 평가해 주십시오. 오해나 과장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필요하다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솔직이 인정하십시오.) 그런 후 스승으로서의 예수님 이야기로 넘어가십시오.

성경말씀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돕기 위한 질문들입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과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절과 3절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에서 떠난다는 것 곧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특별한 행동을 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은 마지막임을 깨닫고 제자들에 대한 마지막 사랑의 행동을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영적 교훈를 나타낸다고 봅니다. 하나는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현한다는 것과 과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면이 강하다면 그것은 과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미 알고 행하신다는 면에서 그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말로만 그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표현됩니다. 그 사랑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는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둘째는 주님의 사랑은 섬기는 사랑입니다. 자신을 종으로 낮추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발을 씻는 것은 종 중에서 가장 천한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행동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주님의 이 행동은 제자들이 싫어했을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는 자신이 기대하고 있었던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섬기는 예수님, 낮은데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원합니까?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결단을 요구합니다. 왜냐면 그러한 겸비한 예수님을 원하는 것은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의 길을 필연적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의 사랑의 행동을 통해 끝까지 섬기는 종의 위치에서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다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이미 여러번 예수님께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을 찾아서 읽어 보고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가졌던 불만이 무엇이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열심당원이었던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로마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일에 트집잡기를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끝까지"의 사랑에 대해서도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삐뚤게 보이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제들이나 질문들입니다.
4. ♥ 사랑의 터치 ♥
학생과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20초간 껴안으십시오.(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손만 잡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생에게, 학생은 선생님께 분명한 말로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각자가 느낀 바를 잠시 나눈 후 선생님께서 마무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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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주일 설교 -선생님(요21:15-17 )-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생님~ ^^

본문: 요21:15-17
제목: 선생님~ ^^

여러분,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다음에 벌어진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아직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일어난 일일까요? (올라가시기 전이요!)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은 하늘에 계세요.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아직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시면서 사람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셨던 소중한 일들을 대신 맡아서 해야 할 사람들을 고르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하늘로 올라가 버리시고 '나 몰라라'하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혼들을 살려야 하고, 또 살아난 그들이 하나님께 꼭 붙어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선생님들의 양, 전도사님의 양,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양이기 이전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맡길 사람에게 한 가지 확인을 하시고 여러분들을 맡깁니다. 그렇다면 뭘 확인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한 사람에게 여러분들을 맡기십니다.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분들이고 또 지금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여러분들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을 돌보느라고 이것저것 신경 쓰고 또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공과공부 준비하느라 개인적인 시간도 뺏기고, 예배 시간에 여러분들이 성경 찾는 거, 찬송가 찾는 거, 교독문 찾는 것도 도와주고, 또 어디 부딪혀서 울고 있는 아이 있으면 안아주고 달래주고, 또 여러분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잘 가르치고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토요일 7시 30분마다 나와서 의논하고 기도하고, 또 길거리나 놀이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면 과자 사주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솔직히 우리 선생님들, 여러분들만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 하고 싶은 일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시간과 생활 그리고 물질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꿈과 비전과 계획이 없는 줄 아세요? 할 일이 없어서 이 곳에 나와 계신 줄 아세요?
어떤 선생님은 서울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느라 공부하기도 빠듯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 곳에 계십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고등학교 복음화에 뜻이 있어서 교사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매일 여러분들보다 더 어린 아이들과 씨름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하시느라 휴식이 필요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 곳에 나와 계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죠? 존경하기는커녕 막말하고, 무시하고, 빈정대고, 섬길 줄 모르고, 인사도 안하고...
여러분들 학교 선생님들한테도 그러시나요? 물론 요즘은 학교 선생님도 많이 무시하지만 여러분들 교회 선생님보다 더 우습게 여기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학교 선생님들은 돈이라도 받고 여러분들을 가르치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어떻죠? 돈 받는 거 없습니다. 단 10원도 들어오는 거 없습니다. 전도사님이 장담하건대 여러분들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돈 한 푼도 안 받고 학교에 붙어 있을 선생님은 아무리 많아봤자 한 명입니다. 정말 돈 한 푼도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존경받는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 곁을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돈 한 푼 받는 거 없지만 여러분들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교회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다니는 학교의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보다도 더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나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매 학년 초만 되면 학부형들은 자기 아이 반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 잘 봐달라고 음료수도 주고, 여행권, 상품권, 주유권, 돈까지 찔러 주고요, 뭐 필요한 거 없냐며 빗자루, 양동이, 거울, 프린터, 정수기, 컴퓨터까지 해 놓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한테는 우리 아이 잘 봐달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고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또 여러분들을 돌보고 섬기기 위해서 애쓰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중에 혹시 이런 의문을 가지는 어린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못마땅하면 교회 선생님 안 하면 될 거 아냐~".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선생님들의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믿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우리 선생님들은 대답했습니다. "네, 제가 예수님의 양들을 먹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을 푸른 풀밭과 맑은 물가로 인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따르기로 맘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들의 선생님들이 되신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철없는 행동까지도 가슴에 품고 기도해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선생님들 맘을 아프게 할 수 있어요? 그건 바르지 못한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은 기껏해야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생명을 다룹니다. 이 생명은 의사도 다룰 수 없는 생명이에요. 이 생명은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이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미 이 생명을 얻었다구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더 힘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 선생님들이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 교회 선생님을 알게 모르게 무시했던 우리의 잘못을 주님께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세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시는 우리의 선생님들을 따뜻이, 그리고 예의 바르게 대하세요. 그럴 때 우리 선생님들은 새 힘을 얻어서 여러분들에게 더 좋은 풀, 더 좋은 물을 먹이는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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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주일 - 긍정적인 제자 다대오 (마14:12-24)

 

 

긍정적인 제자 다대오 (마14:12-24)


그 당시에 흔한 이름인 유다라고 불리운 사도가 열 둘 가운데 두 사람 있다.
요한은 유다가 다락방에서 예수께 질문한 때를 기록하면서 배신자와 조심스럽게
구별하느라고 "가롯 유다가 아닌 유다가.."(요 14:22)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아마도 유다라는 오명 때문에 마태와 마가는 유다의 다른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마태는 유다를 "레베오, 성을 다대오"(마10:3)라 불렀으며
마가는 다대오라고 불렀다(막 3:18).
그러나 누가는 그를 그대로 유다라고 했다. (눅 6:16/행 1:13)
두 사도의 명단을 비교해 보면 세 가지 이름이 동일인임을 알게 된다.

유다의 가족관계는 알려진게 별로 없다.
초대 교부 가운데 제롬(Jerom)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으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유명한 학자였다.
제롬은 다대오라는 제자에 관해서 "세 이름을 가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교훈

1.생애

성경에는 열 두 제자의 명단이 언급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 사람이 등장한 예가 한 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별명을 붙이면서 "성경에 꼭 한 번만 나타난 제자"라는
표현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롯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이 말씀에서 예수께 질문을 하는 모습이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유다 다대오라는 인물이 출현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1)성격 
어떤 상황에 굉장한 관찰력이 있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제자라는 점을다데오의 질문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질문 내용은 "예수님께서 정말 메시야라는 사실을 제자들인 우리에게는
말씀해 주시고, 증거도 보여 주시고, 확신시켜 주셨으면서도 세상을 향해서는
주님 자신을 왜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빨리 세상에 알리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라는 일종의 선교적관심을 지닌 질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놀라운 교훈과 진리를 자기만독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는 선교적 차원
으로서 포용력이 넓은 제자임을 알 수 있다.

2)별명
어떤 사람의 별명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별명이라는 것은 내 습관이나 취미, 그리고 사람됨이나 특성을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별명에 담겨진 것은 다대오라는 말의 뜻은"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다대오라는 말의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별명인 레비야스라는 말은 본래 히브리어의 명사[렛]에서 나온 것으로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이 가슴은 어떤 깊은 마음이나, 심성을 가리킬 때
쓰여지는 단어였습니다.
혹은 "사랑스러운"그리고 "가슴"이라는 두 별명의 뜻에서
사랑과가슴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주며 그리고
깊이 있고 조용한 자신의 어떤 가슴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었던
이미지를 가진 제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연상시켜 줍니다.

가롯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위하여 값 비싼 옥합을 깨드렸을 때에
그 기름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 썼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불평을합니다.
그러나 그 곁에서 유다 다대오는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제자들이 떠들썩하면서 소리지르고 흥분할 때도 유다 다대오는 말없이 고요하게
한 구석에 있었던 제자입니다.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아우성을 칠 때도 어느 편에도 감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 제자가 바로 유다 다대오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었을때 조용히 한 옆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제자! 유다라는 말의 뜻은 "찬양"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가 좋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이름 값을 하지 못했고,
다대오 유다는 정말 이름 값을 했던 제자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호칭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의사인 누가]를 부를 때 그이름 앞에 애칭을 붙여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자의 이름을 그냥
부르지 않고 다대오 유다, 사랑받고 있었던 유다로 불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유다, 사랑하는 유다여"라고 문서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람이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앞에 나와서 설친 사실도 없고,
조용하게 자기분수를 지키면서, 그러나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었던 제자였습니다.
이름이 없었지만 고요하고 우리 모두에게 애정을 받을 수 있었던 참 좋은제자가
바로 유다 다대오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추리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순교

시리아로,아라비아로,페르시아로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중심지는 아르메니아입니다. 그 도시에서
그는 정말 놀랍고 눈부실만한 선교 활동을 한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돌로매라는 제자와 둘이서 동역하면서 A.D. 301년에 벌써
그 나라가 기독교화될 만큼 복음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해외 선교를 나갔다가, 시리아라는 곳에서 칼을 맞아 마지막 순교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3.교훈

다대오에게는 특기가 없습니다.
어떤 굉장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또 다른 제자들을 인도할 만한 지도자의 역할을 한 것도 아닙니다.
또다른 제자를 전도하는 일 가운데 앞장을 섰던 제자도 아닙니다.
많은 제자들에게서 주의를 끌만한 두드러진 인물이나 개성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사람을 열 두제자중에 한제자로 선택하셨을까?

예수님은 인격의 질적인 특성때문에 유다 다대오라는 제자가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필요하다고 주님이 판단하셨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데오의 삶을보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훈련을 배웁시다.

1) 밝은 면을 바라보는 습관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두운 곳을 쳐다보게 되면 불평할 것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불평할 어떤 일들이 우리의 생활 중 없는 때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유다 다대오는 늘 밝은 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찬양과 감사와 그리고 조용한 섬김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2)삶의 동기에 있어 이기적인 욕망보다도 이타적 사명이 얼마 만큼
내 삶의 동기가 되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을 받고, 내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이기적인 욕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불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얻고 내가
인정을 받는 그런 것이 더 커다란 동기가 아니라, 이타적 사명인 남을 유익하게
만들며 다른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이것이 더 커다란 삶의 동기가 될 수 있다면,
그만큼우리는 삶을 건강하게 긍정하면서 살려는 자세가 확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3)우리가 인생을 긍적적으로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과 감사를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가장 작은 것에도,가장 사소한 것에도 늘 주님 앞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그래서 주님의말씀 그대로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제자는 "이름은 없었으나 이름 값을 하고 간 제자,
이름 없이 빛도없이 주님을 섬긴 제자, 유명하지 않았으나 필요했던 제자"

이러한 이유로 이 제자를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 중 한 몫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나는 베드로같이 될 수 없습니다.나는 하루에 삼천명을 회개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우리 가운데 유다 다대오는 될수가 있습니다.
내가 비록 유명한 사람이 안 되어도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면
내 이름 값을 다하여 조용히 이름없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이 삶을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베드로가 필요하지만 더 많은 유다 다대오가 필요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섬기는 더 많은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편 일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표면에서 일할 사람은 하고,
숨어서 일할 사람은 숨어서 일해야 하며 저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주의 이름만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나라만 확장될 수있다면 그냥 기쁘고
그리고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도를 구하는 우리에게 유다 다대오와 같은 아름다운
주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도록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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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주일 설교 - 스승의 날이면 언제나 생각나는 사람

 

찬송 236장 · 주 예수 크신 사랑
성경 마태복음 9 : 35
요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시니라 (35)

영원한 스승

  스승의 날이면 언제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공대에서 자동차과 교수로 재직중인 ㅈ씨입니다.

  28년 전, 서울 돈암교회에서 청년으로 있을 때, 교회 유년부 실을 빌려 뜻 있능 몇몇 청년들과 함께 돈암동과 성북동 일대의 불우 청소년들을 모아, 3년간 야학을 했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느라 피곤했을 그들 중에는 눈이 총명하고 진실해 보이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아름답던 시절을 소중한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5년 전 어느 날 한 젊은이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은식 선생님이시죠? 전 옛날 돈암지역 사회학교 다녔던 ㅈ입니다." 나는 단번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을 잊을 만큼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는 나를 잊지 않고 있다가, 내가 목사가 되었다는 막연한 정보만으로 이터넷을 통해 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선생님, 그때 방황하던 저를 신앙과 학문의 길로 안내해 주셨지요? 이제 저는 공대 교수가 되었고, 온 가족이 신앙 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꼭 찾아가 뵙겠습니다." 그는 한 달 후쯤 동료 교수들과 수요예배에 참여했고, 동료들과 교인들 앞에서 불우한 시절의 간증도 부끄럼 없이 전하면서, 부족한 나에게 카네이션을 한아름 안겨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주 찾아와 정성어린 선물로 나를 부끄럽고도 흐뭇하게 해 줬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나는 우리 인생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봅니다. 나는 ㅈ에게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관심과 영향력을 미친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시시때때로 받고 있는데, 주님의 제자 된 우리는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되 목숨까지 아낌없이 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을 위해 무엇을 드리면서 살고 있는지요?

  • 나는 주님 앞에서 좋은 제자인가?

 하나님,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는 제자가 되게 하시며, 저희의 자녀들도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저희의 참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우선으로 삼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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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주일 설교 - 좋은 교사의 모습 (딤후 ;1;10-14 9마 7;28-29 )

 

좋은 교사의 모습 - 성경본문: 딤후1:10-14 (마 7:28-29)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신 최고의 랍비입니다. 히브리어로 랍비는 선생님(요20:16)입니다. 복음서의 여러곳에서 랍비라 부르심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랍비라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마28:8,10). 이같이 말씀하심은 선생과 지도자의 책임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낙심케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마가복음 9:42절에 말씀했습니다. (막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야고보사도는 선생된 자의 더 큰 심판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의 최고의 선생이신 예수님 앞에서 교사된 우리의 사명을 다시한번 의식하고져 헌신을 다짐하는 이시간, 교회학교 교사됨에 얼마나 귀중한지를 배우고 깨달아서 교사된 우리가 눈을 밝히 좋은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존.엘.로빈저는 "좋은교사" 란 책에서 좋은 교사 10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 부동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2)인간적으로 좋은 성격 소유자라야 한다.
(3)학생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이유에 대한 신념을 소유해야 한다.
(4)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가르쳐야한다.
(5)공과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교육을 할 수 있는 재질이 있어야한다.
(6)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친교속에서 교육해야 한다.
(7)어떻게 배우는지를 알고 가르쳐야 한다.
(8)학생을 잘 이해하고 가르쳐야한다.
(9)민주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
(10)배우는 자의 심정으로 늘 반성하고, 평가하고 ,기술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교사상을 성경과 교회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최대의 교사는 누군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드신 후 직접 교육하셨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족장들, 예언자들, 교사등을 통해서 교육하게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정의 부모님들을 가장좋은 교사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위대한 교사인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행한일은 무엇인가?
(1)Preaching (설교) (2)Teaching(교육) (3) Healing (치유). 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 당시의 서기관과 율법학자와는 다르게 '권세'와 '능력'있게 가르치면서 항상 주님이 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1.그리고 어떻게 가르쳤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아들 의식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율법학자, 서기관들은 모세의 권위, 율법권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의 소명감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낸 일꾼이요 종입니다라는 철저할 소명 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고 교육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나는 주 하나님의 종, 사도라고"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 서기관 등은 냉냉한 가슴을 가지고 형식적인 율법에 세부조항을 강조하고 사람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결과 그들이 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람을 가지고 사람들을 민망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결과 주님이 가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셋째, 말과 행동의 일치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서기관들은 외식과 형식 곧 위선적인 이중성 속에서 가르쳤기에 자리가 텅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과 행동의 일치 속에서 진리를 가르쳤기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고, 사랑하라는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사랑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원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넷째, 기도와 성령충만 속에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저녁, 한밤중에 기도하면서 제자를 택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추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기도속에서 성령을 충만히 받아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고 배우셨고,그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에서 말씀을 배웠고, 회당학교에서 암송했고,그리고 그 말씀안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율법과 예언서와 지혜서의 박사였습니다. 광야에서 금식기도 하시면서 사단을 물리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일정 일획이라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좋은 교사는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항상 묵상해야 합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여섯째, 사람들의 처지와 이해속에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층 만을 이해하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예수님은 처한 각자의 삶의 상황에 따라서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의 교육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교수법은 다양했습니다. 예수님은 한곳에서만 가르치지 않고 역사의 전체 무대 위에서 가르쳤습니다. 회당, 가정,바다,산,시장, 해변, 등에서 가르쳤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가르치지 않는 것도 죄다."라고 말했습니다. 좋은것을 가르치지 않는것이 죄(罪) 라는 말이지, 도둑질, 남을 해치는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 죄(罪) 라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2.그러면 마땅히 가르쳐야 될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좋은 것이라는 의미 속엔 귀한 것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며, 예쁜것, 견고한 것, 영원한 것이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일찌기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 복되고 영원한 생명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길! 이 진리! 이 생명! 하나님의 현존하심, 그리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만이 구원의 길이고,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교사 자신도 믿고 아이들에게 또 그것을 확신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자가 교회학교 교사이고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 교육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학교 교사직은 봉사직입니다. 봉사의 근본 정신이 무엇입니까?


첫째, 서비스적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정신입니다.
둘째, 진실입니다. 거짓으로 억지로 꾸며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 인내입니다. 오래오래 꾹꾹 참으며 묵묵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희생입니다. 때로는 손해 볼 각오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은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떠들썩 하게 광고내며 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에는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을 것 입니다. 쉽게 말해서 월급이나 사례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상급이 각종의 면류관으로 예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는 분명한 보상이 약속이 되어있읍니다.


사랑하는 교회학교 교사 여러분!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1개에 20만명이 죽었습니다.지금은 핵폭탄 하나에 1,000만명이 죽어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핵무기 보유량은 TNT(폭약) 으로 환산하여 600억톤이라 하며 세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15톤씩이나 올려져 있는 처지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위기입니다. 불안의 시대입니다. 번민의 시대입니다. 들려오는 소문마다 겁을 주고 번민스럽게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전도자 유명한 빌리 그래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번민의 95%가 성경을 읽지 않는데서 온다."고 갈파하였습니다. 핵폭탄의 위기도,불안도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거뜬히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3.우리들 교사가 지켜야 할 수칙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있습니까?


딤후1:13-14절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바른말을 본받아 지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밖에 있는 믿음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밖에 있는 사랑이 있는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교육에 임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맙니다.하나님 위하여 일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기쁘시게 못하면 헛 일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사랑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살리고, 감화를 줍니다. 사랑은 예수님 교훈의 총 집약은 사랑입니다.


셋째, 바른 말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정직한 말,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 하면 못씁니다. 진실하신 예수님 가르치며 거짓말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넷째, 성령의 인도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교사 스스로가 지켜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육은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지성인이라 하여도 교회학교 교육은 맡을 수도, 맡길수도 없습니다. 지식 가지고 하는 것 아닙니다. 세상 지식뿐 아니라 신학지식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대학을 100군데를 나왔어도 성령의 체험과 도움과 역사가 없이는 못하는 교육이 교회학교 교육입니다. 또 경험만 있다고 누구나 다 하는 교육도 아닙니다. 교직 경력 50년, 100년이 되었어도 교회학교 교육 맡을 수 없습니다. 국민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에서 장기간 교육 경력 쌓았다 하여도 교회학교 교육 맡길 수 없습니다. 교수법의 기술만 가지고 되는 교육이 아닙니다.


교회학교 교육은 어떤 법칙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 이것 없으면 불가능한 교육이 바로 교회학교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없이 읽으면 뜻도 모르고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가르쳐 보았자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여 성령의 감동하심을 요청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가르쳐야 하는 교육이 교회학교 교육입니다.


결론


좋은 교사는 철저한 하나님의 종의식, 하나님의 사랑, 말과 행동의 일치,기도와 성령충만, 하나님의 말씀의 사로잡힘, 사람들의 상황이해속에서 이룩됩니다. 위대적 스승되신 주님을 본받아 가정과 교회와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죽어가는 심령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읍시다. 좋은 교사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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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주일 설교 -선생님(요21:15-17 )-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생님~ ^^

본문: 요21:15-17
제목: 선생님~ ^^

여러분,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다음에 벌어진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아직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일어난 일일까요? (올라가시기 전이요!)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은 하늘에 계세요.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아직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시면서 사람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셨던 소중한 일들을 대신 맡아서 해야 할 사람들을 고르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하늘로 올라가 버리시고 '나 몰라라'하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혼들을 살려야 하고, 또 살아난 그들이 하나님께 꼭 붙어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선생님들의 양, 전도사님의 양,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양이기 이전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맡길 사람에게 한 가지 확인을 하시고 여러분들을 맡깁니다. 그렇다면 뭘 확인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한 사람에게 여러분들을 맡기십니다.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분들이고 또 지금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여러분들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을 돌보느라고 이것저것 신경 쓰고 또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공과공부 준비하느라 개인적인 시간도 뺏기고, 예배 시간에 여러분들이 성경 찾는 거, 찬송가 찾는 거, 교독문 찾는 것도 도와주고, 또 어디 부딪혀서 울고 있는 아이 있으면 안아주고 달래주고, 또 여러분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잘 가르치고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토요일 7시 30분마다 나와서 의논하고 기도하고, 또 길거리나 놀이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면 과자 사주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솔직히 우리 선생님들, 여러분들만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 하고 싶은 일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시간과 생활 그리고 물질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꿈과 비전과 계획이 없는 줄 아세요? 할 일이 없어서 이 곳에 나와 계신 줄 아세요?
어떤 선생님은 서울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느라 공부하기도 빠듯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 곳에 계십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고등학교 복음화에 뜻이 있어서 교사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매일 여러분들보다 더 어린 아이들과 씨름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하시느라 휴식이 필요하지만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 곳에 나와 계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죠? 존경하기는커녕 막말하고, 무시하고, 빈정대고, 섬길 줄 모르고, 인사도 안하고...
여러분들 학교 선생님들한테도 그러시나요? 물론 요즘은 학교 선생님도 많이 무시하지만 여러분들 교회 선생님보다 더 우습게 여기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학교 선생님들은 돈이라도 받고 여러분들을 가르치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어떻죠? 돈 받는 거 없습니다. 단 10원도 들어오는 거 없습니다. 전도사님이 장담하건대 여러분들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돈 한 푼도 안 받고 학교에 붙어 있을 선생님은 아무리 많아봤자 한 명입니다. 정말 돈 한 푼도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존경받는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 곁을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돈 한 푼 받는 거 없지만 여러분들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교회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다니는 학교의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보다도 더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나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매 학년 초만 되면 학부형들은 자기 아이 반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 잘 봐달라고 음료수도 주고, 여행권, 상품권, 주유권, 돈까지 찔러 주고요, 뭐 필요한 거 없냐며 빗자루, 양동이, 거울, 프린터, 정수기, 컴퓨터까지 해 놓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한테는 우리 아이 잘 봐달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고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또 여러분들을 돌보고 섬기기 위해서 애쓰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중에 혹시 이런 의문을 가지는 어린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못마땅하면 교회 선생님 안 하면 될 거 아냐~".

여러분!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선생님들의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믿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우리 선생님들은 대답했습니다. "네, 제가 예수님의 양들을 먹이겠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을 푸른 풀밭과 맑은 물가로 인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따르기로 맘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들의 선생님들이 되신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철없는 행동까지도 가슴에 품고 기도해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선생님들 맘을 아프게 할 수 있어요? 그건 바르지 못한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은 기껏해야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우리 교회 선생님들은 생명을 다룹니다. 이 생명은 의사도 다룰 수 없는 생명이에요. 이 생명은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이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미 이 생명을 얻었다구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더 힘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 선생님들이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 교회 선생님을 알게 모르게 무시했던 우리의 잘못을 주님께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세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시는 우리의 선생님들을 따뜻이, 그리고 예의 바르게 대하세요. 그럴 때 우리 선생님들은 새 힘을 얻어서 여러분들에게 더 좋은 풀, 더 좋은 물을 먹이는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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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대표기도 -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교사의 직분을 허락해 주심을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라나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교사의 직분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르시고 세우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모든 교사들이

다시 한번 주님 앞에 헌신을 다짐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오니 모든 영광을 거두어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혼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저희를 불러 주셨는데 지금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허물과 불충함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시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미 우리에게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전달할 수 있도록 회복의영을 허락해 주옵소서.

 

만입이 있어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다 찬양 드리지 못할 저희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교사로 세우시고 날마다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주님, 이 시간 감히 헌신한다는 고백을 드리지 못할 죄인들이지만 자비하신 주님만을

의지하고 이렇게 헌신을 다짐하는 귀한 자리에 저희 모든 교사들이 모였사오니

지난날의 불충성함을 깨끗이 용서하여 주시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이 맡겨 주신 직분을 더욱 더 잘 감당하는 종들ㄹ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능력의 주님, 이 시간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자라나는 생명들을 양육할 책임을 맡은

저희들을 위해서 간구합니다. 영혼들을 궁극적으로 자라게 하시는 분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부름을 받았사오니

더욱 강한 믿음을 허락하시고, 세상의 방법이나 지혤 가르치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의 좋은 모범으로서 어린 영혼들을 성숙한 영혼으로 자라가게 하는 경건한 교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먼저 기도하는 교사가 되게 하시고, 말씀으로 무장된 교사들이 되게 하시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제 특별히 간구하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주일(교회)학교 각 부서들이 있습니다.

각 부 지도 교역자들과 부장 선생님을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각 부를 말씀으로 행정적으로

또 인격적으로 이끌고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은혜를 더하시고 날마다 영육 간에

건강을 지켜 주셔서 결코 피곤에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저희 교회가 더욱 자라나는 영혼들을 양육하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모든 여건과 환경을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오늘 헌신하는 교사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모든 영혼들이 주님의 좋은 군사가 되며 이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인물이 되는

아름다운 결과를 주시오소서. 그래서 저희 교사들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씀이 영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랑의 말씀으로 채워지며, 그들의 행실이 어린 심령들이 따라갈 만한

믿음의 모범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준비하여 전하실 목사님께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모든 교사들이

주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결단할 수 있는 귀한 말씀을 주옵시고

모든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할 때 성령님께서 모든 예배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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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주일 대표기도  - 귀한 직분과 사명을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구별하여 불러 주시고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셔서 어린 생명들을 주님의 귀한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니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할 뿐이옵니다.
주일 저녁을 맞이하여 이 밤에 저희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욱
큰 헌신을 다짐하는 헌신 예배로 드리오니
주님 홀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지난날을 돌이켜 보건대 저희들은 세속과 육신에 관계된 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주님이 맡겨주신
귀한 직분과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게으르고 무익한 교사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

어떤 때는 이 귀한 직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저희들이 감히 이 자리에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헌신예배를 드린다고 하니 양심이 찔려 얼굴을 들지도 못하겠나 이다.
오 주여! 지난날의 죄악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도말 하여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새로운 다짐을 갖고 충성할 수 있기를
소원 하오니 연약한 저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하나님!
저희들에게 맡겨주신 어린양 떼들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게
하옵시며 어린 생명들이 주님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어린 심령들에게 언제나
신앙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교사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혹 부지 중에라도 보여진 저희들의 잘못된 모습으로 말미암아
어린 생명들이 상처 받고 낙심할 수도 있사오니 언제나
주님 앞에서 산다는 저희들의 신앙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먼저 우리 자신을 주의 말씀으로
잘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영혼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교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맡겨진 영혼들을 한 영혼이라도 곁길로 나가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는 교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간구 하옵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고자 힘쓰고 애쓰는 주의 종들이 있나이다.
성령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항상 기쁨이 넘쳐 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고 인정하시는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부장선생님이하, 지도 교사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이
맡기신 어린 생명들을 잘 양육할 수 있게 하시고,
부흥하는 주일학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머리 숙인 모든 성도들도 영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온 성도들이 혼연 일치가 되어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들고 단위에 서시는 강사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목사님의 선포 하시는 말씀을 통해 모든 교사들이
영적으로 재 충전하고 더욱 사명에 충실한 교사들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순서를 맡은 분들에게도 함께 하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밭게 하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 하오며 어린 생명들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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