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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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사무엘하 9:13]
   
 
 
 
 
 
므비보셋은 결코 왕실 식탁을 빛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식탁에서 계속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그의 얼굴에서 사랑하던 친구 요나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므비보셋과 마찬가지로 영광의 왕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삼하 9:8)라고 부르짖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누심으로써 우리를 만족시켜 주십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 얼굴 속에서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백성은 다른 사람 때문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독생자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를 위해 그의 비천한 형제들을 빈곤과 유배지로부터 일으켜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 다음 그들을 천국 왕실로 데리고 들어가 그곳에서 교제를 나누며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게 하실 정도로 강하고 깊습니다. 그들의 몰골이 흉하다고 해서 그 특권을 빼앗기는 것은 아닙니다. 절뚝발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절뚝발이라도 아사헬과 같이 달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업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절뚝발이기 때문에 혹시 우리의 힘이 약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권리가 약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왕의 식탁은 다리를 저는 사람들에게 아주 훌륭한 피난처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의 잔칫상에서 질고 속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위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심한 질고는 가장 사랑받는 성도가 되는 데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 앉아 식사를 하지만, 두 다리를 심하게 저는 그는 왕이 그 성을 떠나 도망칠 때 왕을 배웅하러 나갈 수 없었던 관계로 그의 종 시바의 중상 모략과 해를 당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나 지식이 짧은 성도들은 원수에게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적들에게 노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가는 곳으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같이 다리를 절게 되는 것은 어디서 떨어져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아직 어릴 때 양육을 잘못 받으면 회복이 어려운 낙심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죄로 인해 뼈가 부러지기도 합니다.

주님,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의 모든 백성들을 주님 상에 있는 빵으로 배불리 먹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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