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말씀
고전9:23-27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설교 제목
하늘 상을 받을 자

지금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한일 공동 월드컵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선수들이 차는 뽈 하나 하나에 히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는 결과에 따라서 선수들에게 엄청난 상과 행운이 따르게 됩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사도바울이 전해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후 9장의 후반부에는 사명과 직무에 대한 바울의 마음가짐과 행동 양식이 진술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 사도 직을 수행하기 위해 혼신의 절제와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 왔는지를 운동 경기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썩지 아니 할 면류관을 얻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운동 경기자처럼 자신은 사명의 경주를 해 왔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운동경기의 예는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유효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매 2년마다 올림픽 다음가는 지협 대 경기가 열렸습니다. 고대에서는 이를 '이스미안 경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경기에 참여하는 각종 운동 선수들이 고린도 시 여기저기서 연습하는 모습을 본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본 바울은 신앙이 하나의 투쟁임을 역설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일이 곧 성도의 신앙적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바울은 그와 같은 삶을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도의 현세의 삶은 사단과 죄악과 항구히 싸워야 하는 삶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만이 주님께 의와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신앙에 대한 구변과 지식만 가지고 논쟁과 비판을 일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와 같이 무사 안일하게 내부만 일으킨다면 사단에게 패배하고 말 것이라는 교훈을 간접으로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달리기 선수(24), 권투 선수(26)의 예를 들었습니다. 경기 전의 자기 훈련과 극복의 결과에 따라 승자가 가려진다는 원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즉 성도들은 모든 일에 '절제'가 필요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취향, 내 권리를 무한정 행사할 수 없는 것이 성도의 삶이며, 반면에 성도의 삶은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또 이를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종시키면서 사는 자가 영생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늘 상 받을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⑴,복음을 나누는 자(23)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을 먼저 받았습니다. 그는 그 복음을 이방인
과 함께 나누고자 온갖 노력과 희생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에서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이란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했다는 뜻이요 복음에 참여하고 함이란 복음을 나누어 갖고자 함이란 뜻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스스로 원해서 고생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바울은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육적으로 그는 당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당당한 신분이었고, 영적으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모든 죄와 사망과 속박의 굴레로부터 자유한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권리를 포기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는데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뜨거운 중심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바울이 전적으로 자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 포기의 삶을 살면서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라고 말한 것은 교역자의 모범을 보인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비롯한 기타의 일들을 버리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포기야말로 종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처럼, 그
리고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처럼, 그리고 연약한 신자들
에게 가서는 믿음이 약한 자처럼 살았습니다. 율법 없는 자란 율법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를 말합니다. 전도는 무엇보다 전도 대상자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출발해
야 하며, 인간적인 이해와 현실적인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에 참례하고자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전도 방법에서 좋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전도는 일방적으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외치는 것에 국한되거나 어떤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복음 전도는 바울 사도와 같이 전도의 대사에 대하여 자세히 알 필요가 있고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여 지혜로운 복음 전도 방법을 모색하여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던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나누는 자가 하늘의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는 약속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께 복을 먼저 받고 그 복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먼저 받고 나누어주는 자는 하늘의 상이 큽니다.

⑵,최선을 다하는 자(24-25)
상을 받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았다고 모든 일을
다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경기장의 선수들이 일 등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달리는 것과 같이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 절의 예화는 당시 고린도에서 3년마다 성대하게 열리던 이스무스 경기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 대회는 헬라 전국에서 모인 관중들로 열광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같은 경기를 연상하면서 달리기 경주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상을 얻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이라 해서 모두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분투 노력 자에게만 상이 주어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그 행실이나 인격이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이라면 뭔가 불신자들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복음의 능력이 증명될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평안한 삶이 약속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 인의 경주란 말씀을 얼마나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느냐,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주의 목적지와 인도자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상을 얻는 자는 하나라고 했는데 이는 신앙생활의 경주에서 상을 받을 자가 하나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상을 얻기 위해 쏟아야 할 최선의 절제를 강조한 것입니다. 상을 얻도록 달음질을 하라고 한 말에서 '얻도록'은 '꽉 쥐어 붙
들다'란 뜻이 있습니다. 이는 신자가 하나님의 상급을 위하여 결사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을 얻도록 달음질하라고 한 것은 당시 운동선수들이 나뭇잎으로 만들어 쉽게 썩을 수밖에 없는 면류관을 위해서도 자신의 생활을 절제하며 훈련에 열심인데 고린도 교인들이 썩지 아니할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서 열심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미구에 있을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상급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사모하여 복음과 그 약속에 대한 신뢰와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 열심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에게 하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이 얍복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가족들을 먼저 건너가게 한 후 홀로 철야 중일 때 어떤 사람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여 이겼습니다. 씨름에서 이기려면 있는 힘을 다하는 법입니다. 즉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야곱은 최선을 다하여 승리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경기장에서 상 얻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많은 사람이 달음질을 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한 사람뿐입니다. 일 등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을 받는 일 등을 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초선을 다하는데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⑶,자기와 싸우는 자(26-27)
바울은 권투 선수의 비유를 들어 성도들의 삶이 목표 없는 자처럼 되어서는 안 되며 타인의 구원과 함께 자신의 상급을 위해 하나님 앞에 스스로 쳐서 복종시키는 삶 즉 절제와 극기의 삶을 살 것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향방 없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 것, 인정되지 않는 것'인데 이는 경주에서 목표가 없이 불안정하게 달리는 모양을 묘사한 것입니다. '허공을 치는 것' 은 권투의 비유로서 주먹으로 상대를 쳤으나 맞지 아니하고 공중에다 헛손질하는 모양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실 적의 급소를 모를 때맞추지 못하여 공연히 헛손질만 하게 됩니다. 그리이스, 로마 시대의 운동 경기로는 경마, 마차 경주, 육상, 레슬링, 음악, 또는 시, 경연 그리고 맹수와의 싸움 등이 있는데 본문에서 바울이 언급한 복싱도 그 당신의 운동 경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쇠로 된 장갑인 케스투스를 끼고서 시합을 했는데 어느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시합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허공만 치다 보면 결과는 죽음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성도들도 향방 없는 삶, 허공을 치는 삶을 지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아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한 것은 남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파한 후에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본 절은 구원의 여부보다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급을 위한 최고의 자제와 정진을 격려한 것입니다. 그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뛰는 달리기 선수와 같이, 상대를 정확하게 때리는 권투 선수와 같이 신앙 활동의 목적이 분명하기에 상급에 대한 열망 또한 누구 못지 않게 강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한 것은 영육간의 긴장과 계속적인 신앙 경주를 위해서 자신을 말씀에 철저히 복종시키고 죄악의 성향을 제거하는 작업을 부단히 한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을 얻도록 최선을 다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울은 이스라엘 왕이 된 후에 이웃나라 대적들과 싸움에서 그때마다 이겼습니다. 즉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보기 좋게 이겼고 그 다음에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깨끗이 이겼습니다. 이처럼 사울은 대적과의 싸움에서는 훌륭하게 이겼으나 자기와의 싸움에서는 실패하고 끝내는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즉 제 욕심을 못 이겨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내 몸을 처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내 몸을 치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이기는 자가 하늘의 상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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