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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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리는 것은 믿음 뿐이기에…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히 10:38)


 뜨거운 계절 7월의 첫날이 되었습니다. 더위에 건강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해 전에 대연각 호텔에 큰 화재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서 죽고, 뛰어내리다가 죽고, 또 끝까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에는 질식해서 죽는 대 참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때 큰 사다리나 줄이 연결되어서 그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수 많은 영혼들이 멸망에서 구원받는 길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불못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원의 길은 우리의 도덕이나 수양도 아니고, 선행도 아니며 고매한 성품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다리를 놓아 주신 것입니다.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사다리는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본문에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자세히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인간의 행위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가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이 결코 우리의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중세기 암흑시대에 기독교가 심히 타락하여 면죄부를 팔아 먹을 때, 마틴 루터가 분연히 일어나 종교개혁을 일으킨 가장 큰 핵심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고행이나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도 없고 율법을 다 지켜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로마서도 강조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롬 3:23, 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5:9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롬 8:1, 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갈 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엡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 이 말씀에서 '은혜'나 '믿음'이나 '선물'이란 말은 모두 우리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값 없이 받는 것이지 우리의 행위나 공적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라도 우리의 선행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죄를 보고 낙심하지도 말고 내 죄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감정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우리의 감정을 의지해선 안됩니다. 우리의 느낌이라는 것은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몹시 기쁘고 흥분되어서 산봉우리에 올라간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캄캄한 터널 속을 지나는 것 같이 감정이 침울하여 메마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느낌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따라 믿음이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태앙은 항상 변함없이 떠오르지만 때로는 구름이 가리우고 안개가 가리울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느낌, 감정, 기분이라는 것은 바로 이 구름이나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나 성령을 받았을 때는 천지가 다 변한 것 같고, 춤출듯이 기쁘고 즐겁지만 얼마 지나면 그 감정이 심어지고 담담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은혜가 떨어졌나, 혹은 구원을 잃어버렸나,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하고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그대로 있고 성령도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의 느낌이 변한 것 뿐입니다.

 여러분, 처녀와 총각이 연애할 때나 약혼시절에는 깨가 쏟아지듯이 즐겁고 기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감정이 고조되지만, 결혼하고 몇년이 지나 보십시오. 감정이 늘 그렇게 깨가 쏟아집니까? 시간이 흐르면 담담해 지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연애할 때나 약혼했을 때보다 결혼하고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 사이는 더 가깝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나 성령을 받았을 때의 그 느낌과 기쁨이 식어졌다고 신앙이 약해지거나 하나님과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순간의 감정, 기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함을 항상 굳게 믿고 신뢰하며 살 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기도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만 성경 읽거나, 교회에 가고 싶은 느낌이 올 때만 교회에 나온다면 그 신앙생활은 전부 자기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못됩니다. 기분, 감정은 육에서 나온 것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기분이나 감정에 젖어서 느낌이 좋을 때만 기도하고 성경을 보거나, 예배에 출석한다면 그 신자는 물거품 같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형편없는 신자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인간의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우리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의지적인 성령의 능력을 믿어야 됩니다. 가령 처음 성령의 불을 받을 때처럼 뜨끈 화끈할 때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런 느낌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지 않는다고 느끼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3. 인간의 보고 듣는 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믿음은 인간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감정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보고 듣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후 5:7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고후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지 보이는 것에 의존하면 잘못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말씀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데, 어떤 이들은 안믿는 사람들이 점장이를 찾아다니며 복채 내놓고 점을 치듯이 이곳 저곳으로 예언기도 받으러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우리의 궁금증이나 풀어주기 위해서, 혹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예언해 준 일이 있습니까? 한 곳도 없습니다. 목회하면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그렇게 예언기도 받아 보고 무슨 일을 처리하는 사람치고 성숙한 신자로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거의 다 중도에 잘못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데 남의 속에 있는 예수님께 물어보려고 합니까? 또는 환상같은 것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고, 환상이 보이거나 음성이 들리면 하나님 말씀보다 그것을 더 의지하려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를 원하십니다. 보거나 듣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은 결국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기 쉽고, 그런 것이 안보이면 은혜가 떨어진 것처럼 느낍니다.

 설혹 환상이나 음성이 들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환상과 음성은 다만 참고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앞 날에 되어질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죽는 날을 미리 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미흑하는 잘못된 신비주의자들은 미래 일을 예언하거나 점쳐 주고,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계산해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10리나 100리를 비추는 등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하루를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행위도, 감정도, 보고 듣는 것도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서 간혹 기쁨을 빼앗아 가고 감정의 고갈과 쓰디쓴 맛을 보게 하면서까지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게끔 이끌어 내십니다. 또한 자기의 선행이나 자기의 의를 믿는 사람에게는 큰 실수와 실패를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라도, 예수님의 피만을 의지하게 만들고 십자가만을 붙들게 하십니다.

 초신자는 기도 응답을 잘 받다가도 성숙한 신자가 되었을 때에는 떡을 구했는데 반대로 돌이 나타나고, 생선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생선 대신에 독사가 나타나 덤벼들어서 시험을 당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변치 않을 때 돌멩이가 변하여서 떡이 되게 하고, 독사가 변하여 생선이 되게도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의지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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