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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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인간 내면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행위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고 의미 있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칭찬 없이 책망만 하셨습니다.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실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
   1) 부유한 사람들의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된 교회입니다(참조, 골 4:16). 라오디게아는 지역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이곳은 소아시아를 관통하는 세 도로의 교차 지점이었으므로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는 은행이 모여 있었고 직물업이 발달했습니다. 또 유명한 의술 학교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활에 별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윤택한 지역입니다. 때문에 이 도시에 세워진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일상생활로부터 오는 윤택함에 자만으로 부풀어 있었고 신앙의 뜨거운 정열을 찾아볼 수 없는 세속적인 교회였습니다.
   2) 교인들의 사고방식
   17절에서 보듯이 '나는 부자라 고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참으로 방자하고 어리석은 사고방식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만큼 힘 있고 부귀와 영화를 맛본 임금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며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나그네이며 그림자같이 지나가는 삶이 인생입니다.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지극히 찰나적인 것이 인생입니다. 따라서 자랑하고 자만하는 모습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성도는 가졌을수록 인생의 짧음을 기억하고 이웃과 나누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책망
   1) 전능의 주께서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19절은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주님을 책망자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순종하시는 '아멘'이시며 변함없이 성실한 분이십니다. 충성스런 분이십니다.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능력을 가진 분이십니다. 이토록 성실하신 분, 이토록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분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책망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2) 행위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행위만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시 33:13, 14). 그는 우리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시 139:3)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은 지금 나의 행위도 아십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성도들은 은밀한 곳에서도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3) 토하여 내리치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15절) 교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믿고 복음의 참된 증인이 되어야 할 신앙인들이 전혀 신앙인 같지 않은 애매모호한 태도와 행위를 가진 교회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태도로서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며, 이 세대의 풍조를 거슬려 영적 투쟁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진노하셨습니다. 주님이 토해 내시면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도 구원받지 못하는, 바깥 어두운 데 내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3. 라오디게아 교회가 살 수 있는 길
   첫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한 미온적인 신앙 태도가 문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젠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합니다. 충성스런 교회가 되든지 아니면 버려질 것을 각오하든지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충성스런 교회가 되기를 결단한다면 제일 먼저 불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는 자만하여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과 권위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영적으로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한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 곧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회개하여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추하고 더러운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제 모습을 바로 발견할 때만이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참조, 눅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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