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
(약 4:13-16)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장마철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치밀하신 시간의 운영 속에서 정확하게 계절의 변화를 보게 됩니다.

 피조물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집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제의 일은 금방 잊어버리며 내일의 일에 대해서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계획을 세웁니다. 이는 누구나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마치 내일에 대한 인간의 기대나 계획이 다 소용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 본문 때문에 내일을 위해 저축하거나 생활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아무 계획없이 그날 그날 기도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참으로 신앙적인 태도일까요? 그리스도인에게 내일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의 내일의 삶에 대한 태도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문제를 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그리스도인은 내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에는 늘 염려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과거에 실수한 것을 후회하며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 염려의 대부분은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들로 인해 우리는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내일의 일들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오늘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어 오늘의 생활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는 내일 일의 가능성을 좌우할 힘이 없습니다.

 마음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그 성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잠언 기자는 말했습니다(잠 16:1).

 예수님께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의식주(衣食住)의 문제로 온 정신을 쏟아붓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염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 6:27).

 염려는 단지 우리의 정신을 소모시킬 뿐입니다. 고로 그리스도인은 내일 일을 염려하며 안달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내일이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 있고, 하나님이 머리털까지도 세실만큼 자신을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마 10:30).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는 우리 성도들은 내일 일을 위해 성실하게 준비하되 내일의 염려로 오늘의 귀한 시간을 저당잡히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내일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주인이시고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내일의 일을 계획하시고 계획하신대로 반드시 행하십니다(출 9:5, 18). 그는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뜻대로 행하시는 전능(全能)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지나간 과거나 지금 현재나 다가올 미래의 모든 날들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미래를 보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 아침 출근 길에 생길 일조차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내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의 일을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년간의 사업 계획을 짜놓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자랑하는 자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들을 자기의 한계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합니다(약 4:13, 14). 이들은 내일의 일에 대해서 무모한 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행할 수 있다는 너무나 큰 어리석음과 오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눅 12:16-21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는 이러한 자들의 어리석음을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약 4:14). 고로 이미 사라질 것들을 자랑한다는 것은 실로 헛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닫고 그리스도인이란 내일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실하며 겸손하게 내일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내일을 준비하며 삽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추측할 수는 있으나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염려하기도 하고 방종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방종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은 모른다. 오늘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고전 15:32-33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도 이렇게 방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는 거짓 교훈에 속아 내일은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내일이 있고 내일의 소망도 있습니다. 먼 장래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고 모든 내일에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평강이 있습니다. 섭리(攝理)가 무엇입니까? 전통적으로 섭리(providence)는 하나님의 보호(preservation)와 협력(concurrence)과 통치(government)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거나 방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보호하시고 우리와 협력하는 가운데 우리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내일을 주신 분은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 뜻 안에서 내일을 준비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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