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본문은 디베랴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사도직의 수행을 부탁하신 다음에 베드로와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암시적인 말씀을 하신 내용과 요한 자신이 기록한 이 복음서가 진실을 증언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다 증언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요한복음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에서 사도 요한, 예수의 삶에 대한 증언의 인간적 한계 등을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베드로와 요한의 삶과 죽음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23절). 여기서 '그 제자', '그'는 사도 요한을 가리키고, '내가'는 주님을 그리고 네게'는 베드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그것은 이 두 사도들이 평소에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던 제자였다는 점과 앞으로 이들 두 사도들이 신약 교회의 두 초석이 될 것이라는 암시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 함께 가버나움성 밖 벳새다 사람으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같은 날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인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단순, 솔직하여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한 반면에 요한은 초기에 '우뢰의 아들'(막 3:17)이라고 할 만큼 성질이 과격했었으나, 주님으로부터 받은 감화로 관찰력과 이해력과 사고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자로서 주님과 주님의 교훈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능력 있는 전도자요 목회자라고 한다면 요한은 심오한 사상가요 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조적인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죽음'까지도 달리할 것이라는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각기 하나님이 주신 성격, 재능, 그리고 운명을 가지고 자기의 삶을 엮어가는 것입니다.

   2. 참된 증인으로서의 사도 요한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24절). 사도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만찬회 석상에서도 주님의 품에 안길 만큼 주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습니다(20절).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것은 참된 증인으로서의 가장 합당한 자격 요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과 그의 서신 속에서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깊이 이해한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증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진리'였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으며, '생명'이었으며, '빛'이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창조를, '인간'을 '사랑'으로 이해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8:21). 이 대연합의 원리와 그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이것이 그의 믿음이요 참된 증언의 핵심입니다.

   3. 예수의 삶에 대한 증언의 인간적 한계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5절). 복음서들에 나타난 주님의 언행에 대한 기록은 거의가 약 3년 반 동안의 생애 기간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이 여기서 '예수의 향하신 일'이라는 뜻도 바로 그 공생애 기간의 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도…두기에 부족'할 것이라는 말은 그 양에 있어서 무한대하다는 뜻입니다. 짧은 공생애 기간의 삶의 양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한 말씀을 가지고서도 수천, 수만의 책을 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당신 하나를 증거하는 책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참조, 요 5:39). 구약의 역사, 문학, 율법, 예언 등이 모두 자기 한 사람에게 요약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 사역을 완수하신 것은 창세 이래 모든 인간들이 이룩한 업적의 총화보다도 큰 것이므로 그것을 양으로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무한대한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척도로도 잴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주 만물 속에 자신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 안에 편만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공간이 그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무한대한 진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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