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본문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삶에 지친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께서 영생을 선물하실 것을 제안한 내용입니다. 여인은 생수로 비유하신 주님의 영생의 제안을 깨닫지 못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영생의 길을 몰라 방황하는 인생들의 한계 상황과 그와 같은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어쩌면 죄악 세상의 옛 우물가에서 삶의 의미와 희망에 대해 끝없이 목말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14절) 마시라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인생의 한계적 상황
   여인은 생수를 주실 수 있다는 주님의 제의에 대해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디서 생수를'(11절) 구해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서 니고데모와 같이 영적 진리에 대한 인간들의 한계적 사고와 상황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영생의 수단에 대한 한계 의식
   여인은 '물 길을 그릇'(11절)이 어디 있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팔레스틴의 저수용 우물은 대개 3m 이상의 깊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영생의 선물에 대한 주님의 무조건적인 제안에 우선 수단부터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강조하는 인생들의 폐단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복과 희망을 바라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수단만을, 그것도 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행복의 시여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삶의 방법론만을 귀히 여기는 것이 타락한 인생들의 전반적 사고입니다(참조, 롬 1:22, 23). 또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과 진리마저도 인간의 수단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의 행위로, 이방인들은 철학적 명상으로 영생 획득의 수단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생명수'를 선물하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참조, 사 12:3; 사 55:1; 계 21:6).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생 선물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참조, 롬 3:23-26). 하나님의 선물을 인간의 수단과 노력으로 맞바꾸려 하는 사고가 인생의 교만이며 또한 비극입니다.
   2) 영생의 대상에 대한 그릇된 의식
   여인은 또한 우물이 깊은 것을 강조하며, 이 깊은 우물을 판 옛 조상 야곱의 지혜를 자랑했습니다(11, 12절). 왜냐하면 팔레스틴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생수가 솟아나는 우물은 좀처럼 만나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우물도 땅에 스며든 물을 저장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즉 그와 같은 저장용 우물도 파기가 힘들어 야곱 같은 지혜로운 이도 겨우 찾았는데, 당신은 어디서 솟아나는 생수를 구해 준다는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2절)라는 질문에는 그리스도께서 조상 야곱보다 그 지혜나 덕에 있어서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옛 성현의 범주에다 가둬 두려 합니다. 그분의 신적 본질을 의심합니다. 진정 야곱의 우물처럼 우리 삶의 죄악의 문제가 중한 것은 그 우물보다 더 깊고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사랑에 무지하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태양을 향해 서면 내 앞의 모든 그림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죄악과 불행의 그림자가 아무리 어두워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아들의 사람을 믿을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야곱의 옛 우물터에 집착하는 고루한 의식을 떠나야 합니다. 종교적 전통, 형식적 종교 습관 및 나의 수단과 공로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그 의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안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영생의 제안
   1) 옛 삶의 한계성을 지적하심
   주님은 여인에게 그 옛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13절) 목마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의 랍비들은 '율법의 지혜'를 생수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적 제의'로는 양심의 만족을 누릴 수가 없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참조, 히 10:1-4). 또 세상의 희망과 행복을 사람들은 '삶의 샘터'로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 행복은 바닷물과 같아 마실수록 갈증을 더해 줍니다. 오직 우리 삶의 참된 음료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철학의 해답입니다(참조, 롬 13:10).
   2) 영생의 성격을 알려 주심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절). 이 말씀은 주님을 영접한 자들은 진리와 생명의 성령께로부터 끝없이 사랑을 공급받는 삶을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참조, 요 14:17, 18).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을 샘물처럼 이웃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주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랑을 나눠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TAG :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