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설적 진리
(요 12:24,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거의 매년 이맘때쯤이면 우리 나라엔 태풍이라고 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옵니다. 매년 예상되는 일이기 때문에 미리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그 엄청난 태풍의 위력앞에 여러 가지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는 것을 볼 때, 하나님과 자연 앞에 연약한 인간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고 대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에는 보통 인간적인 지혜나 세상 상식으로는 정반대 되고 모순되는 것과 같은 진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설' 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Paradox'(파라독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모순같이 보이지만 올바른 진리'입니다. 오늘 이 말씀 몇 가지를 생각해 보는 가운데 우리의 신앙을 더 두텁게 하고 또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마 5:44에 보면 "너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또 마 5:11에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목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원수는 미워하고 복수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 상식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와 반대로 핍박하고 손해주는 자에게 축복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한 예를 요셉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그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증오하던 나머지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다가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서 13년 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며 종살이를 하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일약 대애굽 제국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때 온 땅에 흉년이 들어서 곡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형들이 왔을 때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복수하고 아마 형들을 내쫓았겠지만 요셉은 반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하고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사랑했습니다.
또 그후 17, 8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니까 형들은 이제라도 요셉이 복수를 할까봐 찾아와 엎드려 비는 말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당신에게 이르기를 네 형들이 너에게 잘못을 행하였을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이 형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혀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자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진흙을 던지려면 내 손에 먼저 진흙이 묻어야만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감정과 같이 원수를 미워하거나 복수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태평양 가운데에 있는 「피지」라는 섬나라에 빌리 부쓰(Billy Booth)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집에 가서 전도를 하다가 집주인에게 질그릇으로 머리를 얻어맞았습니다. 빌리부쓰는 전에 용감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구원받는 후에는 그가 군에서 차고 다니던 큰 칼을 벽에다 걸어놓고 예수믿기전에 자기가 얼마나 포악했던가 하는 것을 늘 반성하고 그 앞에서 성경을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하다가 질그릇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까 머리도 아프지만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에서는 여자들이나 질그릇으로 얻어맞지, 남자들은 질그릇으로 때리지도 않고 질그릇으로 얻어맞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그릇으로 얻어맞고 그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분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벽에 걸려 있는 칼을 붙잡고 가서 복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고 참으면서 마침 칼 밑에 펴놓은 성경을 들어 읽어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는 이 말씀에 그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편한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엌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질그릇을 하나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빌리 부쓰는 그 사람을 보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질그릇이 내 머리를 때리다가 깨졌으니 대신 이 질그릇을 받으십시오, 성경에 의를 위하여 때려서 내가 그것 때문에 천국에도 가게 됐고 하나님 앞에 많은 상을 받게 되니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질그릇을 받고 크게 감동을 받아 그도 예수를 믿고 전도해서 그 온 동네가 복음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그대로 도리어 사랑을 베풀었더니 자기도 복을 받고 그 사람도 구원받고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행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2. 죽으면 살게 됩니다.
요 12:24, 25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존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육신의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게 되면 도리어 영혼과 육신이 아울러 살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기 싫어서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죽으려고 하게 되면 도리어 백배, 이백배 많은 것으로 살게 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듯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고, 밀알이 흙에 묻히듯이 무덤 속에 갇히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또 이 한 알의 밀알이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육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을수록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죽어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누구 한 사람이 죽어지려고 할 때 복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고후 4:10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죽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활에서 날마다 죽으려고 할 때에 예수님의 생명의 부활이 나를 통하여 많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많이 죽을수록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죽는다고 하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3. 주면 풍성해집니다.
눅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회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받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움켜지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은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까, 바칠 수 있을까' 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축복해 주시고 안겨 주십니다.
고후 9:6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말씀했습니다. 잠언 19:17에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서 꾸미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될 수 있는 대로 돈이나 옷이나 양식이나 그 무엇 하나라도 남에게 주도록 힘쓰십시오. 주면 없어질 것 같고 하나님께 바치면 없어질 것 같지만 하나님께만 사람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바치고 많이 나누어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4.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마 11:25에 보면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나이다" 말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눈이 밝아지기는 했으나, 쓸데없는 면으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것은 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인본주의적이고, 반신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고전 1:18, 19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나 총명을 가지고는 절대로 이 십자가의 구원의 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할수록 도리어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신앙이 유치하고 영적인 수준이 얕을 때는 이론이 많고 비판적이고 말이 많지만, 신앙이 장성해지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해져서 세상 적으로 볼 때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후부터는 내 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살게 되고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고 말씀했습니다.
5. 약할 때 강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상한 병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해주면 병이 나으면서 정작 자기의 병은 기도를 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에 바울은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 10)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약하고 무능함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처음에 내 힘으로 죄를 이기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줄 알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왠 일인지 거룩하게 살고 죄를 안 짓고 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를 짓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롬 7:24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하고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롬 7:18에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롬 7:16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신령하게 살려고 하여도 육체 속에는 죄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어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의롭게 살수도 없는 지극히 약한 존재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로마서 8장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죄를 안짓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이미 구원받았고 의롭게 됐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내 힘으로 신앙생활하려 할 때는 육체에 잡히고 육체에 잡히게 되면 죄에 잡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조그만 계집 종 앞에서도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세 번까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 때 베드로를 근심하면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자기의 무능력함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믿음을 지키거나 죄를 안지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완전히 주님께 항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후에 성령의 능력을 받고 한번 설교할 때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남보다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깨져야 합니다. 내 힘으로 죄를 안짓고 경건한 생활을 할 줄로 아는 그 생각이 깨져서 하나님 앞에 확보하게 될 때 주님은 그 때에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는 어디까지나 육체입니다. 교육을 받아도 육체요, 수양을 해도 육체입니다. 은혜를 받아도 육체는 어디까지나 육체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는 것은 버림받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지고 실패했어도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과 무능함을 깨달을 때 주님의 능력이 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 약함을 깨닫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야곱은 20년이나 걸려서 환도뼈가 위골된 다음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무력하고 결점 투성이요, 죄된 육체를 쓰고 있을 뿐임을 철저히 깨닫고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고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약하다고 느껴질 때에, 나는 못한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죽으면 살리라, 주라,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다. 약할 때 곧 강해진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는 반대되는 이 역설적인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고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