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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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은 앞의 내용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앞의 내용이 서론적인 것이라면 본문은 본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내용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크게 셋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갈대아인들의 참소
   당시 갈대아인들은 바벨론을 침공하여 정복한 자들로 유다 민족의 지배 민족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 역시 갈대아인임을 생각할 때 그들이 얼마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다니엘과 세 친구에 대한 시기
   8절의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피지배 민족의 몇 사람에 대한 갈대아인들의 강한 투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대아인들에게는 열등한 민족이 자기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란 사람을 눈멀게 만들며 분별력을 잃게 하고 결국에는 뼈를 썩게 하는 것입니다(참조, 잠 14:30; 27:4). 그래서 그들의 시기는 마침내 적의로 발전하였고 9-12절까지의 내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어 죽일 것을 주장하게까지 되었습니다.
   2) 그들의 참소 내용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 내용은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섬기는 신에게 절하지 아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치와 전쟁은 신들과 떼어 생각할 수 없었고(참조, 대하 35:21), 따라서 국가가 수호신으로 여기는 신에 대한 모독이나 부정은 곧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으며,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참조할 때 유다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죄는 막중한 것이었으며 느부갓네살을 진노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의 참소가 단순히 몇몇 특정인을 넘어서 기 왕에 '유다 민족'을 겨냥하고 있음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8, 12절). 결국 어떤 의미에서 본문이 보여주는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과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민족과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조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참조, 에 3:6).

   2. 느부갓네살 왕의 반응
   1) 그의 관용
   느부갓네살 왕은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를 듣고 진노했으나 이내 왕다운 분별력을 되찾고 어쩌면 그것이 모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음인지 전례 없는 관용을 베풀어 우상에게 절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왕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있어서 충성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많은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었습니다(1:19; 3:49). 게다가 마땅히 금신상에 대해 절하지 않은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기로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자기들을 살리고자 재차 유한 말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상 성도들에게 있어서 보다 어려운 시험은 이처럼 관용을 베풀며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확고함은 위협 앞에서나 친절 앞에서나 동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그의 교만
   16절에서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의 관용이 위협으로, 그리고 다시 교만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열등한 피지배 민족이 섬기는 한 지방 신에 불과했고, 따라서 그에게 대수로운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신이 보호하는 민족을 자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중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3. 세 신앙인의 단호한 태도
   1) 왕의 제의에 대한 무시
   세 신앙인의 주목할 만한 태도 중 첫 번째 태도는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하는 왕에 대한 무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왕의 친절이나 위협은 그들의 신앙 고수보다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으며 고려할 만한 가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앙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은 확신에 가득 찬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임재를 확신하였습니다. 아울러 이 같은 태도는 우리에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교통하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3) 무조건적인 신앙
   그들의 태도 중 가장 절정의 것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에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내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금신상에 대해 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의심이 아닌 그들의 신앙이 확고함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베푸신다거나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모든 섭리에 대한 주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신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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