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모순을 극복하자
(창세기 22:1-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모순이란, 앞뒤가 맞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많은 일에 직면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고난을 겪기도 하고, 악인이 번창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일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때로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신앙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지라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1. 훌륭한 신앙은 모순을 극복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을 때는, 인스턴트(instant) 식품을 먹듯이 기도 응답도 잘 받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즉각 즉각 잘 받고 체험하지만, 신앙이 성숙해 갈수록 믿고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모순된 일을 만나게 되고 내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 '예수 믿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하고 낙심하고 믿음을 포기하지만 훌륭한 신앙의 사람은 모순된 일이 나타나도 더욱 굳세게 믿고 의지하면서 이를 극복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참으로 믿을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이를 믿고 순종하여 모순을 극복하고 축복을 받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있는 대로 그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한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사상 최대의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는 언약과 더불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창하게 하겠다는 축복으로 받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낳을 수 없을 때, 100세나 되어 기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아들인데, 이제와서 그를 번제(태워드리는 제사)로 드리라니, 살인을 금하고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잔인한 명령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고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이런 큰 모순을 극복하고 순종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참으로 훌률한 순종이었습니다. 신속한 순종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주저하지 않고 아침 일찍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또 타협하지 않는 순종입니다.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부인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또 겸손한 순종입니다.
사환을 데리고 가서는 밑에 남겨 두고 단 둘이 산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완전한 순종입니다. 성경에 3일 길을 가서 제사를 드렸다고 했는데,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지만 그는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3일 길을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으로 믿을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것까지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과연 위대한 신앙인 입니다. 결국 칼을 들어 치려고 할 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는 줄을 아노라" 하는 인정을 받고 엄청난 복을 받고 역사 위에 길이 빛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욥이 훌륭한 것은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다 불타고 도적 맞고 없어졌을 뿐 아니라, 열 자녀가 태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어 버렸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던 것 때문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지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믿음을 굳세게 지켰을 뿐 아니라, 온 몸에 악창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도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겠노라'(영문성경)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실패를 당하는 모순된 현실에 직면했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결국 갑절의 복을 받고 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사르밧 땅의 과부는 그 무서운 흉년 기간에 마지막 한끼 먹고 죽으려고 했던 대단히 귀한 양식을 내 놓으라고 하는 엘리야 선지자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밀가루 통이 마르지 않고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특별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모순된 일을 믿고 순종한 결과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어도 잡지 못하고 허탕치고 돌아 왔을 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불합리한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밤에도 안 잡혔는데 대낮에 어느 정도 얕아야지 고기가 잘 잡히고 그물질하기도 쉬운 법인데 가기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까지 제 생각과 이성에 맞는 말씀만 믿고, 그렇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참된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모순 속에서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은 내 생각과 계산대로 안되는 것을 믿는 것이요, 내 기도한 것과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도 끝까지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순 속에서도 믿는 신앙입니다.

 불란서의 마르땡(Jaegues martain)이란 사람은 '믿음이란 자기의 전 생명을 완전히 부속시키는 것이다' 고 말했으며, 카프카(Cafka)는 '믿음은 단두대의 칼' 이라 했으며, 마틴부버(Martin Buber)란 위대한 철학자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신을 바치기로 맹세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참다운 신앙의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요, 이런 모순 속에서 신앙을 지킬 때, 병 고침도 축복도 기적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성도는 언제 모순을 느낍니까?

 신앙이 성장하려면 우리들의 신앙 생활 속에 모순을 느낄 때, 이를 잘 극복해야 됩니다.

 첫째, 악인이 의인보다 잘 될 때 모순을 느낍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악한 일을 자행하는 사람은 잘 되고,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아보려고 사람이 더 고생하고 못살 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럴까?' 하고 신앙에 모순과 회의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편 37:1, 2시 37:1에 "행악하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여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 지라도 없으리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옳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자맷돌은 천천히 돌지만 그러나 골고루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독한 히틀러가 승리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의가 최후 승리를 거두고 그는 멸망했습니다. 일본이 전쟁에 다 이긴 듯 했지만 결국 멸망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타날 때가 반드시 있음을 믿고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 축복 대신 손실이 올 때 모순을 느낍니다. 축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망하고 손실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믿고, 회의에 빠져서 실망해선 안됩니다.

 시 37:5, 6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빛 같이 하시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중국에 송전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이 참 좋고 전도를 잘 해서 송전도라는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젊은 나이에 3남매를 남겨 놓고 죽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모순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후에 그의 자녀들이 축복을 받아 큰 딸 송경령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손문위 아내가 되었고, 아들 송자뭉는 하버드, 콜롬비아 두 대학을 나와 중국위 재정 장관이 되었고, 막내딸인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아내가 되어 한 때 그 삼남매가 전 중국을 다스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좁은 인간의 생각과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서 모순을 느끼고 불신앙에 빠져선 안되겠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복받을 일을 했는데, 손해가 올 때는 다음에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흔들어 보시는 때로 믿어야 합니다.


 3. 왜 모순을 극복해야 합니까?

 첫째,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어떤 갈등과 모순 속에서도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연단을 위하여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주실 때가 있지만, 결국은 좋으신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해 주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어떤 모순에 직면해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마 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좋으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셋째, 내세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죽음 후의 내세의 심판과 천국의 소망을 믿기 때문에 어떤 모순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억울할 때는 '종점가서 보자' 하는 믿음을 가지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러다 보면 종점 가기 전에 "정호의 빛과 같이 빛나게"(시 37:6)해 주실 때가 오는 것입니다.
히 11:13-16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어떤 모순과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