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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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은 믿는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최대의 시험에 직면해야만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행동에서 위대한 믿음의 역사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유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 근과도 같이 무거운 하나님의 요구를 받고도 주저하거나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속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즉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는 신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번제에 쓸 나무를 신중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의 결심은 단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종들을 신 밑에 남아 있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1. 아버지의 희생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서 이 아들이 어떻게 얻어진 아들이며, 얼마나 귀한 아들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 아버지의 모든 희망과 열망 그리고 애정이 이 아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애정과 목적이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 집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치르신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그의 모든 것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2. 아들의 순종
   "두 사람이 동행하였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죄를 구속하는 일을 할 때 "그들은 동행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 40:8)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버지의 목적과 아들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이삭도 다음과 같이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 짐을 지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아버지가 볼 때 아들의 등에 지워진 나무가 무엇으로 보였겠습니까! 그것은 죽음의 상징인 희생의 십자가였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에 의하여 무거운 짐이 지워진 하나님의 독생자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고하는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2)묶이다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이삭은 그때 25세 된 젊은이이기 때문에 반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삭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어린양처럼 번제로 드려졌지만 아무 불평 없이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과 희생을 보이셨습니다.

   3. 희생에 필요한 물건들
   이삭은 자기 자신을 불태우는 데 사용할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1) 불
   "아브라함이 불을 손에 들고". 여기에는 매우 엄숙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사 33:14)라고 하는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불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시험하시며, 소멸시키시는 품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 칼
   "아브라함이 칼을 손에 들고". 불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칼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슥 13:7). 예수님께서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부르짖으셨을 때 칼이 공중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제물을 반드시 거룩한 칼과 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3) 제단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이삭이 제단을 쌓지 않았습니다. 제단을 준비한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 일은 매우 엄숙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를 위한 제단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기초가 놓을 때부터 죽음을 당할 어린양이었습니다.
   4) 끈
   제단에다 이삭을 잡아 묶었던 끈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고정시켰던 못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의 끈이 구주를 묶었습니다. 그것이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두 분의 사랑, 즉 삼 겹으로 된 사랑의 끈이었기 때문입니다.

   4. 대속물의 교훈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13절). 갈보리산의 위대한 장면을 상징하는 모리아산 위에서의 정경은 만일 대속물에 대한 생각을 배제한다면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이제 장면은 바뀌었습니다. 수양이 번제물이 되고, 순종의 사람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앞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죽기로 정죄된 대속물로서의 예수를 말합니다. 사람은 그리스도를 매달 십자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준비하신 수양을 찾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희생 제물을 준비하였음을 우리는 유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아브라함의 아들과 같은)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롬 8:32)이시며 또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습니다"(고전 5:7). 이삭이 자신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져 타고 있는 수양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을 때, 그가 대속을 믿는 지의 여부를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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