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1. 떡을 주심 

   1) 옛 언약의 마침

   유월절의 상징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완전히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만찬은 예수님에게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마지막 유월절 만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는 유월절 만찬을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제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만찬이 다 끝날 때쯤 새로운 예식을 거행하심으로써 유월절 만찬이 폐하여지고 이제는 새로운 예식이 시작됨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2) 새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심

   '떡을… 떼어… 주시며…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① 생명의 유지입니다. 육의 사람은 떡을 먹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영의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어야만 합니다(참조, 요 6:33-35). ② 활동입니다. 육의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떡의 힘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에게 공급되는 힘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몸도 말씀 자체이십니다(참조, 요 1:1).


   2. 잔을 주심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1)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피

   구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속죄가 될 수 없습니다(참조, 히 9:22). 제사 제도는 이런 전제 위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 자체가 사람을 속죄할 능력은 없습니다(참조, 히 10:1, 2). 단지 제사 제도가 오실 메시아의 속죄를 예표하였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고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자기의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피로써 성취됨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잔을 마시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2) 많은 사람을 위한 피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상과 범위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만을 위하는 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제자들에게만 한정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구속의 능력)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많은 사람'만이 속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다 마셔야 함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아무리 영양가가 높은 빵이라도 먹어야만 생명력이 되고 활동력이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마시는 자만이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그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3. 미래를 예언하심

   1) 재회할 것을 말씀하심

   '너희가 함께 마시는 날까지.'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것뿐만 아니라 죽음 후에 부활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확실히 기독교가 고난의 종교이긴 하지만 고난만으로 끝나는 종교는 아닙니다. 고난은 최후의 기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2) 영광 중에 재회할 것을 말씀하심

   '아버지의 나라에서.' 제자들이 고난 후에 누리는 기쁨은 단지 부활 자체에 대한 기쁨만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기쁨이 추가됩니다. 그곳은 승리와 영광만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제자들이 후에 많은 고난을 담대하게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부활과 영광의 기쁨을 소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4. 찬미하여 감람산으로 나아감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예수님의 폭탄선언으로 시작된 유월절 만찬은 죽음에 관한 어두운 내용으로 계속되었으나 그 끝은 찬미의 감사와 기쁨으로 마쳐졌습니다. 물론 찬미로 만찬의 모든 예식을 마치는 것이 유월절의 규례였지만 제자들이 슬픔을 가장하고 거짓으로 마음에도 없는 찬미를 드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과 하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큰 소망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찬란한 부활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만 있다면 언제든지 기뻐하며 찬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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