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사랑을 숨기시는 하나님

(렘 33:1-5)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제가 어릴 때에는 이맘때 쯤이면 산으로 들로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머루나 다래, 밤, 도토리 등을 따라 다니기도 하고 칡뿌리를 캐러 다니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 옷이 엉망이 되어버려 어머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었지요. 그 어머니의 꾸중하시던 모습조차 지금은 그리워집니다.

조선시대 선조 때의 서예가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을 글공부 시키기 위해 멀리 보내놓고 뒷바라지를 하기 위하여 날마다 떡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중에 한석봉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대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신도 몹시 보고 싶었던 아들이었지만 몇 년 만에 찾아온 아들을 그 자리에서 되돌려 보냈다고 합니다. 하룻밤 재우지도 않고 돌려보낸 어머니는 멀리서 그 아들을 내내 따라가다가 그 아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잠드는 것을 보고 추울까봐 치마를 덮어 주고 곁에 앉아서 밤새도록 지켜보다가 잠이 깨려고 할 때 치마를 걷어 입고 아들 몰래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그런 훌륭한 아들이 나왔고, 한석봉이 쓴 '한석봉 천자문'은 오랫동안 글공부 교과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들을 무척 사랑한 어머니였지만 그 사랑을 숨기고 냉정하게 대해준 것입니다. 한석봉에게는 야속하고 원망스러웠겠지만, 그것이 진정 자기를 성공하게 만들었던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향한 사랑의 얼굴을 숨기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야속한 하나님으로, 원망스러운 하나님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를 위한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에 얼굴을 숨기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사서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도 하고 감옥살이도 하다가 마침내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양식을 얻으려고 형들이 왔습니다. 요셉은 반가워 얼싸안고 울고 싶었지만 얼굴을 숨기고 일부러 엄하게 심문을 했습니다.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들어온 정탐꾼이라고 몰아대기기도 하고 한 사람을 인질로 잡아두고 가서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울음이 복받치면 다른 방으로 들어가 울다가는 다시 엄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사랑의 얼굴을 숨기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시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창 43:30에는 동복동생 베냐민을 보고서는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 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 사랑의 얼굴을 숨기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왜 사랑의 얼굴을 가리우실까요? 또한 그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왜 사랑의 얼굴을 가리우실까요?

첫째,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창 42:7에 보면 요셉이 형들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엄한 목소리로 정탐꾼으로 몰며 심문할 때, 비로서 형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창 42:21에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하고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해 사랑의 얼굴을 숨기시고 무서운 고통과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 38편을 보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셨는지 시 38:1-4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아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가 범죄할 때 사랑을 숨기시고 심한 고통을 우리에게 가하십니다. 시 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고,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끊고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얼굴을 숨기시고 엄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시 32:4,5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을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악을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끊고 돌아서고 자백할 때 사랑의 얼굴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둘째, 우리를 징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지만 우리를 때리시고 죄의 습성을 벗겨 버리기 위해서 사랑을 숨기시고 자혹하리만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 히 12:5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로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항상 귀여워만 하고 필요 이상으로 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버릇없이 키우면 그 자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죄성과 죄의 습관을 끊어주시기 위해서 호되게 고통을 가하십니다. 히 12:8,9에 "징계는 다 받은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허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 잘되라고 엄하게 꾸중하던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아하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왔다더니 정말 나를 주워다 기를 모양이구나. 에이 도망가야겠다' 이런 오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이 사랑을 숨기는 것은 모르고 하나님은 안계신가보다,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고 저주하시는가 보다 하고 회개하는 대신 하나님을 원만하고 타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시는 섬세하신 하나님께서도 영혼도 잘되고 육신도 잘되게 하시기 위해서 간섭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코 우연으로 돌리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되겠습니다.

셋째, 우리를 연단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 시켜서 영적인 대장부가 되게 하고 보다 귀한 그릇이 되게 하시려고 사랑의 얼굴을 숨기시고 가혹할 정도로 고난과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남다른 사명을 맡은 자에게는 가혹하리 만큼 연단과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맑고 깨끗해야만 하지만 그러면서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 마귀와 담대하게 싸워 이길 수가 있지, 강인하지 못하면 맑은 심령, 깨끗한 양심을 소유했어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절더러 용돈을 넉넉히 주지 않는다고 깍쟁이 아버지라고 하는데 사실은 돈이 없다거나 인색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입니다. 지금부터 쓰고 싶다는 돈을 다 주어서 펑펑 쓰면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거나 결혼해서 처음 몇 십만원 월급을 타올 때 감사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며 호떡 하나 제대로 못사먹고 매점에서 파는 싼 우동 한 그릇 못사먹던 생각을 해서 마음껏 써보라고 주고 싶다가도 절제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얼굴을 가리우고 깍쟁이 아버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

또 제가 전에 시골에서 목회할 때, 전도사로 처음 목회 하면서 가급적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 기도하고, 철야 기도도 열심히 해서 성령의 은혜도 체험하고 교회가 부흥되었는데도 4년동안 옷 한 벌 못사입고 구두하나 변변히 못사신고 그렇게 사고 싶은 책 한권 못사보게 될 때, 하나님이 인색하신 분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또 영적인 은혜와 물질의 축복은 별개의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옷 사주는 사람도 종종 있고, 구두 사주는 사람도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게 될 때 깨달은 것은 좋은 옷 못입고 좋은 구도 못신게 시골에서 어렵게 목회하게 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못 입고 못 신은 덕분에 서울이나 드나들면서 싸돌아다니지 않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하고 다른 책이 없으니 매일 성경 읽으며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연단의 기회가 없었다면 오늘날 선교하러 다닐 수도 없고 또 수만명의 교회를 맡겨줘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사랑을 숨기셨을까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애 3:30-33에 "때리는 자에게 빰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 찌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하고 성경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빰을 맞게도 하시고 욕을 먹게도 하시고 큰 근심을 하게도 하시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니고 사랑의 얼굴을 가리우시는 것이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 28:27-29에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덜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곡식에 따라 도리깨로 때리는 것도 있고, 작대기로 때리는 것도 있고, 막대기로 떠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수레바퀴를 돌리기도 하고 말굽으로 밟게 하지만, 결코 곡식이 부서지게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리우시며 우리를 무섭게 연단 시킬지라도 견디지 못할 연단이나 시험은 주시지 않은 법입니다. 고전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주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 얼굴을 가리우시되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나 연단은 주시지 않습니다.


2. 사랑의 얼굴을 가리우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회개하며 참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행동을 했거나 매맞을 일을 했으면 빨리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사 55:7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며 참아야 합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약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그릇이 될 수 없고 큰 축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게 해주시려고 작은데서 차츰차츰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정도와 크기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더 크게 주십니다. 조급하지 말고 느긋이 참으며 차츰차츰 더 큰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욥 8:7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의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가리우실 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결코 마귀의 시험에 빠져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불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실지리도 나는 그를 의지하겠노라'고 그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에도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갑절을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환상 중에 한 바닷가 모래밭에 두 개의 발자국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임과 자신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는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더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나를 떠나셨습니까?'라고 하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애야,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가 너를 안고 갔었다'라고 대답하시더랍니다. 예수님이 그를 안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발자국 하나님이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중에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시며 잊으셨다고 탄식할 때 하나님은 대답하시기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훌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있을지라도 나를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4-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달콤한 사탕이나 쵸코렛을 주는 것만이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쓰디쓴 약을 주는 것도 부모의 사랑인 것처럼 하나님도 때로는 우리에게 사랑을 숨기시는 분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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