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선지자는 패역한 유다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돌이킬 수 없음과, 또 그와 같은 파멸을 모르고 우상에 속아 장차 큰 고통을 당할 어리석은 미족의 모습을 보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안타깝고 슬픈 것은 '길르앗의 유향… 의사'(21, 22절)로 묘사된 하나님의 은총과 생명을 끝내 수용치 못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완고함에 예레미야의 마음은 더욱 비통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선지자가 지녔던 비통한 마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를 미리 보기 때문임

   1) 하나님의 심판의 섭리 때문임

   선지자가 슬픈 것은 패역한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17절)라고 단안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선고는 '사망의 선고'임을 선지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모세의 인도함을 거절한 광야의 패역한 백성에게 내려졌던 '불뱀'의 재앙이기 때문입니다(참조, 민 21장). 그것은 유예의 기회가 전혀 없는 '멸망'(고전 10:9)을 의미하는 선고였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의 섭리를 미리 보는 선지자는 '슬픔… '(18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라면 이 영적인 슬픔과 근심이 자신의 의식 근거에 늘 짙게 깔려 있음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참조, 마 5:4-7). 그 슬픔은 불신 인생들의 운명에 대한 그리스도의 남은 슬픔이요(참조, 눅 19:41-44), 성도 안에 내주시는 성령님의 비탄(참조, 롬 8:26)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비탄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또 세상의 즐거움을 그 슬픔보다 더 실감하는 성도가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참조, 고후 13:5).

   2) 패역한 민족의 운명 때문임

   '딸 내 백성이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19절)를 선지자는 벌써 듣고 있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은 바벨론에서 고통당할 민족의 한숨과 절규였습니다(참조, 시 137:1-6). 예레미야의 부드러운 마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롱하고, 자신의 생명을 해하려 했으며, 또 자신에게 수욕을 끼친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에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의 가련한 운명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현세에 거하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실망하고 염증을 느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같은 성도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교인에게, 교인은 목회자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스승은 제자에게 등등 기대를 많이 했던 사람에게 더 실망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인간에게 실의한다는 것은, 곧 세상과 삶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의에 대한 보상을 확신하는 성도는 낙심은 할지 모르지만 결코 절망은 안합니다. 오히려 불이한 이웃의 소치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들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받을 수치와 고통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합니다. 그리고 어찌하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줍니다. 모름지기 진실한 성도라면 이와 같은 영적 연민의 정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2. 기회를 상실해 버리는 어리석음 때문임

   1) 추수기를 허비하는 인생들

   ① 추수기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풍요와 번영과 생명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대의 불신앙인들도 유다 민족들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현세는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참조, 고후 6:1, 2). ② 추수기는 삶의 열매를 가늠하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 재능, 그리고 모든 삶의 자원을 성령 안에서 잘 심고 가꾼 이들에게는 즐거움과 존귀를(참조, 갈 6:7-10), 불순종으로 허비한 이들은 쓸쓸한 허수아비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불신 이웃들이 이기적인 곳에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원들을 허비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 각성케 해주어야 합니다.

   2) 길르앗의 유향을 외면하는 인생들

   '길르앗의 유향'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고대부터 이것은 인생의 큰 보물과 귀한 선물로 여겨왔습니다(참조, 창 43:11). 그리고 확실한 치료의 효과가 있었습니다(참조, 렘 46:11; 약 5:14). 이 향은 향나무의 옆구리를 상하게 하여 채취되었습니다(참조, 요 19:33, 34). 그러므로 유다 민족은 이 유향을 소개하는 '의사'(22절)인 예레미야를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고 사망으로 달려갔기에 선지자는 가장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성도들은 이 생명의 약을 선전키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이 향유에 몸을 적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추악한 이 세상에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선전 방법이요, 민족과 이웃의 죄악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될 것이다(참조, 고후 4:1, 2;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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