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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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다니엘 1:1~21

제목 : 축복은 선택의 결과이다

 


1. 유다의 청소년들 앞에 놓인 엄청난 현실



다니엘서의 첫 장 첫 단락은 엄청난 비극적 재난의 한 복판에 던져진 유다의 십대 청소년들의 운명을 다룹니다. 이들은 왕족이나 귀족의 가문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소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멸망과 함께 그들의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가버렸습니다. 이들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하나냐, 아사랴, 미사엘입니다.


1절은 이 때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3년 되던 해’라고 했습니다. 주전 605년 경으로 바벨론의 군대장관이었던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신바벨론제국의 제왕이 된 때를 말합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왕과 귀족들 일부를 사로잡아 가고,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다니엘 1:2은 느부갓네살이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붙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징계의 심판을 내리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유다의 포로들 중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에 통달하여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둘만한 소년을 데려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아스부나스에게 선택되어 바벨론 왕실에 소속된 특별 교육기관에서 바벨론 사람으로 세뇌교육시키는 특별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강대국의 통치자는 그의 점령국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자들이 되도록 훈련하고 싶어합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벨론의 음식을 먹게 하고, 바벨론의 말을 하고, 바벨론 식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제가 창씨개명을 하도록 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나라를 잃고 적성국의 한 복판에서 그 나라 백성으로 만드는 교육을 받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제 그들은 말 한마디의 실수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는 긴장된 삶의 한 복판에 던져진 것입니다.




2. 매력적인 유혹 속에 담긴 독


그들 앞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이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화려한 인생을 꿈꿀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도 있었습니다. 점령국에 포로된 입장에서 점령국 왕의 눈에 벗어나면 얼마나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그들이 왕실 소속의 특별 교육기관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왕의 눈에 들기만 하면 당시 최고의 나라인 바벨론에서 출세할 길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라도 망하여 포로가 된 마당에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은 그 나라에서 살아야 할텐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 사회가 지향하는 성공된 삶을 향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면 그들 앞에 제시된 이 모든 것들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그 음식 중에 하나님께서 부정한 것이라 먹지 말라 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르치는 바벨론의 학문 중에는 점성술 같은 우상숭배에 관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또 왕이 주는 진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먹음직스러운 것이었습니다만, 이 술과 음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바벨론의 향락문화에 젖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만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출세의 길이 보장된 데다 육체적인 즐거움까지 주는 이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계속 남기를 원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다 거절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악하기로 유명한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포기할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바벨론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들이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3. 죄의 문화에 함몰되지 않은 유다의 청소년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죄악의 문화는 왕이 주는 화려한 음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벨론의 향락적인 파티 문화에 젖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으로서 한 번 죄의 문화에 발을 디디면 걷잡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유다의 이 청소년들은 아예 처음부터 왕의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왕의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신앙적인 정절을 지키기 위해 바벨론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이 때 이들이 바벨론의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한 말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포로된 자로, 더구나 소년으로 왕의 측근인 아스부나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참으로 당돌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다니엘의 당돌한 도전에 당장이라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으나 뜻 밖에 부드럽게 “만일 그들이 왕의 진미를 거절하여 다른 아이들보다 수척하게 보이면 다니엘과 친구들은 물론 자기까지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열흘 동안만 채식과 물만 먹을테니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아스부나스는 열흘 동안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기로 결정합니다.


물론 다니엘은 열흘 후에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수척해져서 왕의 진미를 먹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와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이 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이 위험한 때에 신앙적인 결심을 하게 했을까요? 어린 시절 그들의 가정에서 배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의 훈련이 청소년 때에 닥쳐진 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한 영적 훈련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영적으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모든 출세의 길을 놓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는 선택을 주저 없이 한 것입니다.


신앙의 선택이란 만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과감하게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면서 선택해야 할 일을 당했을 때 머뭇거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바른 믿음입니다.




4.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믿음의 도전에 목숨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한 열흘의 시한이 지나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얼굴도 더 멋지게 보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3년의 기한이 지나 왕실대학교에서 특별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모두 왕 앞에 나아갔을 때에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다른 어떤 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학식과 지혜를 보였습니다.


학문(책)과 지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당시 기준으로 2천년 이상 축적해온 지혜를 집대성한 책과 문서, 구전 지혜의 총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인 이 소년들에게 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습득하여 활용하는데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탁월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는 여기에 꿈을 해몽하는 지혜를 더 주셨습니다. 당시 바벨론에서는 신들이 꿈을 통해서 계시를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꿈 해몽을 잘하는 자들이 어디에서나 대접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믿음을 보인 다니엘에게 더욱 특별한 은사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통쾌하게 하는 것은 1장 마지막 절입니다.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21절). 고레스왕은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약 25년 후에 바벨론을 망하게 한 바사(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며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보다 25년이나 더 오래살면서 바벨론이 망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가졌던 학문과 지혜를 얻기 위해 유아시대부터 특별 교육을 하느라 분주한 시대입니다. 성도들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의 학식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유다의 이 청소년들이 유아시절에 가정에서 받은 신앙 교육이 이 죄악의 소굴 속에서도 빛이 났다는 것을 주목하신다면, 그 중요한 유아 시절에 세상 교육 시키느라 영적 교육을 등한히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포기하면 세상 것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기 위해 때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손해볼 것이 뻔히 보이는 데도 그것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얻기 위해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것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면, 주께서 그 잃어버린 것의 30배, 60배, 100배를 채우십니다.


축복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저주 역시 선택의 결과임을 기억합시다. 혹시 지금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머뭇거릴수록 결단이 힘들어집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의 길이 무엇인지 아신다면 지금 곧 결단하십시오.


우리도 인생의 매 순간을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합니다. 지난 날들은 어찌 되었든 우리 앞에 2011년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기 위한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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