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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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명기 1:28-33

제    목 :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루는 특별열차를 타고 밤 여행길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사람 모양의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상한 존재는 철로의 중앙에 서서 양팔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놀란 기관사는 기차의 브레이크를 잡고 힘껏 당겼습니다. 기차는 미끄러지며 급정거하였습니다. 기관사는 조수와 함께 내려서 확인하였으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앞으로 더 나아가 보았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바라본 기관사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철교가 불어난 물로 인하여 씻겨서 떠내려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만일 2,3초만 더 달렸어도 여왕이 탄 기차는 전복되어 큰 인명피해를 볼 뻔하였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손을 흔들며 기차를 세웠던 사람은 누구일까? 천사였을까? 기차가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그 비밀은 벗겨졌습니다. 기차를 점검하던 기술자 한 사람이 기차의 헤드라이트 속에 죽어있는 한 마리의 벌레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기술자는 죽은 벌레를 헤드라이트 유리에 붙이고 스위치를 켜보니 벽에 나타난 모습이 바로 사람 모양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여왕에게 보고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이 우연이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앞서서 모세를 통해 설교를 듣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지켜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 불순종하면 어찌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 이스라엘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 모세가 그들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너희들을 여기까지 인도 하셨는데 너희가 이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은,

 

첫째로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30)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 목사의 부인은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는 미남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부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문 좋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재주 좋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닮아서 하나님을 좇아가는 신실한 남자를 원합니다.” 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구한 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비하셨다가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0절에 “너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이란 뜻은 우리로 하여금 좋은 길을 택해서 편안하게 걷게 하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좋은 길로 앞서서 인도하시며 앞길에 장애물로 막히면 앞서 가셔서 무너뜨려 주심으로 쉽게 갈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 주십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앞서 행하시며 홍해를 갈라 대로로 만들어 주시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었습니다. 흔히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리켜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표현을 합니다. 목자가 양을 데리고 갈 때 양을 앞세워서 가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양 앞에 목자가 서서 가고 양들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자 되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은 앞서 가시며 일을 내다보시고 앞서 가시며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찬송가 98장을 보면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주 예수를 알기 전에 주 예수님은 날 먼저 아시고 날 먼저 사랑하셨다는 고백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을 보면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좋으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은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용되는 지를 벌써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앞일을 아실 뿐만 아니라 앞서 가시며 인도하여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30)
미국의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인디안과 싸움을 할 당시의 일입니다. 워싱턴은 선두에 나서서 싸움을 지휘했습니다. 이때 인디언 추장이 부하들에게 “맨 앞에 나오는 워싱턴을 향하여 집중 사격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모두 워싱턴을 향해서 집중사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워싱턴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 인디언이 전투에 져서 추장이 잡혀왔습니다. 그 때 그 추장이 워싱턴에게 “우리가 집중사격을 해도 총에 맞지 않은 당신은 신입니까? 사람입니까?” 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워싱턴은 “나를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그 어머니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셨기 때문에 나는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고 분명히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사람은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0절은 모세의 고백 중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되 이제도” 싸우신다는 고백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 지금 여기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과거에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셨던 은혜만 추억하는 신앙은 껍데기만 남는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골리앗 앞에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왕년에 하나님이 싸워주신 것은 알지만 지금 현재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사울왕은 자신이 싸우려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싸우려했습니다. 결국 그들 앞에 골리앗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이때 소년 다윗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이전에도 나를 위해 싸워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이제도 나를 위해 싸워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여기 있는 우리를 위해 싸워주십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승리했던 것처럼,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묻고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승리했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지금도 친히 싸우시며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닛시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내일이 두려운 분이 있으십니까? 28절 말씀처럼 큰 대적이 있고, 큰 성이 하늘 찌를 듯이 우리 앞에 문제로 버티고 있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무서워말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나를 대신하여 이제도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흑인영가 중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께로 가까이 가리라” 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싸움은 다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신하여 싸우시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좋으신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며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1)
어떤 경건한 신앙인인이 어려운 시련을 당하고 낙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응접실에 있던 어린 딸이 반가이 맞습니다. 아빠가 들고 오는 것을 보자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아빠, 그것이 무엇이야?” “엄마에게 줄꺼다. 엄마는 어디에 계시니?” “2층에 계셔요. 아빠 그것을 주세요. 내가 가져다 드릴께요” “아니, 너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것을 엄마에게 가지고 간다니?” 딸은 소아마비였던 것입니다. 그때 딸은 말합니다. “아빠, 나는 이것을 들고 아빠가 나를 안고 가면 되쟎아요?” 그는 그 순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시는데 왜 내가 실망하고 좌절하였던가?” 아무리 어려운 고통의 짐을 들고 있어도 우리를 안아주심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처럼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면 세상의 환난이나 고통, 아무리 심한 위험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두려움은 사라지고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력하여, 내가 고생 고생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안으시고 언덕을 넘었고 강을 건넜습니다.(모래위의발자국) 내 지혜,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순간순간 안으셔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병들어 죽을 것 같을 때에도, 사업이 망하여 인생이 끝난 것 같을 때도,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 이제 인생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 두시지 아니하고 그때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안아서 품어주시고 보호하시며 도와 주셨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편 23편을 통하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본문 31절에서도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안으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아껴주시는 사랑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아주셨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안기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안고 계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과 우리의 모든 것을 안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를 눈동자같이 여기시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심을 이 시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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