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굿피플이 아프리카 마사이족에게 가서 마실 물을 구해 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저도 마사이족 있는데 가보았지만 그들이 사는 것이 원시시대 사는 그모습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서 사랑을 행복을 나눌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우리 교회 굿피플이 가서 그 일을 하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복받은 사람입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저는 오늘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
말은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입니다. 그 말소리를 듣고서 우리는 그 사람의 사상을 알고 감정을 압니다. 말을 못하거나 못 알아들으면 서로 교통이나 교제가 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그러나 말만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복을 나누는 말을 해야지요. 잘되게 하는 말을 해야지요. 남에게 화를 끼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국의 뇌 전문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우리 사람의 뇌 세포는 230억 개인데 이 230억 개 뇌 세포 중의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의학계에서는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을 다스린다”는 학설을 바탕으로 “언어 치료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이 다른 신경을 다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여러 가지 신경이 많지 않습니까?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기쁜 것, 슬픈 것 그런 모든 신경이 언어중추신경이 말에 따라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부터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잠 4:23)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도 말로써 지키는 것이고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고 했고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마 18:18)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오래전부터 이미 언어중추신경이 우리의 삶 속에 절대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이제 뇌세포 전문학자들이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자꾸하고 돌아다니느냐. 그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고 돌아다니면 온 몸이 전체가 다 못나자. 못났다. 중추신경이 못났다고 말하니까 못나요. 잘났다 그러면 우리 잘난 형태를 취하자. 언어중추신경이 잘났다고 한다. 힘이 없다면 맥빠지고 힘이 있다면 힘있는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언어치료법이란 환자에게 “병이 나았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환자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체가 말의 방향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이 들어 죽어가는 사람보고 “너는 병이 나았다고 입으로 자꾸 시인하라. 그러면 그대로 된다.” 성경에는 옛날부터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실제로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암환자에게 하루에 세 번 “난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난 다 나았다”고 말하는 언어치료법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는 놀랍게도 3주가 지난 후에 실제로 완치되어서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만큼 힘이 있어요. 입술의 고백이 그만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의 예도 있습니다.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자살한 청소년의 80에서 90%는 부모로부터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 나가 죽어” 그 말 결과로 자살했답니다. 우리 어릴 때도 우리 친구 집에 가면 친구 어머니가 그런 말 하는 것을 내가 들었습니다. “이 범 물고 갈 놈아, 이 죽일 놈아, 나가서 자빠져!” 그러는데 자살은 안 해도 지금 벌써 다 이 세상을 떠났어요. 부모님의 그런 저주를 받고 살아남을 택이 없습니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말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움직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잘해야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어 상대방이 잘 되게 하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감사는 우리를 잘되게 한다
감사는 우리를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감사, 이 감사는 우리를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로 25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만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신령한 세계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영적인 세계를 얻었으니 감사하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셔서 육체가 죽어도 속사람은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축복을 가져오는 능력을 나타내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이렇게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우리가 당연한 반응으로 감사를 해야지요.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것이 우리가 올바르게 사는 길이고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이신 이희대 박사의 간증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간증은 이렇게 시작 됩니다. “2003년 1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병마와의 긴 싸움이 시작 되었다.” 이희대 박사는 암세포 발견 후 다섯 번의 수술을 했지만 암은 간과 골반으로 전이되어 네 번의 방사선 치료와 세 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2번의 암 재발이 있어서 수술하며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꼭 내가 암이 걸려야 되느냐? 내 손으로 암치료를 받은 사람 얼마나 많은데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내가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죽을 수가 있느냐.” 우리 한국의 최고의 암치료 전문의사인데 그 의사선생님이 암에 걸렸으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그러나 투병 과정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은혜 받고 구원받은 후 이전에는 원망스러웠던 일들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변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암과의 싸움으로 투병 하면서 유방암 전문가였던 이 분은 어느 날 암 환자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를 시작했어요. 아주 잘 시작한 것입니다. 전에는 암 토의만 했는데 이제는 성경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생활을 계속 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최근에 CT촬영을 한 결과 그의 몸 속에 남아있던 암세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며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의사로 암 발병 이후 한국 유방암 학회 이사장, 영동 세브란스 병원 외과 과장으로 일했고 교수직은 물론 암센터 소장으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희대의 소망」이라는 책까지 냈습니다.
여러분 지금 처해져 있는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우리가 자연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할 때 이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가져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큰 재물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2009년 11월 25일자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라는 잡지에는 감사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규칙적으로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잘 통제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도 늘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 생산적이고 창의적이며 바른 심성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감사할 줄 알고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하게 살며 더 친절하여 사랑도 더 많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갖다 주는 유익이 굉장히 많습니다.
1690년 증기기관의 원리를 설명한 프랑스의 물리학자 파팽(Papi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 첫째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 셋째는 영원한 삶의 소망을 주신 것” 때문에 감사한다고 했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축복을 가져오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연환경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이 시간에 있고 별들이 이 시간에 있고 꽃이 피고 싶어서 피었지 내가 피라고 말을 했나? 산과 들의 짐승이 있는 것 다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늘에 태양이 있고 수목과 꽃들은 비가 오면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보니까 햇빛을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공기를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고 신선한 물을 주셔서 마시게 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며, 오곡백과를 먹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감사가 마음에 느껴졌습니다. 아까 마사이족들 마시는 물 한번 보십시오. 흙탕물입니다. 그것을 마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맑은 수돗물을 마시고 있잖아요. 그것만해도 얼마나 감사해요. 그래서 저는 매일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입고 편히 쉬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신 은총에 너무 감사합니다.” 요사이는 감사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누구에게나 골고루 햇빛과 비를 주시고 양식을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래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지. 구원 안 받는 사람이 빨리 빨리 죽어버리면 구원 받을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늘 자연 만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생활 중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고 작은 은혜에 감사하면 하나님도 영화로움을 느끼고 여러분도 더 오래 살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근본적 성격입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때 다른 기술로 타락시킨 것 아니에요. 원망과 불평으로 타락시킨 것입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런 말 한 적이 없어요. 불평을 이제 가져오거든. “아니라. 모든 실과는 다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 “천만에 안 죽어.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터이니까 하나님이 샘을 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안죽는다. 안죽어.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 그 유혹을 받고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 탐스러운지라. 하와가 따먹고 아담에게 먹게 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이 마귀가 타락시키는 근본적인 기술입니다. 인간은 그 이후로 부모로부터 타고난 DNA가 불평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 광야를 방황한 근본적인 원죄는 불평 아닙니까? 모세를 따라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조차도 견디지 못해가지고서 다 멸해 버리셨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로 29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화를 냈습니까? 
민수기 14장 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한 남자가 있는데 굉장히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인데 아홉식구를 데리고 조그마한 방 단칸방에 사니까 사는게 괴롭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랍비에게 와 가지고서 불평을 많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집을 안주려고 하면 식구라도 적게 주셔야지 자녀를 많이 주셔가지고서 나하고 내 아내하고 자식들하고 수를 헤아리니 아홉이라 조그만데 사는 것 말이 아니다.” 그러자 랍비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줘야지. 오늘 집에 돌아가거든 염소 새끼를 하나 끌고 와서 같이 살아라.” “아홉이나 있는데 염소까지 끌고 오라구요?” “그것 시키는데로 하라니까. 염소를 끌고 집에 들어와서 염소를 데리고 같이 한 주일을 살고 내게 오너라.” 한 주일만에 왔는데 막 얼굴이 사람 잡아먹을 형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홉 사람이 사는데 염소가 와서 똥, 오줌을 싸니 뭐 우리 사는게 아니라 생지옥입니다. 왜 염소를 갖다 넣어 놓으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랍비가 웃으면서 “오늘은 가서 염소를 재켜 놓아라. 우리로 쫓아버리고 너희들 식구들만 살아라. 그리고 다음 주일에 오너라.” 다음 주일에 오는데 얼굴이 환해져서 꽃 같이 핀 얼굴로 왔거든.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환하냐?” “염소를 몰아내고 나니까 이제 살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들만 오순도순 모여서 사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랍비가 하는 말이 “봐라. 행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한 줄 모르고 불평하면 있는 행복도 뺏긴다. 네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감사하게 생각하면 그 행복이 너에게 넘치게 오게 된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의 유전자에 뿌리박힌 마귀가 준 죄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과 불평 대신 현재 있는 것에 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감사를 해야 됩니다. 이웃을 기쁘고 만족하게 합니다. 이웃에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하면은 이웃이 여러분을 도와준 보람을 느끼고 참 만족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더 장차 잘해주고 착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이웃에게도 감사해야 돼요. 남편은 아내에게 감사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속으로 하는데 속으로 하는 것 별 효과 없어요. 귀에 들리도록 해야지. 상대도 듣고 자기도 듣고 들어야지. 불평과 원망은 사나운 이웃을 만들며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만약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면, 전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지라도 불행하다.”원망과 불평은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감사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좋은 것 갖다 놓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Carl Hilty)는 “행복론”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감사”를 꼽았습니다. 그는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 늘 감사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근본 성격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방황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큰 축복을 받고 잘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끝까지 잘살지만 원망 불평하면 오래 못살고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찬양은 우리를 잘되게 한다
그 다음 또 우리가 흔히 늘 말하는 말이 있습니다. 찬양, 우리 찬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찬양은 우리를 잘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는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지만 찬양은 높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찬양하면 “아버지 참 훌륭하다. 아버지 참 존경스럽다. 우리 어머니 참 훌륭하다. 훌륭한 어머니다.” 이렇게 높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까? 찬송은 감사보다 거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 찬양 드립니다. 예수님 찬양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찬양하면 하나님이 그 찬양 속에 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게 하는 처소가 되는 것이니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면 하나님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찬양하면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35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나님 찬송하면 힘과 능력을 주tu요.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압몬이 공격해 왔을 때 하나님 온 백성과 금식하고 찬양하므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적군을 다 물리쳤습니다. 깡그리 적군들이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실라와 함께 감옥에 투옥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자 지진이 나서 옥토가 움직이고 차고가 풀리고 감옥문이 열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찬양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 의 어린시절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으니까 중국 사람들이 서양 사람이라고 해서 굉장히 경원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있던 동리에 가뭄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비가 안오니까 “이 양놈이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 신이 화가 나서 비를 안주니까 저녁에 이 양놈을 죽여 버리자.” 아버지가 선교하러 떠나서 엄마하고 펄벅 여사 어릴 때하고 갓 둘이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엄마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딸하고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동네에 있는 중국 사람들이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와서 우리를 다 모녀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가 잔뜩 기도를 하더니만 하나님이 말씀을 하기 시작하니까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밀가루를 가지고 과자를 적게 만든게 아니라 아주 많이 만들어 동리 사람이 먹을 만큼 만든다 말입니다. “엄마 왜 과자를 만들어?” “가만히 있어. 너는 가만히 있어.” 그 저녁에 중국 사람이 한 두사람 웅성웅성 하더니만 마당에 가뜩 모였어요. 말 한마디만 생기면 달라 들어서 다 때려 부수고 살림 다 빼앗아갈 작정인데 그 어머니가 과자를 담고 나가 가지고서 각 사람에게 과자를 나눠 줍니다. 그러니 나눠준 과자 안 받아 먹을 수 없잖아요. 웃으면서 과자를 나눠주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마루에 와서 앉아서 중국어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중국어로 막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니까 과자를 먹고 한참 앉아 있더니만 다 일어나서 가버리고 말았어요.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임하여 역사하니까 한 사람도 펄벅 여사와 그 식구들을 못 죽였어요. 그들은 다 떠나가고 말았어요. 그 다음 그 이후로 다시는 그들을 죽이러 온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찬양이라는 것이 우리 삶속에 굉장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고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항상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자. 하나님을 욕하고 비난하면 그 욕과 비난이 부메랑으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찬양한다지만 인간은 찬양한다는 말은 안합니다. 인간은 칭찬한다. 칭송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우리 같이 사는 이웃과 인간들도 끊임없이 칭송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을 아끼면 안되는 것입니다. 칭찬을 하면 크게 용기와 힘을 얻게 하고 더 발전하고 향상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고 기뻐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잠언서 27장 21절에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글을 썼으나 사람들이 읽어보고 별로 신통치 않게 느꼈습니다. 거의 이 소년도 그냥 낙심이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 아들을 꽃밭으로 데려가서 “야. 이 꽃들을 보아라. 아직까지 때가 안된 꽃은 몽우리가 져있지만 안폈지 않느냐? 때가 오면 다 아름답게 피지 않느냐? 너 문학적인 소질은 꽃봉오리와 같다. 지금 사람들 눈에 잘 안보인다. 그러나 얼마안있으면 이것이 팍 퍼지게 되면 온 천하가 다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너의 어머니니까 내가 너를 잘 알수 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라.” 이 엄마의 말에 굉장히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나를 알아주고 신용을 하고 있으니 내가 용기를 내야 되겠다. 그래서 위대한 아동문학가가 된 “한스 크리스천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이 바로 그분인 것입니다. 내가 어릴 때도 안데르센 동화를 읽었으니까 얼마나 오래된 책입니까? 그 어머니의 격려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격려 안했으면 낙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찬양하지만 인간을 높이는 것은 “찬양”이 아니고 칭송, 칭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칭찬 한마디는 상대방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고, 그 안에 잠재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가까운 사람이 칭찬한다고 효과가 없는 것 아닙니다. 
칭찬의 10가지 능력에 대해 어와나 클럽(Awana Club)에서 뉴스레터에 실렸던 글입니다. 
첫째, 칭찬은 키 크는 약이다. 행복을 열 배로 키워준다. 
둘째, 칭찬은 만병통치약이다. 칭찬으로 안 낫는 것이 없다.
셋째, 칭찬은 영혼이다. 보이지 않고 큰 영향력을 미친다.
넷째, 칭찬은 메아리다. 간 것이 되돌아온다. 
다섯째, 칭찬은 꽃을 피우는 마술사다. 굳어 있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칭찬은 샘물이다. 기쁨의 갈증을 깨끗이 씻어준다.
일곱째, 칭찬은 별책부록이다. 돈 안 들고 기쁨을 전해준다.
여덟번째, 칭찬은 씨앗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홉번째, 칭찬은 비타민이다. 몸과 마음이 상큼해진다.
열째, 칭찬은 위대한 대통령이다.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칭찬 한마디를 해보세요. 칭찬은 용기와 힘을 얻게 하여 더 발전하고 향상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느끼고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고 그것 다른데서 배운게 아니라 텔레비에서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러니 사람이 칭찬을 받을 때 얼마나 용기를 얻겠습니까? 인간을 꾸짖고 비난하면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심히 꾸짖고 비난하면 낙심 안하는 사람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리고 꾸짖고 비난하면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지난 5월 11일에 한 인터넷 신문에서 초·중·고등학생과 학부모 860명을 대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조사 결과, 학생 40%와 학부모 66%가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은 칭찬을 많이 해준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칭찬해 준 선생님은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선생님은 별로 마음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여러분 굉장히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건국대학교 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비판이나 위협은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피로를 불러 온다.”고 말했었습니다. 심리학자인 제스 레어는 “칭찬은 인간의 정신에 비치는 따뜻한 햇빛과도 같아서 우리는 칭찬 없이는 자랄 수도 없고, 꽃을 피울 수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에게 부모님이 야, 너 못난 놈아, 너 같은 놈은 내 자식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런 말은 정말 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 타임지에서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조심해야 할 다섯 가지 말을 발표했습니다.
첫째, 내가 왜 너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어휴, 너 같은 놈을 내가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둘째, 너는 왜 다른 애들처럼 못하니?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셋째, 네가 도대체 몇 살이냐? 넷째, 이 바보야! 다섯째, 시끄러워, 엄마를 괴롭히지 말라. 
이런 말은 자녀에게 삶의 의미를 빼앗고 상처를 주며 부모에게 반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녀들은 이런 말들로 인해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세상을 마치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떠한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자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에게는 누구보다도 부모의 칭찬과 격려가 큰 용기와 힘을 주어 더욱 발전하고 향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주는 격려는 선생이 주는 격려나 칭찬보다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용기와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감사라는 말, 칭찬이라는 말, 찬양이라는 말 보통 많이 쓰잖아요. 

3. 축복하면 축복이 온다
그 다음에 우리가 또 평소에 늘 쓰는 말 중에 축복이라는 말 많이 씁니다. 축복하면 축복이 온다.
우리 한국 사람들 좀처럼 이웃을 축복 안하지요. 유대 민족들은 어린 아이 때부터 시작해서 어른 되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만나기만 하면 축복합니다. 그렇게 축복하기 때문에 유대민족이 세계적인 민족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믿고 나오는데 축복 못받는다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요.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복 받을 것 아닙니다. 복이 된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인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2절에 보면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창세기 26장 12절로 13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 다음 야곱의 하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30장 42절로 43절에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삼촌 집에서 외삼촌 집에서 머슴살이해서 번 돈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창 35:9)
그 다음에 요셉은 어땠습니까?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하나님이 종으로 내버려 놓지 않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백만장자의 하나님이시고 축복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하나님을 모시면서 하나님은 축복해 주지 않는다. 나는 헐벗고 굶주린다. 나는 낭패한다. 실패한다. 나는 못산다. 그런 방정맞은 소리합니까? 어디 하나님이 그렇게 써놨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만나면 자꾸 축복을 해야 돼요. 성경에 보면 아들을 못낳는 한나가 성전에 가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으니까 제사장 엘리가 “왜 우느냐?” 그래요. “아들을 못낳아서 운다”고 하니까 “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마자 집에 가서 아들 낳았어요. 그 다음 그 아들 사무엘로 교회 바치고 난 다음 제사장이 한마디 더 했어요. “이 사무엘을 하나님 제사장으로 바쳤으니까 더 많은 아들 딸을 주어서 하나님이 네 가정을 복되게 하기를 원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그렇게 전혀 어린 아기를 못낳던 한나가 애를 여러명 나았습니다. 신실하고 참된 믿음으로 축복을 하면은 그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축복을 늘 해야돼요. 예수님도 축복을 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고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해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0절로 21절에 보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아동교육에서는 “축복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축복합니다. 이후 아이의 생일이 되면 최고의 절정은 축복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바르 미츠바”라는 성인식에서도 최고의 절정은 랍비와 부모, 이웃이 모여 어른이 되는 아이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축복하고, 여행을 떠날 때, 전장에 나갈 때 축복합니다. 또한 부모가 자신의 인생이 다했을 때 자녀를 불러서 유언과 같은 마지막 축복을 남깁니다.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가족들로부터 늘 축복의 말을 들은 유대인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들어오며 나가며 축복의 꼴을 먹었으니 축복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하나님이 같이 따라와서 축복하시고 우리가 저주하면 하나님이 따라오셔서 같이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게 복주는 자에게 복주고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가만히 입을 놀리지 마십시오. 집에 있으면 같은 값이면 자꾸 축복을 하시라구요. “우리 맏아들 참 훌륭하지. 정말 공부 잘하니 감사하다. 더욱 하나님이 더욱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 아휴 둘째 아들, 네 마음에 더 행복하고 더 평안하고 기쁘게 복주시기를 바란다. 아휴 딸내미 좋은데 시집가기로 축복한다. 좋은 신랑감 만나기를 바란다. 우리 남편 건강하게 직장에 잘 나가고 일찌감치 집에 돌아오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남편도 아내를 축복해야지. “우리 아내 언제나 착하고 매력 있고 온순한 분인데 하나님이 복이 주셔서 더욱 훌륭한 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자꾸 좋은 길로 복을 줘야지요. 비난하고 공격하고 흉을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고 참되며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언제나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나누어 주되 꾸지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를 선하게 변화시키는 말을 늘 습관적으로 말해야 됩니다. 우리 입에서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말은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하나님과 관계가 변화되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변화되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그 지글러(Zig Ziglar) 의「정상의 법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30억의 인구가 매일 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40억의 인구가 매일 밤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를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든다.”
우리 역시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원합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소중한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는 데에 인색합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밀라노의 이울름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프란체스코 알베로니(Francesco Alberoni) 는, 최근 저술한「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공과 인정에는 칭찬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생활의 절반은 남을 칭찬한다. 그리고 남의 흉을 자꾸 보는 사람은 자기가 실패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자기가 성공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알베로니는 성공이란 “사람들로부터 공개적인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인정이란 그 사람이 한 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 주거나, 관심을 보이며 인사를 하는 등의 행위와 언어를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타인이 칭찬해 주는 것 좋아하지 흉보는 것 좋아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허리가 자꾸 구부러지니까 타인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사람 있으면 허리를 쭉 편다구요. 상당히 힘들어요 쭉 펴는게.. 사람이 없으면 뭐 축 늘어지고... 사람들 앞에 비평 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될 수 만 있으면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이나 잘하는 것 잘한다고 그러십시오. 덮어버리지 말고 잘하는 것 들춰내가지고 잘한다고 칭찬하십시오. 그리고 못하는 것은 덮어 버리십시오. 못하는 것은 용서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자꾸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살아나가면 인생은 참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를 선하게 변화시키는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과 축복의 말을 넘치게 할 때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이웃이 모두 변화되어 이 세상은 더욱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을 안 나와도 연구소에 가서 연구를 안 해도 감사할 줄은 압니다. 찬양할 줄은 압니다. 축복을 할 줄은 압니다. 이 세 가지만 여러분, 여러분 일상생활에 하면 여러분에게 행복이 끝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끊이지 않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는데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쫓아 하나님이 그 기능을 주셨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칭찬하고 언제나 축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길을 우리가 쫓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감사로 찬양과 칭찬으로 축복으로 우리 환경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그냥 지나가지 말고 이 세상에 채소에 소금치 듯 우리 마음 속에 감사와 찬양과 축복으로 소금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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