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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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 14:22~33

제    목 :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서론>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벳새다 광야입니다.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이 모여서 지금 막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들은 빵과 물고기로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너무나 기뻐하고 즐거워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독촉해 가지고서 빨리빨리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라고 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좀 찜찜했습니다. "주님 같이 가십시다." "아니야. 나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 좀 하고 뒤에 갈 테니까 빨리 가라! 빨리 가라!" 그래서 예수님의 독촉을 받고 제자 들은 못 이겨서 할 수 없이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날이 흐리고 바람이 굉장히 불었습니다. 그것도 순풍이 아니고 역풍이 불어서 배를 저어 가기가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흩어 보내시고 난 다음에 산중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5천명 남자와 수만명 부녀자들을 먹이고 마시고 배부르게 하는데 주님이 영적인 기운이 많이 소진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재충전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나와서 몇 시간을 기도하고 그 다음 내려와서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파도가 하도 세기 때문에 1시간쯤 저으면 건너갈 가버나움에 지금 몇 시간째 배를 재어도 못가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가 밤 사경인데 그때까지 배를 저어도 배가 자꾸 밀리고 못나가니 지치고 불안하고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저 건너편에 보니까 바다위에 흰 물체가 떴다가 내려 앉았다가 떴다가 내려 갔다하면서 그 풍파 속을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유령이다."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유령이 나타나면 반드시 배가 파선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배가 파선해서 예수님도 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을 했습니다. 그러자 가까이 오신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 말라!" 그러나 예수님이 아닌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만약 주님이시면.." 주님이면 주님이지 만약 주님이 뭡니까? 처음부터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만약 주님이시면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주님이 "오라!" 베드로는 마음에 의심이 잔뜩 들어 있으면서도 용감하게 일사각오하고 물위로 출발했습니다. 그것 보면 베드로는 보통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도 만약 예수님이면 또 만약 아닐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서 물위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다른 제자들은 다 움츠리고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 마음에 좀 의심이 있더라도 담대하게 모험을 하는 사람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음에 아직까지도 어질어질 하면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자기도 놀라고 신비했습니다만 자꾸 계속해서 "만약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 만약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 그 만약 자가 참 큰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만약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어떻게 하느냐. 만약 예수님이 아니면 어떻게 하느냐. 만약 때문에 그가 바람이 불고 물보라가 얼굴을 치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공포심이 마음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렇지! 만약 예수님이 아니면 나는 죽었다." 그러자마자 물속에 푹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고함을 쳤습니다. "주여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즉시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하기를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있기는 있어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의심은 같이 가지고 들어왔으니까 문제가 되었지.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믿음을 믿음 때는 확 믿어야지. 의심을 하면서 믿으면 꼭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손을 잡고 건져서 함께 배위에 올라오니까 제자들이 다 놀라서 예수님께 엎드려서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감탄을 했는데 순식간에 그들 배가 가버나움에 도착해서 편안히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대단히 많습니다.


<본론>

1. 물 위를 걷는 것은 기적이다

첫째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정상적이고 물위로 걷는 것은 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반생활은 자연법칙을 따라서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생활인 것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잠자리 들어가서 쉬고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요. 요사이 많은 질병이 걸리고 스트레스에 걸리는 이유는 정상적인 것을 저버리고 밤새 일하고 아침에 와서 잠을 자는 그러한 직업적인 관례요, 또 일주일에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쉬어야 되겠는데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계속해서 일하므로 말미암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여러 가지 심신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일반적인 생활은 정상적인 자연법칙을 따라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법칙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는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법칙으로 우리가 살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의사도 약도 우리를 치료하지 못할 때는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배를 저어 바다를 건너가는데 파도가 너무 세서 정상적으로 자연법칙을 따라서 볼 때는 도저히 가버나움까지 가지 못해서 제자들이 기절할 지경인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해서 더 이상 배를 젓지 못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적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물위로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에 모였을 때 앞에는 창열한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의 바로군대가 습격해 왔습니다. 그들은 자연적인 법칙을 통해서는 건너갈 수 없습니다. 자연법칙이란 다리가 있어서 다리를 통해서 건너가든지 배를 타고 건너가든지 최악의 경우에는 헤엄을 쳐서 건너가야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간섭하셔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로 16절에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14:21)

이것은 기적인 것입니다. 자연법칙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때 주님은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수르광야의 기적도 한가지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그들이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나흘간 물을 안마시면 죽는다고 말합니다. 거의 죽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연못을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법칙으로는 그 물을 마시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더 빨리 죽을 수 밖에 없는 독이 있는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세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모세야, 물을 달라!"고 그런데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연못가에 있는 한 나무를 지시한지라 그 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니 독이 사라지고 중화가 되어서 물을 다 실컷 마시고 갈함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물을 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독이 섞였을 때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통해서는 먹을 수가 없을 때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2005년 12월 뉴욕의 한 주택가 아파트에서 불이 났습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폭스 씨는 이제 겨우 1개월 된 아들을 이불에 싸서 창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때마침 그곳에는 아마추어 야구팀의 볼을 받는 포수가 불이 난 것을 보고 지켜 있다가 아기가 떨어지니까 볼 받듯이 철컥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예전에 인명구조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기를 안고 금방 인공호흡을 시키고 빨리 구급차에 실어서 병원에 데려가서 아기를 살려낸 것입니다. 아기를 던지기 직전 그 부인의 어머니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아들을 살려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자연법칙으로는 불에 타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살 베기 어린 아기를 어떻게 불속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까? 그러나 강보에 싸서 창밖으로 던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적을 허락해 달라구요. 그때 진짜 기적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필이면 야구에 볼을 받는 포수가 거기 구경하고 있다가 볼같이 날라온 어린 아기를 철썩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불이 난 곳에 하필 야구포수였고 인명구조원이었던 사람이 서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요술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듣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만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범하게 살아갈 때는 기적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지요. 내가 할 일도 내가 안하고 "하나님 기적을 주시옵소서."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기도인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이제 나로써는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산이 막혀서 도움이 없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길도 낼 수 없고 터널도 뚫을 수 없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태산이 막혀서 내가 꿈쩍도 못하게 될 때는 그때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안하고 내 의무와 책임은 안하면서 하나님 도와 주시 옵소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일도 안하고 드러누워서 뒹굴뒹굴 놀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곳을 주옵소서. 기적을 주옵소서. 하면 하나님이 "일을 해라. 내가 기적을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할 일을 내가 다 하고 난 다음에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할 일을 다했 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었으나 그들 배가 자꾸 역풍에 밀려 뒤로 물러나가고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고 벌써 몇 시간이 되었는데도 가버나움에 도착하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에 처했을 때 인간적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예수님 물위로 걸어오셔서 그들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기적이 생긴다

둘째로, 그냥 기적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말씀을 구했습니다. 그냥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니까 주님이다 생각하고 어림 짚고 물속에 뛰어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캄캄한데 어디 감히 모험하고 들어갔다가 살아남겠습니까? 그는 확실히 의지할 수 있는 말씀을 구한 것입니다.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마태복음 14장 28절로 29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어야 돼요. 여러분 성경말씀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디오, 비디오가 아닌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이 기록된 말씀을 성령이 우리에게 들리도록 하실 때 그것이 내게 주시는 레마가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그냥 기록된 말씀으로 읽는 것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하고 듣는 것하고 틀린 것입니다. 보는 것은 옛날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체험담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들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체험하고 기록한 것을 읽고 있을 때 성령이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 마음속에 들리게 하시면 그것은 읽은 말씀이 아니고 들은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이 레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위로 걸어올 때 베드로가 마음속에 '아, 성경을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 하더라. 나도 예수께 가자.' 그렇게 했더라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는 기록한 말씀을 따라서 행하지 아니하고 '주여 기록한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내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눈으로 본 말씀을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믿음은 감각과 환경을 또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었다고 해서 바람도 안 불고 파도도 안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파도는 여전히 쳤습니다만 믿음은 말씀위에 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믿었다고 해서 환경이 갑자기 순탄해지지는 않습니다. 믿어도 바람과 파도는 거셉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한번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었다고 해서 갑자기 병이 순식간에 낫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믿어서도 여전히 병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와 믿음과 싸워야 그 다음에는 믿음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 믿었는데 지금 당장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환경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만 바람과 파도는 여전히 쳤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마음에 평안을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오면 환경과 감각에 지고 마는 것입니다. 환경과 감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 믿은 것 헛된 것이다. 믿었지만 아직 바람이 불지 않느냐. 믿었지만 아직 파도가 치지 않느냐. 파도 소리를 들어보라. 저 물보라를 보라. 저 바람 소리를 들어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감각은 현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고 두려워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하나님 말씀에 서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굳건히 서서 들려오는 바람과 파도소리를 무시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란 전쟁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있을 때는 그냥 평안하게 있지만 일단 믿어서 의심을 제키고 나가려면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꿈꾸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입으로 자꾸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전쟁의 할 때는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것입니다. 입술로 의심을 고백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계속해서 주님을 쳐다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같이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믿음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자꾸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가시밭을 지날지라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늘 바라보고 입술로 자꾸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 전쟁을 이기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정치 생활에서 은퇴한 후 고향인 미주리 주에 기념 도서관을 짓고 어린이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한 번은 도서관에 온 어린이가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대통령께서는 우리처럼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반장이었지요?" "아니야, 나는 꼴찌였어. 나는 겁이 많아서 친구들이 고함만 치면 움츠리고 운동을 하지 못해서 애들이 운동할 때 나는 구경만 했단다. 그리고 나는 눈이 너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성경책을 읽었어.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그 성경에서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 한마디가 내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고 은퇴할 때까지 중심을 잡아 주었단다. 나는 언제나 할 수 없다. 못한다. 약한다. 허약하다. 할 때 마다. 이 빌립보서 4장 13절을 외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내 속에 용기가 생기고 힘이 불끈 생겼났다."는 것입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 말씀에 의지해서 용기와 힘을 얻고 제2차 대전을 무사히 승리로 이끌고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이란 이렇게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다가 그 말씀 속에 성령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감동의 말씀은 우리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기 전에 주님께 말씀을 구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간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께 말씀을 구하십시오. 저는 저의 일생을 좌우한 것이 1958년에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이 저의 영혼을 뒤 흔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을 바로잡고 역경과 어려움을 당해서도 언제나 이 말씀을 바라보고 쳐다보고 믿은 결과에 하나님의 기적이 생애 속에 나타난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제2의 기회

셋째로,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인생에는 주님께서 제2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졌습니다. 그 길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주님께 부르짖어서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할 때 주님이 오셔서 손잡고 건져 준 것입니다. 인생의 제2의 기회인 것입니다. 한번 물위로 걸어가다가 빠졌다고 해서 영원히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부르짖은즉 그 다음에 주님과 함께 또다시 물위로 걷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30절로 31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주님께서 믿음이 적다고 꾸짖었지만은 그러나 다시 물에서 건져서 함께 물위로 걸어오게 된 것입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은 말리간이 뭔지 압니다. 친구들하고 골프를 치는데 드라이버를 탁 쳤는데 드라이버가 오비라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나 그 다음에는 헤저드라고 물속이나 모래 속에 들어가 버리면 점수에 벌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기에 져요. 그러나 옆에 있는 친구들이 말리간 말리간 그럽니다. 점수에 벌점 안주고 다시 새로 치라는 것입니다. 새로 쳐라! 말리간이라는 것은 다시 한번 새로 벌점 없이 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잘못해서 오비를 내고 헤저드에 들어가면 주님께서 우리보고 "이놈아 나쁜 놈아! 너는 벌을 받고 뒤로 물러가라!"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회개하라. 말리간.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인 것입니다. 골프할 때 실수하면 다시 칠수있게 허락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졌을 때 주님은 "말리간, 다시 일어나라.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과 71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당해서 그가 넘어지고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경험이 되어서 다시 일어나서 전에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을 당했다고 주님이 버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주님이 와서 건져 주시면 그 체험을 통해서 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패는 주님과 더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실패했다고 버림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실패하기 전에는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도저히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하기 전에는 그래도 내 믿음으로 내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믿음으로 해본다고 하다가 넘어져서 실패를 하여 상처를 입게 되면 그 다음에는 별 도리 없이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부흥강사인 무디 목사님, 키가 크고 몸이 컸습니다. 그런데 하루 겨울날 아침에 시카고에 눈이 와서 온통 공원 전체가 눈 천지가 되었는데 또 비가 와서 얼어붙어서 빙판이 되었습니다. 그 어린 딸이 "아빠 공원으로 나가! 공원으로 나가!" 그래서 외투를 입혀서 툭툭하게 추위를 방어하게 해놓고 난 다음에 애 손을 잡고 나가니까 "아빠, 손잡지 마! 내가 걸을 수 있어. 나도 걸을 수 있다고!" "아니야. 위험한데.." "아니야. 아빠 손잡지 마. 나도 아빠하고 같이 걷겠어." 그래서 둘이 걸어가다가 얼마 안 있어 와장창 미끄러져서 넘어졌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응아~하고 울기에 "이것 봐라! 아빠가 잡아 주겠다는데 왜 고집을 부르고 혼자 걷다가 그렇게 엉덩방아를 찧느냐. 자 잡아 줄께!" 하니까 손가락 하나만 잡아. 손가락 하나만 잡아" 손가락만 내놓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손가락 하나만 잡고 걸어가다가 또 미끄러지니까 손가락이 빠져 가지고서 이제는 진짜 크게 자빠졌습니다. 또 울어 재켰 습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그다음 일으켜서 손 전체를 덥썩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같이 산보를 하니까 미끄러져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미끄러져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아빠와 함께 걸을 때는 미끄러져도 자빠지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아니하고 함께 걸어가서 공원 산책을 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는 그런 간증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지만 실패하기 전에는 더 의지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면 더 깨어지고 더 의지하게 되고 또 더 깊은 실패를 하면 목숨을 바쳐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실패하지 않고는 깊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기 전에는 자기 혼자서 걸었지만 물에 빠지고 난 다음에는 더 다행으로 주님과 함께 손잡고 걸어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패는 주님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더 주님께 가까워지고 주님이 더 가까이 와서 붙들어 주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32절로 33절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는 주님과 더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되므로 여러분 인생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린 아이가 한번 일어서서 두발로 저벅저벅 걷기 전에 1천 5백번 넘어진다고 말했었습니다. 1천 5백번 실패를 하고 울고 정강이가 깨어지고 상처를 입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서서 걸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백번쯤 넘어진다고 부모가 "이 병신아, 왜 자꾸 넘어지느냐. 너는 다시 서지도 마라!"고 하면 영영 못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일에 숙달하기 위해서는 21번 실패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21번을 실패를 해야 한 가지 일에 숙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제2의 기회를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2의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제2의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더 주님과 가까이 손을 잡고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하는 자들보고 손가락질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자는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더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문학과 산수 외에는 점수가 너무나 형편없어서 선생님이 학교를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세계적인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는 16살이 되던 해 무작정 학교를 그만두었다가 복학한 뒤 4개월 만에 퇴학을 당하고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오늘날 세계가 아는 위대한 작곡가요, 음악가인 것입니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도 처음에는 음악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서 아버지가 작곡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만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정치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처칠은 라틴어와 체육을 유난히 싫어해서 낙제를 거듭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가 되었으며, 시인 릴케는 소년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절망을 겪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문학가 헤르만 헷세는 학교가 싫어 신경 쇠약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도중하차를 했는데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는 세계적인 문학가가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각 분야의 사람들은 좌절 가운데 다시 한번 그들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여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영원히 넘어지는 자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일어나면 다시 다시 주님이 영접해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번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내게 죄를 지은 사람 하루에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합니까?" 주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아니야.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 490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줘라" 이것이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루에 아무리 넘어져도 490번 넘어지는 사람 있겠습니까?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지 의인들아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회개해야 주님이 일으켜 주시고 또 일으켜 주시고 또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를 의지하면 반드시 넘어지고 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회개하고 점점 더 자기를 버리고 더욱 더욱 주님 가까이 가서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므로 우리가 넘어지지 않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하기를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반드시 실패하는 것입니다. 실패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선풍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를 여러분 잘아시죠? 미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쇼타임에는 미국 전국이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 사생아로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13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임신을 했습니다. 20살에는 마약에 빠져 그의 인생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는 실패의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는 흑인 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약점과 부끄러운 과거를 이겨낼 의지를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존경받는 여성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특별히 어릴 적 폭풍우로 무서운 밤이 되면 할머니에게 뛰어갔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는 오프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함부로 다루시지 않는단다." 오늘날 그녀는 마침내 '토크쇼의 프리마돈나'로 추앙 받으며 배우로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서, 자선가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실패를 극복한 산 증인이 되어 서게 된 것 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상처를 지혜로 바꾸십시오. 실패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지혜를 여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같이 처참한 여자, 흑인의 빈민촌에서 아버지도 모르는 사생자로 태어나서 어릴 때 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소녀 시절에 어린 아기를 가지고 세상에 버림받은 아편 중독자가 된 그가 한번 마음에 결심한 것입니다. 단 한 번의 결심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존경받는 여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존경받는 여성이 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그처럼 유명한 여성 토크쇼자가 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그 윈프리의 토크쇼를 종종 듣는데 굉장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는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넘어져 봐야 아~ 이렇게 하면 넘어지는구나. 넘어져봐야 이렇게 하면 실패하는구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현명해져서 넘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자꾸 촛불을 잡으려고 할 때 잡지 말라고 털치지 마세요. 그러면 점점 더 잡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촛불을 잡도록 내버려 놓으세요. 그러면 앗 뜨거워. 앗 뜨거워. 그러면 나중에는 손을 끌어서 촛불을 잡으라고 해도 안 잡습니다. 왜냐하면 뜨거운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지혜를 얻게 되므로 말미암아 촛불을 잡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더 나은 지혜를 쌓아주는 것입니다. 많이 실패한 사람은 더 깊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고 박력이 있다고 해도 노인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은 노인들은 일생을 살면서 많은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머리가 좋고 패기가 등등해도 실패를 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많으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고 선배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 좋고 원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 원래는 똑같은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지혜를 얻었으므로 그 지혜를 전수받으면 자기는 공짜로 그 고통 없이 배워서 어려운 함정을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그 다음 배에 타시니 배가 순식간에 가버나움에 도착했다는 말은 참 의미 깊은 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1절에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몇 시간을 배를 저어도 배가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전진하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타니까 한번 젓는데 열 번의 효과가 생겨서 순식간에 가버나움에 도착한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공항에 갈 때 에스켈레이터를 타면서 머리에 생각이 나는 것이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면 굉장히 힘이 들고 시간이 길릴 것인데 에스켈레이터에 올라타 있으면 그냥 쭉 편안히 서있는데 쉽게 올라가요. 평지에 깔려있는 에스켈레이터도 걸어가는 사람은 힘차게 걸어가지만 에스켈레이터 위에서 걸어가면 10배, 20배 속도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타면 다른 사람보다 효율이 굉장히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10배, 20배 효율이 생기는 것입니다. 몇 시간을 배를 저어도 못가는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타자 몇분 안저었는데 순식간에 가버나움에 도착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 알파를 하면은 여러분 우리 인생을 쉽고 가볍게 속히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쉬게 하겠다는 것은 네 짐은 쉽고 네 짐은 가볍다. 나를 의지하면 쉽고 가볍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우리가 짐을 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주님이 쉽고 가볍게 인생을 짐을 지고 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 의지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일상 자연적인 생활에도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 다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이 해야 돼요. 최선을 다해도 절망에 처할 때는 기적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내가 수고도 해보고, 노력도 해보고, 처방도 해보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모든 길이 적막강산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저는 내 처지가 기억이 납니다. 17살에 폐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니까 6개월 밖에 못산다고 말하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던 종교를 가지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대답도 없고, 이제는 죽음의 날만 기다린 것입니다. 태산이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산이 너무나 큽니다. 죽음이 임박해 왔습니다. 차차 숨이 너무 가빠서 바로 눕지 못하고 벽에 기대야 되는 것입니다. 벽에 기대어 숨을 쉬고 눈만 감고 잠만 들면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그런 고통이 오니까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고 내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 로다. 그때 야훼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누가 와서 내게 전도한 적도 없고 목사나 교회에 가본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절망에 처하니까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은 전도자를 내게 보내서 내가 회개하고 예수 믿고 만들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보통 약으로 살 수 있으면 기적을 구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적은 절망에 처했을 때 필요하고 절망에 처해서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주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평범할 때는 건성으로 기도하잖아요.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요. 그러나 여러분 정말 절망에 처하게 되면 애간장이 끓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서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에는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주님과 함께 하면 자연적인 도움이라도 하나님이 능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평소 생활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면 쉽고 가볍게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시고 더구나 절망에 처하고 갈 길이 없을 때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절망에서 길을 만들어 주시고 어둠에서 빛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주님께서 바로 우리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물위로 걸었다가 물에 빠졌으나 주님 손을 잡고 의기양양 하게 돌아온 사실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우리도 제2, 제3의 베드로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폭풍이라는 인생 바다를 항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수고롭고 고달프고 혹은 파선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언제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의 음성을 듣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주님을 향해서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가다가 빠지더라도 주님은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고 이제는 혼자 걷지 않고 함께 걷게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보는 것으로 살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모두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주의 종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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