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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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시편 4장 7절-8절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기쁨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물질에서 오는 기쁨을 생각하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을 때 사람들은 더욱 기뻐합니다.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도 사람들에게 물질적 부요에서 오는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비록 힘들고 고달파도 참고 견디는 것은 기쁨의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부요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사실 사람마다 불평과 불만이 있는 것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 부요가 가져다줄 수 있는 만족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온전하고 영원한 기쁨은 내적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이제 그러한 기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진정한 내적 기쁨은 신앙에 의해 가능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고 스스로의 강한 확신 속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얻게 하며, 죄 사함 받은 것을 확신시키고, 하늘의 평화를 맛보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듯이 우리에게 신앙이 없이는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깊은 불안을 야기시키고, 염려를 잉태하는 자만심과 과도한 욕심을 억제시킬 수 있습니다. 경건하고 헌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섭리가 함께 합니다. 이러한 섭리와 보호하심의 안전은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참 기쁨은 오직 하나님을 겸손하게 섬기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안위입니다.


   2. 신앙이 주는 그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어떤 기쁨보다 우월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7절). 농경 사회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곡식의 풍성함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보다 더한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풍년이 들어 한 해의 소출이 곳간에 가득하게 쌓였을 때 수장절을 지키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성경은 많은 포도주의 생산을 축복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가 회복되어 축복된 사회가 이루어질 때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 3:18)고 예언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시온이 회복되었을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 25: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잠 3:9, 10에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건대 본문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이 주는 즐거움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신앙이 주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며, 영원한 기쁨인 것입니다. 먹지 않아도 즐거워할 수 있으며, 가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고 추위 속에서도 훈훈함을 느낄 수 있는 기쁨 이것이 바른 신앙인이 얻는 기쁨인 것입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립니다.

   1) 의인의 완전한 평안

   신앙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기쁨보다 더 견실하며 확실합니다. 신앙의 즐거움에 대해 이사야는 말하기를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죄를 지은 자는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죄책감에 떨고 있는 사람은 평안한 가운데 잠을 잘 수 없습니다. 큰 부나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이웃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마음속에 기쁨을 갖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경건한 의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의 은혜를 완전히 믿고 깊이 잠들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을 보십시오. 그는 높은 지위와 부를 누렸는데도 불구하고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2) 의인의 평안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8절)고 하는 확신에서 온 것입니다. 평안하고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이것이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함과 같은 물질적 부요가 주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 주님께서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참조, 요 14:27)고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깨달은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오는 평안의 축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를 수 있는 평안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영원한 평안입니다.




< 예화 >



신앙심이 깊은 한 아이가 어머니께서 선물로 주신 반지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불행하게도 그 반지를 잃어버려 매우 슬피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평정을 찾은 듯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이를 지켜보던 그의 누이가 비웃듯이 '얘, 반지에 대해 기도한다고 해서 별다르니? 반지가 돌아오기라도 하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소녀는 '그러나 기도하면 반지가 없어도 갖고 있을 때와 똑같이 잘 지낼 수가 있거든.'하고 대답했다.



< 주석 >


   '기쁨은… 더하나이다.' 본문은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주신 기쁨이 풍성한 수확보다도 크다는 뜻인데 이러한 마의 배경에 대해서 '델리취'(Delitzsch)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반역자들이 길르앗에 진을 친 동안 다윗은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었다. 아마 당시는 장막절 시기였는데 이때 이미 곡식과 포도주의 추수가 끝났을 것이다. 압살롬은 풍성한 양식으로 인해서 막강한 후원을 얻을 수 있었으나 피난 지경에 있는 다윗은 오히려 부족한 양식으로 핍절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렇듯 왕인 자신은 핍절하게 되고 자신을 살해하려는 자들이 풍성한 양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풍부한 물질이 주는 기쁨과 비교가 되지 않는 기쁨과 안전으로 충만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주석가 '몰'(Moll)은 이 당시 다윗이 매우 곤란한 지경에 있기는 하였으나 본문을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고 오히려 '단순한 물질적 풍요로부터 오는 기쁨과 안전보다는 주께로 오는 기쁨과 안전이 월등하게 우세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견해가 약간 다르기는 하나 본질상 같은 맥락의 경우이므로 어떤 것을 취해도 본문의 맥락상 무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말을 하는 다윗의 근본 의도는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보호하신 분이시고 가나안에 정착케 하신 분이시며 또 오늘날 자신을 안전케 하시는 분이시며 따라서 그 하나님을 등지고 그 어떤 것에 의존하는 자는 결국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C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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