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1장 11절-17절

제    목 : 그리스도인이 누려야할 자유



사건 개요


바울은 본문에서 유대교에 있을 때 교회를 핍박하며 다메섹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갔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 계시로 사도가 되었음을 밝혔다. 그래서 사도가 된 지 삼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야고보와 베드로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했음을 밝혔다. 또한 예수를 핍박하던 바울이 오히려 복음을 전함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까지 하나님께 영광 돌렸음을 간증하였다.


역사적 배경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동기는 다른 이방 교회들과 같이 갈라디아 교회에도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서 발생한 갈등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 할례를 행하고 율법 준수를 당연히 여겨왔던 유대인들은 비록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하였지만 율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새로 개종한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들과 같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바울을 공격하고 심지어 그의 사도권을 부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 선교가 위기에 부딪혔음을 깨달은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공격하고 자신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도권을 주장한 것이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결코 예루살렘에 있는 원사도들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받았음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자신의 가르침이 예수의 공생애 동안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명을 받은 지 삼 년 만에 예루살렘의 베드로를 방문하였고 더구나 그곳에서 십오 일을 머물면서,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베드로를 제외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음을 밝혔다.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아무런 가르침을 받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적 의미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밝힌 것은 교회의 참된 권위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적인 권위를 내세워 다른 성도들을 다스리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과 같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그의 제자 된 모든 성도들에게 복음 사역의 사명자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주 안에서 존귀한 동역자인 것이다




우리의 대적 사단은 설교자를 공격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복음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을 불신하게 되면 그가 전하는 말씀 자체를 불신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계략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복음의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방의 사도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과 그것으로 인한 복음 전파의 방해에 대한 사도 바울의 변증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온전히 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단의 계략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 성도는 때로 의를 행하다가 세상의 대적들로부터 핍박과 비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린 것처럼 참 자유를 누리므로 모든 시험을 이기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복음으로 말미암은 자유인


[해석]

바울이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 자유함으로 기쁘고 담대히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본래 계시라는 말의 의미는 뚜껑을 열다라는 뜻입니다.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되면 그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곧 계시는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리기 위한 것으로서, 사도 바울에게 이방에 담대히 전하라고 밝히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일에 가리워져 있던 것들을 바울의 영적인 눈앞에 벗겨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교통하였고 하나님의 사도로서 권위를 가지고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가 학문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이 복음 앞에서 자유인이 되어 복음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 기독교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주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실 앞에는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기록인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만일 성경이 없다면 저마다 자기의 종교나 가르침을 하나씩 만들어내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근거가 무너집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복음과 함께 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따금씩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복음에 굳게 서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밝히 드러난 복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림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진정한 간증이 있는 자유인


[해석]

바울은 과거에 복음과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제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영광스런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생각지도 않았을 때에 바울을 생각하시고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를 값없이, 조건없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가 그 마음의 주인이 되셨으며, 이제 그는 그리스도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드리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복음 전도자로서 누리는 이 자유는 그 누구도 침해하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진정한 간증을 자신을 반대하는 무리에 대한 변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적용]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간증의 포인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났으며, 그리스도를 만나고 내 삶 속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가 이 세 가지입니다. 자기의 진솔한 간증을 부끄러워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간증의 초점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간증이 있는 사람은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과 인간의 욕심을 향하여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신앙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유인


[해석]

바울은 자신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일생의 좌우명은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으며,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계시다는 영적인 인식이 있었기에 오직 복음만을 위해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소란스러운과 계획적인 박해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인간적인 조건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신앙 양심으로 변론하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 앞에서라는 삶의 훈련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진리 안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범죄합니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서 범죄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안목이 나를 꿰뚫고 관찰하시며 살피신다는 깨어있는 영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각종 죄악이 기승을 부리고 파멸을 향해 온 세계가 한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경건한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가로막던 사람이 변하여 이제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제 어떠한 유혹과 핍박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자유인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속에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변화된 놀라운 삶의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변화를 보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살아계신 그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열매가 있습니까? 복음을 통해서 참 자유를 얻은 사도 바울과 같이 이 시대 속에서 복음으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빛으로 말미암은 진실한 간증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삶의 고백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단어연구


사람의 뜻(ajnqropon:안드로폰)

이 말은 사람, 인간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다양한 면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나님의 초월적인 뜻과 대조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즉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의 한계, 계획, 연약함, 의 등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잔해하고(ejporqoun:에포르둔)

이 말은 파괴하다, 잔혹하게 짓밟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사람이나 도시 등을 황폐하도록 파괴하는 행위를 나타낸다(참조, 행9:21).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교에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분노의 행위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까지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택정하시고(ajporisa":아포리사스)

이 말은 기본적으로 경계선을 그어 구별하다라는 뜻인데, 대체로 나누다, 내어 쫓다, 임명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참조, 마25:32). 즉 특별한 사명 완수를 위해 선택하고 직분을 부여하는 것을 나타낸다.


핍박하던 자(oJ diwkwn:호 디오콘)

이 말은 (적을) 패주시키다, 박해하다, 내몰다라는 뜻을 지니는데, 여기서는 교회와 성도를 고난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참조, 고전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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