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사도행전 13장 4절-12절

제    목 : 역전시키는 하나님



사건 개요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세움 받은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 섬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거기서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는데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박수 바예수가 방해하였다. 이에 바울이 그를 저주하여 소경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바울의 능력을 본 총독 서기오 바울은 복음을 믿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안디옥 교회에서 공식적인 선교사로 세움을 받은 바나바와 바울은 본격적인 전도여행을 떠났다. 이것이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첫 복음 사역지로 정한 곳은 구브로 섬으로 오늘날에는 키프로스 섬이라고 불리며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의 고향이어서 첫 선교지로 가장 적당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곳에서부터 사울을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 받은 바울의 첫 선교지였다. 따라서 유대식 이름인 사울보다는 헬라식 이름인 바울이 더 친근하고 적당하다고 여겨 바울이라고 기록하였던 것이다. 한편 그들은 구브로 섬에서 계속 전도를 하다가 로마 총독의 소재지인 바보라는 곳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났다. 아직 로마인들에게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복음선교를 박해하지 않았으므로 총독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당시 지배자들이 점치는 자나 마술을 부리는 자를 고문으로 두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관습에 따라 바예수라는 유대인 박수를 고문으로 두고 있었다. 당연히 그는 총독이 개종을 하면 자신의 역할이 사라지므로 바울의 복음전파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그를 소경으로 만든 능력을 보고 오히려 총독 서기오 바울은 복음을 믿게 되었다.


구속사적 의미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복음이 하층계급만이 아니라 귀족층에게까지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복음은 인종과 사회적 신분에 제한 없이 엄청난 영향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한편 박수 바예수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항상 사단의 세력이 대적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사단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최후의 승리는 복음 전파자에게 있는 것이다(요16:33)




야구경기를 보다 보면, 제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점수는 5대2이고 9회말 투아웃에 만루인 경우입니다. 만약 홈런이 나오면 4점이 들어오게 되어서 5대 6으로 역전하게 되지만, 아웃이 되면 그냥 지고마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홈런왕이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양팀이 손에 땀을 쥐겠습니까? 9회말이 될 때까지 여러 번 기회들을 놓치기도 하고 번번이 아웃을 당하기도 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이제 이 한 번의 타석으로 결정이 나고 맙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모습도 꼭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다 거치고 이제 역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타석만이 남아있을 때, 반드시 홈런을 쳐내는 홈런타자가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홈런을 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협력하는 성도의 삶


[해석]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떠난 것은 인간의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복음전파를 위해 보내셨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우선 실루기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지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라는 섬으로 갔습니다. 구브로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서도 살라미라고 하는 도시로 갔습니다. 그들이 제일 처음으로 도착한 선교지는 구브로의 살라미였던 것입니다. 두 사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회당에서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신들의 목적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요한을 자신들의 사역을 위한 수종자로 선택했습니다. 자신들의 복음증거를 위해 또다른 한 사람의 돕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적용]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까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도 바울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역자입니다. 협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선교지에서 바울은 협력자를 만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엔 가장 중요한 일, 즉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협력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종종 나만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도가 혼자서 열심을 내는 것보다는 협력하고 둘이 하나가 되어 열심을 내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협력자가 되어주고 협력자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린 그와 같은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할 것입니다.


2. 훼방받는 전도


[해석]

구브로 섬의 반대편에 있는 바보라는 도시로 갔을때, 복음을 증거하던 사람들은 대적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이 바예수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유대인으로서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은 서기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는 당시 구브로 섬의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했습니다. 그러자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가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총독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복음전파를 훼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적용]

복음을 전하다보면 모든 사람이 수월하게 복음을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간섭하고 방해하거나 심지어 핍박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절망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전파가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기만 한 것이라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성경이 기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오히려 핍박이 있거나 어려운 장애들이 생길 때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생각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울보다 먼저 앞서서 복음의 진리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멸시와 훼방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할 때에 고난을 이길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3. 결국에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해석]

복음증거가 방해를 받자 사도 바울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인간의 수단으로 복음의 대적과 싸움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적하던 바예수를 향하여,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마귀의 자식이요 의의 원수이며 마귀의 자식아! 네가 언제까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려고 복음을 대적하겠느냐? 이제 주님의 손이 네 위에 임하였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고 소경이 될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바예수를 덮었고 그는 자신을 인도해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총독은 주의 가르침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더욱 더 기이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용]

모든 일은 끝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엔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나중엔 실패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와는 반대로 처음엔 별 볼 일 없을 것만 같던 사람이 나중엔 승리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처음의 상황이 어떠했든지, 처음이 나약하고 미약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선 결국 승리하시고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복음과 함께 고난받은 우리를 하나님이 칭찬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결국에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가운데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협력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복음증거는 열매를 따는 생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경을 만나는 삶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승리하시고 우리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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