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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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79편 8절-10절

제    목 :  모범적인 기도



   미국의 어느 마을에 진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와 불량아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로 인하여 고심하며 아들이 회심하도록 늘 기도했다. 또 아들이 밤늦게 공장에서 돌아오다가 넘어져 다치지 않도록 언제나 외등을 켜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병환으로 몸져눕고 말았다. 하루는 그 아들이 밤늦게 돌아와 보니 외등이 켜 있지 않았다. 그가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런데 그 옆에는 '예수를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어머니의 유서가 있었다. 이에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에 감화를 받고 회개하여 신실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시편 기자는 열방들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고 자기 백성이 무참히 대량으로 학살당하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그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볼 때, 여러 가지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그의 기도는 가장 모범적인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1. 주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했습니다.

   1) 이스라엘의 패망이 죄악으로 말미암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자가 기본적으로 깨달아야 할 믿음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환난이나 재난이 자신에게 닥치면 자기 자신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에게 그 원인을 돌리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백성의 죄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였습니다.

   2) 죄의 결과는 패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절대로 묵인하시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참조, 롬 6:23)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적 은혜를 믿고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이러한 자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도 남음이 있습니다(참조, 삼하 24:14 대상 21:12 애 3:22).

   3)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라고 자기 백성들의 처지를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처한 상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더욱 심한 조롱과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조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들을 향한 언약과 인도하심을 의심할 정도로 믿음의 흔들려 있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상상해 보십시오. 심한 패배감과 절망감만이 그들에게 엄습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망할 때, 완전히 패배했을 때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간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영광에 호소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목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9절). 이것은 바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참조, 고전 10:31).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지 않고 멸망토록 내버려 두신다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조롱거리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도 가려지게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주님의 능력에 호소했습니다.

   당시 국가간에 치루어지 전쟁에 대한 승리는 바로 그들이 믿는 신들의 승리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지게 되면 그 신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무능한 신으로 무시해버리는 것이 상례였습니다(참조, 왕하 18:35).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여 주실 것을 위해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말하리이까?(10절)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기도는 애처로우리만큼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보고 이방민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고 보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주 모욕적인 조롱을 내포한 빈정거림이기 때문에 그는 울먹거림으로 호소하며 이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오직 전능하시며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 심을 믿을 때 우리는 이 시편 기자와 같이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의미는 이 시편은 기도가 아니라 탄식이었습니다. 시인의 울분이 탄식과 함께 기도의 형식을 띠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탄식 속에서 원망이나 불평보다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간절히 갈망하는 시인의 믿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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