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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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으로전서 2장 18절-25절

제    목 : 애매히 받는 고난



얘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19, 20)



 어린 아이는 사탕 한 알을 빼앗겨도 분하다고 울며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성숙해 갈수록 스스로 남에게 베풀어 줄 줄도 억울한 일을 감수할 줄도 알고 그것을 소화시킬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이 성숙한 단계에 들어 가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성숙한 신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것"(2:19)이라고 했는데 '아름답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라시'라는 원어로서 은혜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으로 보상해 준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2:21)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가 없으시지만 남을 위해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으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도 억울한 고난과 고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애매하게 욕을 먹거나, 비방을 받으면 분해서 참지 못하고 펄펄 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또 남을 위하여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을 많이 받은 아브라함이야말로 억울함을 많이 참은 사람입니다. 자기 때문에 부자가 된 조카 롯과 헤어지면서 아브라함이 말하길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겠다'고 마음 놓고 좋은 땅을 차지해 가지라고 했을 때 욕심 꾸러기 롯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 요단을 선택하여 차지했을 때 참으로 억울했을 것입니다. 마치 재산을 강탈당한 것 같은 아브라함에게 즉시 하나님은 큰 축복을 해 주시면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창 13:14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은 엄청난 축복을 하니님께로부터 받았으나, 먼 훗날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에 탈 때 온 집과 재산이 다 불타 버리고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애매히 고난을 받고 억울하게 십자가를 진 것을 참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크게 보상해 주시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일컬어지는 요셉은 평생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 때문에 형들의 시기를 받던 중에 꿈 이야기를 한 것으로 말미암아 형들이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서 종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왕의 시위대장, 요사이로 말하면 대통령의 경호실장쯤 되는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머슴 노릇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잘 하였던지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모든 열쇠를 다 그에게 맡겼습니다. 17세에 애굽에서 온 요셉은 한 십여년이 지나는 동안 나이가 27세쯤 되는 건장한 젊은 이로 변하였습니다. 게다가 용모가 수려한 미남이고 성실한 사람인지라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애정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미모에 자신이 있는 그녀가 날마다 유횩하며 심지어 '나와 동침하자'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왔을 때 웬만한 사람 같으면 범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히 거절하며 '사모님, 주인님은 이 집의 재산을 모두 저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주인님을 빼고는 이 집에서 나는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주인님이 사모님 외에 나에게 금지한 것이 없습니다. 사모님 당신은 주인님의 아내입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과 동침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날마다 요청했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요셉에게 복수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셉의 옷깃을 붙잡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범죄할 가능성이 있는 자리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때 이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게 아무도 없느냐, 저 놈이 나를 겁탈하려고 덤벼 들어서 내가 소리를 치니까 지금 이 옷을 벗어 던진 채 도망을 갔다'고 하면서 당장 잡아 가두라고 했습니다. 물론 남편에게도 그 옷을 증거물로 보이며 말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은 증거물까지 보았는지라 더 이상의 변명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요셉을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정직하게 바르게 살았으면 칭찬과 상급이 돌아와야 할 것인데 전혀 반대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하다고 소리 지르며 발악을 하지도 않고 묵묵히 감옥생활을 잘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 총무일을 하던 때와 같이 옥중에서도 성실하게 살았더니 전옥의 마음에 들어서 전옥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또 요셉은 감옥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갇힌 왕의 식사를 맡은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있었는데 두 관원이 어느날 꿈을 꾸고 요셉에게 상의를 했습니다.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는데 꽃이 피고 포도가 열려서 그것을 따다 즙을 짜서 왕의 잔에 부어 드렸습니다'고 하는 꿈을 들은 요셉은 해몽했습니다. '세 가지는 3일인데 당신이 3일 안에 다시 나가 왕의 잔을 받들게 될 것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를 듣고 있던 떡 맡은 관원장이 '나도 꿈에 흰 떡 세 광주리가 머리에 있었고 그 안에는 갖가지 구운 음식들이 들어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것을 먹어 버렸습니다'고 말하자 요셉은 '세 광주리는 3일을 뜻하며 그것은 3일 안에 바로왕이 당신의 목을 자르고 나무에 매어질 것이며 새들이 당신을 뜯어 먹을 것입니다'라고 해몽해 주었더니 과연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이 혐의가 풀려서 나갈 때 요셉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당신이 이곳에서 나가 복직하거든 내 일을 잊지 말고 바로왕에게 고하여 주시오. 나는 여기에 들어올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하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2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더라'고 했습니다. 만 2년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한 것을 보고 술 맡은 관원이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요셉의 이야기를 해서 비로소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왕의 꿈을 해몽하기를 여윈소 7마리는 7년 흉년을 뜻하고, 살찐 소 7마리는 7년 풍년을 의미하는 것이며, 마르고 약한 7개의 이삭과, 잘 익은 7개의 이삭도 7년 흉년과 7년 풍년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요셉은 바로 왕에게 7년간 큰 풍년이 들고, 그 다음 무서운 흉년이 7년간 계속될 것이니, 잘 준비해서 기근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꿈 해몽 때문에 요셉은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 국무총리가 되어서 온 애굽 사람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자기의 온 가족과 친족을 구원하면서 후일 형제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그릇으로 쓸 사람이나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은 억울한 고난과 남을 위한 고난을 많이 당하게 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이것이 나중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점치는 귀신이들린 여자 아이를 보고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는 인사나 칭찬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종의 주인이 이것을 보고 돈 벌이가 막혔으므로 관에 고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잡혀가 매를 많이 맞고 쇠고랑을 차고 옥에 갇혔습니다. 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조금도 분해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무슨 섭리가 계심을 믿고 찬송하며 기도할 때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며 쇠고랑이 풀어져 나가고 옥문이 열려졌습니다. 옥사장은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알고 칼을 들어 자결하려는 것을 바울과 실라가 보고 말렸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전도하여 그와 그 집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기적이 나타나기 전에 이런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예전에 해병대를 제대한 제 동생이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기 전에 저의 집에 와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걸핏하면 칼부림을 하고, 돌맹이로 문을 부수고, 밥상을 걷어 차고, 우리 큰 애가 두 세 살 났을 때인데 그 아이를 마당에 집어 던지려고 하고, 변소에 집어 넣는다고 위협을 하고 온갖 행패를 다 부렸습니다. 저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저 놈을 내가 낳기를 했나. 그렇다고 내가 맏아들인가? 왜 내가 이런 십자가를 져야 하나?'하며 원망스러워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자그만치 4년이 넘도록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동생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는 성령을 받고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일로 저의 가정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고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고, 구원을 받고,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본인 자신도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고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모세가 자기 일신의 안락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그 무서운 고난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도리어 애굽의 황제도 될 수 있고, 애굽의 모든 보화도 손에 넣고(히 11:25, 26)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백성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모진 고난 끝에 자기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까지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 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애매한 고난을 받고 소화시키는 자가 있을 때 그 가정이 살고 복을 받게 되고, 그 교회가 부흥되고, 그 직장이 잘되며, 이런 사람이 그 나라에 많이 있으면 그 나라가 잘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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