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여호수아 8장 1절-9절
제 목 : 작전이 필요하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나폴레옹이 한 전투에서 패한 일이 있었다. 그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았더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동기는 기병대대의 도착이 늦어 작전에 차질을 초래한 때문이었으나, 그 대대가 늦어진 것은 소속 중대 중 하나가 늦어진 때문이었고, 그 중대가 늦어진 것은 소속 소대 중 하나가 늦어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대가 늦어진 까닭은 한 분대장이 탄 말의 발굽에서 작은 못 하나가 빠진, 참으로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말발굽의 편자 관리를 맡은 병사가 작은 못 하나를 소홀히 함으로써 부대 전체로 하여금 패전을 이르는 쓴잔을 마시게 한 셈이었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재차 공격할 때 두 가지의 전법을 썼는데 그 하나는 유인 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화공 작전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직접 지휘하는 부대는 아이 성 전방으로 가서 저들을 성문 밖으로 유인해 내는 작전이요, 다른 부대는 성 뒤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했다가 성안이 빈틈에 습격하여 불을 질러 점령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그대로 적중하여 아이 성을 점령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이 성 공략과 같은 전법은 동서고금 여러 전쟁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우리는 본문 말씀이 가르쳐 주는 신령한 의미를 포착함으로 신앙생활과 복음 전도에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 그 밖의 가나안 땅의 모든 침공 작전은 하나같이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영적 전쟁의 모형으로 받아들이는 데서만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여호수아의 유인 작전
아이 성 싸움의 현대적 의미는 전도 전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어떤 한 사람에게 전도를 하거나 한 지역 사회에서 복음화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추진한다고 하면 그 노력에 비하여 효과가 적을 것입니다. 사전에 치밀한 전도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차근히 전략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 동안 재래 종교나 미신 행위에 찌든 사람의 영혼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주색잡기와 도박 등으로 세상 취미에 짙게 물들어 있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내는 일을 어찌 심사숙고 없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까? 잡으려면 먼저 미끼를 던져 주듯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도망하는 척하여 아이 성 사람들을 성밖으로 유인해 냈습니다. 이와 같이 전도도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한 후에 복음으로 정복해 버려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복음 선교는 대체로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복음 전도를 목적하고 지역 사회에서 먼저 의료 사업으로 병원을 세우고 교육 사업으로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밖에 고아원이나 양로원도 세워 사회사업을 하거나 공업 기술과 개량된 농사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전도의 방편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여호수아의 유인 작전과 같은 방법으로 전도를 하셨습니다. 수가 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전도 방법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전도하실 때 먼저 '물을 좀 달라'는 말씀으로 시작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길가는 나그네가 우물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 흔히 청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요청으로써 누구나 쉽게 이에 응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화 또는 상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후에 차츰 여인의 삶 깊숙한 곳에 감추어 있던 비밀에까지 접근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론은 당신이 선지자들의 예언한바 오실 메시아임을 여인으로 하여금 고백하도록 만들었습니다(참조, 요 4:25).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기사와 이적 또한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신 데 있습니다.
2. 여호수아의 화공 작전
먼저 번의 아이 성 공략 때는 삼천 명만 보냈으나 2차 공략에는 그 10배가 되는 삼만 명을 먼저 보내 아이 성 뒤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게 한 다음 성읍 정면에서는 여호수아의 직할 부대가 도전하는 척하다가 도망함으로써 적을 성밖으로 유인해 냈습니다. 이때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비어 있는 성에 쳐들어가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여호수아의 유인 작전으로 인하여 아이 성이 비어 있듯이 전도자의 꾸준한 친절 봉사와 간절한 기도, 그리고 능력 있는 복음 전도로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낸 다음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일격에 쳐들어가 불을 지르듯 비어 있는 마음속에 불을 던져야 합니다. 옛 구습을 버리고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는 물세례의 단계입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11)고 했습니다. 또 아이 성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쳐들어가 불지른 것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수행함에는 요한의 물세례 단계만으로는 미흡합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마 3:11)이라고 했습니다. 전부인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와 같이 물세례 다음에는 성령 세례를 또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도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요 3:1-5). 우리도 본문 가운데서 여호수아의 유인 작전과 매복 작전과 화공 작전 등을 통하여 가나안 7족속을 몰아내고 선민의 나라를 세웠듯이 철저한 선교 전략을 통해 민족 복음화 운동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작전입니다. 악령을 쳐부수는 철저한 작전입니다.
알베르 까뮈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세상이라는 감방(교도소)에 세 사람이 갇혀 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디지 못하여 방안에서 주먹으로 치고 박고 머리로 벽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어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이고,
둘째 사람은 자기의 팔자를 타령해서 감방에 들어온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것이요 팔자소관이라는 숙명론에 사로잡혀 자포자기하여 드러누워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셋째 사람은 자기가 감방에 들어 온 것은 억울하지만 언젠가는 이 감방에서 나가게 될 것이니 낙심은 되지만 참고 견디면서 가만히 누워 비전(vision)을 갖고 계획을 세우며 누워 있는 사람이다.
이 셋째 사람은 첫째 사람과 같이 발버둥을 치지도 않고, 둘째 사람과 같이 숙명론에 사로잡혀 자포자기하지도 않고 참으면서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여유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이 감방 옆을 지나가다 감방 안을 들여다보면 세 명이 누워 있는 모습은 같으나 내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세상)라는 감방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두가 같은 것이다. 시간에 얽매어 산다던가, 제도 속에 산다든지, 옷을 입고 사는 것, 식사를 하며 사는 것 등 모두가 외형적으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가 세운 목적을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며, 비전을 갖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며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은 성공을 할 것이며, 목적을 달성할 것이고,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고 방향도 없이 제 멋대로 달려간다고 해도 조급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 보람있는 생이 될 것이다.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 선생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내일 밤 12시에 만일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때 웨슬레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계획대로 일을 한다. 내일 아침과 오후에 전도하고, 저녁 식사 초대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같이 지내다가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가 12시에 죽는다면 모래 아침에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들이 자기가 죽는 시간을 안다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웨슬레 선생님의 삶은 참으로 여유가 있는 마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교파의 창설자가 되었고 많은 일들을 했으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나무를 심겠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여유 있는 마음의 소유자인가!
세계적 육종학자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가 일본 고아원에서 살고 있을 때 일본 학생들이 못살게 하니까 그의 책상 앞에 ‘밟히면서도 피어나는 민들레같이’라는 표어를 붙였다고 한다. 그는 일본 놈들이 짓밟아도 나는 피어나는 민들레 같이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우 박사는 어릴 때부터 비젼(Vision)을 갖고 살았기에 세계적인 학자가 된 것이다.
작전이 필요허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