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여호수아 2장 1절 - 7절

제    목 : 경건한 신앙인




사건 개요


여호수아는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가나안의 길목에 위치한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상황을 살피게 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리고 왕이 두 정탐꾼을 체포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마침 정탐꾼들이 숨은 집의 여주인인 라합이 그들을 지붕에 숨겨 살려주었다. 이는 라합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배경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에 정탐꾼을 보낸 것은 여리고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정학적 이유로 다른 성에 비해 경비가 삼엄하고 견고하였기 때문에 여리고를 정복하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진군은 이미 가나안 족속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여리고를 정탐하러 간 정탐꾼들이 성으로 잠입하자마자 그 동향이 보고되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라합이라는 기생이 정탐꾼을 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라합에 대해 요세푸스를 비롯한 고대 교부들은 기생이 아니라 여관주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는 후에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는 라합(마1:5)을 미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성경은 라합이 분명히 기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에는 각 성마다 공식적인 매춘소가 있었고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따라서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에 가정 적합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라합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고 유대교의 전승에 의하면 라합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네 명의 여인 가운데 하나이며, 예레미야를 포함한 여덟 명의 예언자와 한 명의 여선지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구속사적 의미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구해준 것은 출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능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능력은 결코 사변적인 말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증거됨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는 인간이 만든 어리석은 우상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능하신 참 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말로만이 아니라 개인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동시에 성도들도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구원해준 라합의 무용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합은 거짓말로 정탐꾼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공포에 떨고 있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가 사용한 거짓말은 문자 그대로는 옳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행동은 그녀의 믿음적 행위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차자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했던 거짓과 상통하고 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이 가고 없다는 거짓말을 할 때 잘못을 범하였지만 그녀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과만 좋으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구실로 삼아 거짓말을 합법`화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을 통해 라합의 신앙고백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지 그녀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신앙고백을 이해하면 그녀의 그러한 행동이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녀의 신앙고백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위기에 처한 가나안 정탐꾼


[해석]

정탐꾼이 들어가자마자 여리고 왕이 이 소식을 보고받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 여리고의 병사들이 그 성을 매우 철저하게 경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는 당시 요단 강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이기에 조만간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진격해 오리라고 예상하고 분명히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정탐꾼이 침입한 사실이 여리고의 병사들에게 발각되었다면 그 정탐꾼들이 무사히 살아서 귀한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정탐꾼이 누구의 집에 숨었는지 까지도 발각되었다면 그들은 여리고 병사들에게 체포될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적용]

본문의 배경은 여리고 성입니다. 그 여리고 성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여리고와 같은 곳입니다. 이런 우리들의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침투해 들어와 있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멸시하고, 그 말씀을 의심하며, 그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리고의 병사들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의 목숨을 노리듯이, 오늘날에도 복음을 부인하고,오히려 현대의 문명으로 그 복음을 공격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시 여리고의 백성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죄악된 모습을 그대로 보는듯 합니다.


2. 정탐꾼을 숨겨주는 라합


[해석]

정탐꾼들이 여리고 병사들에게 체포될 위기에서 라합은 순간적인 재치로 그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여리고의 병사들은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왔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라합의 집을 수색할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그녀의 지붕위에 있는 삼대 속에 그들을 감추고, 병사들에게는 그들이 왔었지만, 그들은 성문이 닫힐 무렵에 이미 성을 빠져나갔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따돌립니다. 이렇게 병사들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이로 말미암아 정탐꾼들은 무사히 그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용]

본문에서 라합이 정탐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달리 평가하는데, 즉 라합의 행위는 믿음의 행위로서 죄악이 아니라는 견해와, 라합의 행위는 분명한 죄악이지만 그러나 그 동기가 신앙적이므로 용서되고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그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진실’이란 ‘사실과의 일치’를 뜻하지 않고 ‘이웃이나 하나님께 대한 충실’을 뜻하기 때문에 라합의 행위는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나 거짓말은 죄며 아무리 정당화해도 옳지 못한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라합이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앙의 뿌리에서 행한 행동이다라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장자권과 관계된 야곱과 리브가의 행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이 사건을 이해해야지 결코 거짓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사건으로 이것을 이해하면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라합의 신앙고백


[해석]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구속주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여인 기생 라합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여정, 그리고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 정벌 사건 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이 이미 가나인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여리고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정탐꾼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정탐꾼들에게 후에 이곳을 정복할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긍휼까지도 이해하고 있다는 아주 훌륭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여리고 거민을 비롯해 가나안 거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것은,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있기는 했지만 단순히 이스라엘의 민족신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라합은 여호와를 민족신이 아닌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신이요, 구원을 베풀수 있는 긍휼의 신임을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 라합과 다른 가나안 거민들과의 차이였습니다.


[적용]

죽음의 도시 여리고에서도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라합은 마치 죽음만이 지배하는 삭막한 땅에 한송이 어여쁜 꽃과 같이 돋보입니다. 성도님들은 이 꽃을 보고 참된 신앙의 향기를 맡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감추어준 것은 그녀의 출세욕이나 자기와 자기 가족만이 구원을 받고자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이요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녀의 행위야말로 우리에게 참다운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신앙의 모범이 되는 행동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생명력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라합의 행위는 목숨을 건 처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자신의 삶 속에 그녀와 같은 신앙적 결단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큰 고난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며, 때로는 엄청난 고통이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라합의 사건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참으로 힘찬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현대 문명이라는 여리고에 찾아온 하나님의 복음의 정탐꾼을 우리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 죽어가는 현대 도시에 훌륭한 신앙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믿음의 꽃을 모두 피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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