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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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립보서 1장 12절-14절

제    목 : 복음의 진보


   뉴욕에서 촉망받던 젊은 의사인 '존 스커더' 씨는 어느 날 그의 단골 환자 중 한 사람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집 응접실에 놓여 있던 전도지를 우연찮게 집어서 읽어 보게 되었다. 그 이후 곧 그 일로 인해 그와 그의 부인은 선교사로서 인도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홉 자녀들도 모두 인도 선교사들이 되었다. 그로부터 '스커더'가의 사람들은 인도에서 선교 사역을 쉼 없이 해오고 있다.


   '복음의 진보.' '진보'를 뜻하는 헬라어는 대개 '군대의 진군'을 위하여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곧 사실상 겉보기는 바울의 투옥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 요소였지만 실제로는 그 장애 요소가 제거되어 무리 없이 복음 전파의 행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위대.' 라틴어로 <praetorium  프라라이토리움>이다. 이 말은 본래 로마 황제의 친위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차츰 지방 행정관, 군대의 사령관이 거주하고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써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로마의 시위대는 B.C. 2세기경에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9,000명의 인원으로 창단하여 '비텔리우스'(Vitellius) 황제가 그 수를 19,000명으로 증강시켰다가 A.D. 31, 32년 '콘스탄틴'(Constantine) 대제가 해체시켰다. 이 부대는 로마의 군대 중 최강을 자랑하는 정예 부대였다.   '형제 중 다수가…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 전파 활동을 담대하게 전개한 사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곧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용기에 힘을 얻고 자극을 받아 더욱 용감하게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있는 이들로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 회심한 이들과 롬 16:10, 11 빌 4:22 등에서 언급하고 있는 로마인들을 심중에 두고 있는 듯하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매우 뜨거운 사랑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고서도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빌립보 교회를 설립한 바울은 이 빌립보 교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참조, 행 16:11-40), 빌립보 교인들 역시 바울과 바울의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바울이 로마 옥에 갇혔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돈을 보내 주었고(참조, 빌 4:18), 그 전에도 최소한 두 번 이상을 이러한 방법으로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참조, 빌 4:16). 본문이 보여 주듯이 바울이 옥에 갇힌 사실에 대해 빌립보 교인들은 매우 깊은 관심과 함께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기가 갇힌 일로 인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나타났다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합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의 진보는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이는 행위나 공로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무조건적인 구원이므로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께서는 극소수의 유대인이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이 소식은 보다 멀리 퍼져나가야 했습니다(참조, 마 20:28; 28:19). 특별히 바울은 이 일을 위해 주님으로부터 택정된 사람이었습니다(참조, 갈 2:8). 그는 베드로와 달리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고 이 일을 위해 그는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 이유도 사실은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가 선택한 때문이었습니다(참조, 행 21:10-14). 그의 이 선택은 매우 지혜롭고 성령의 뜻에 의합한 선택이어서 그는 비록 매인 몸이었지만 평소에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로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참조, 행 28:16 롬 1:10), 또 성령의 기이한 역사에 의해 옥 안에서 복음의 진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2. 바울의 고난이 복음의 진보를 촉진시켰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를 위축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촉진시켰다고 고백합니다.

   1) 선한 일에 대한 의욕을 북돋았습니다.

   처음에 로마 교인들에게 위대한 복음의 사도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온다는 소식은 매우 수치스럽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도덕한 죄를 짓고 호송되어 온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선한 일로 인해 호송되어 왔다는 사실은 로마 교인들에게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인들은 바울이 갇힌 몸이 된 사실로 인해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활발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의 고난이 로마 교인들의 복음 전파 의욕을 더욱 고양시켰던 것입니다.

   2) 고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케 했습니다.

   복음 전파의 사실만으로 바울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은 로마 교인들의 복음 전파 사역을 위축시킬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옥에 갇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로마교인들은 이에 자극받아 복음 전파 사역을 활발히 진행시켰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고난을 대하는 바울의 의연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사료됩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투옥되었지만 조금도 비굴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참조, 행 26:29), 매임 속에서도 장래의 상급을 바라보며 즐거워했습니다(참조, 딤후 4:7, 8). 이처럼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가 이를 바라보는 로마 교우들에게 고난의 두려움을 극복케 하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여 그들로 더욱 활발히 복음을 증거케 했던 것입니다.


   3. 성도의 고난이 복음의 진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우들도 알아야 했습니다.

   1) 이는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난이 로마에서 커다란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우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신변을 걱정하고 그의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그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우들이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바울은 그래서 에바브로디도에게 이 서신을 써 주어 그들을 안심시켰던 것입니다.

   2) 그들에게도 불타는 사명감을 불러일으킬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난을 통해 일어난 이적적인 복음의 성과는 그의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빌립보 교우들의 복음 전파 의욕을 북돋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늘 긍정적이고 선한 생각을 품었던 빌립보 교인들이 이 소식을 접하면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고 더욱 열심을 내어 바울 못지않은 복음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절)고 초두에 말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신실한 사역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진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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