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여호수아 5장 2절-9절

제    목 : 길갈에서의 할례 의식


사건 개요


본문은 언약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행한 할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장 먼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이는 광야에서 죽은 출애굽 일 세대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광야에서 태어나 가나안에 들어온 이 세대들은 그동안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할례를 행함으로 그들은 과거의 모든 고통과 수치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역사적 배경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할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장 중요한 언약의 징표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누구든지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창17:12).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할 수가 없고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종교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도 배격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명령하신 것이 바로 할례였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출애굽 후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은 대부분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할례란 남자 성기의 귀두 부분의 표피를 베는 외과수술에 해당한다. 따라서 무덥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광야에서 할례를 행하면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많았다. 할례에 돌칼을 사용하는 것도 금속제 칼에 있는 독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언약의 땅인 가나안에 진입한 이상 할례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의식이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할례를 행하게 하심은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언약의 자녀로 인정하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구속사적 의미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처음 요구는 할례였다. 이는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즉 지금까지의 과정도 언약에 의한 것이며 앞으로의 삶도 언약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할례와 같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정욕을 잘라내는 고통이 있어야 하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신앙적 확신을 통해서 효과가 나타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을 하나님의 은혜로 건넌 후 길갈에서 할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거민들은 요단 강 만큼은 이스라엘 백성이 쉽게 건너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 요단 강마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자 그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받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나타내는 의식입니다(창17:1-14). 그런데 왜 이 할례를 이스라엘이 가나안 성읍들을 향해 돌진해야 할 시점에서 행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이 할례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이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 항상 영적으로 재무장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의지적 고백입니다.


[해석]

할례란 부싯돌과 같이 예리하게 만든 칼로 양피를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한 이후에는 일정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자 마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막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민족의 운명을 건 대전쟁을 시작한 상태이고, 특히 지금은 적진 속에 들어와 있기에 할례는 커다란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에 그때에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1절에 부연설명되어 있는 그때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할 당시에는 오히려 가나안 거민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고 합니다. 본문의 정황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할례를 행할 것이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돌격해야할 것인데, 이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뭏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점에서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적용]

그렇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 할례의 고통으로 인해 몰살당했던 세겜족의 경우처럼(창34:15-25) 그들이 지금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아무리 가나안 거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더라도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이 기습해 온다면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할례를 행한 것은, 비록 하나님 명령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하나님 명령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순종하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너무나 세상적인 사고에 물들어서 하나님의 뜻도 자신의 기준으로 취사선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성도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인간에게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별된 백성의 표입니다.


[해석]

본문 5절에는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출애굽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출12:43-51). 그러나 이러한 할례 의식이 중단된 때는 출애굽 제2년째 되던 해인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13:1-민14:38)때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이상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광야 38년간 유리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 태어난 출애굽 후세대는 할례를 받지 않은 세대들인 것입니다.


[적용]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13:1-민14:38)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대표적인 ‘언약 파기 사건’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한 것은 그들이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받은 징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이 언약이 파기된 상태에서는 광야를 계속해서 해매야 합니다. 이제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입성하는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언약의 징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하나님 나라의 언약적 측면을 무시하고, 정치적 차원이나 사회정의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나라을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언약적 측면에 대해 이해하고, 그 언약에 먼저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3. 백성들이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의 율법


[해석]

본문 9절에 ‘애굽의 수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치’는 첫째로 애굽에서의 노예 신분으로서 이스라엘이 당한 수모를 가리키고, 둘째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기 백성들은 죽이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었다고 조롱하던 애굽인들의 모욕적인 생각이나 언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수치, 비난, 힐책들이 요단을 건너가 가나안 땅 길갈에서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 모든 것을 내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언약적 행사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해주고, 이제 모든 축복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행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의 문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 할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행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어야할 민족의 지도자로서 앞으로 수많은 전투를 치루어야 할 군사적 전문가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속에서 그는 전혀 군사적 지도자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적어도 자신들보다 몇 배나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처지에 있는 적들을 앞에 두고,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앞으로 가나안 땅에 거하면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영적으로 올바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어려움과 고난에 너무 쉽게 굴복해 버리는데, 참 성도라면 물리적 시련에 대해서는 강해져야 할 것입니다. 즉 성도들은 영적 시련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생활에 참된 의미의 할례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죄악의 뿌리를 절단해 버리고,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관계가 되기 위해 세상을 믿음으로 정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라고 하는 거대한 가나안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이 기업을 우리것으로 하기 위해, 하루빨리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길갈에서의할례의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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