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사모(주제별 예화모음)

▣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라

본문: 시편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영적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천국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어 탄식하며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18세기 미국의 청교도 설교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만족게 하는 유일한 행복이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녀들, 또는 세상 친구들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26:9)

18세기 북미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역시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742년 6월 15일 화요일, 내 생애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에 대해 갈망했던 날이다. 정오 경에 나는 외딴 곳에서 달콤한 적막 가운데 나의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제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며, 오직 거룩하기를 갈망한다는 거 아시지요. 당신이 저에게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게 그런 마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에드워즈, 브레이너드처럼 우리 보물이 천국에 있을 때, 우리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천국을 애타게 사모할 것입니다. 성숙의 과정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천국의 거룩함에 대한 열망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우리는 시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즐거움을 만납니다. 하지만 시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할 이유가 우리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영원한 기쁨을 주시고자 그분이 죽음도 감수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더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시인들의 시에는 그분을 너무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최고의 상태에 있을 때에나 찾아오는 그런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시 27:4).

"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7:10)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나 사모함이 없다면.....

말씀이 진리요, 생명인줄 알지만 사모함이 없다면....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통해 사명을 주시고 살게 하지만 공동체의 사모함이 없다면.....

이는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모함을 갖는 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 순간도 제 영혼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약속대로 제 영혼을 만족케 해주고 계십니다. 제 영혼에 좋은 것으로 채워 주고 계십니다.

유머 작가인 루코크가 현대판 사도행전을 엮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 강림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풍자를 통해 재미있게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고 광고를 했다. 그러나 적어도 120명은 모여야 할 이 예배에 참석한 자는 40명뿐이었다. 베드로는 직장에서 시간외 근무를 하느라, 요한은 골프 약속 때문에, 야고보는 시험 공부 때문에 부득이 교회에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길 같은 성령도 이 다락방에 내려오는 것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절히 바라는 심령에게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사람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고 있는 대상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즐겨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때로는 우리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을 것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영이 주를 사모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복음성가)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주를 향해 외치라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나의 영혼아

*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심령으로 사모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가 평생 주님만을 사랑하며 고난을 당할 때에도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저도 좋아하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저도 싫어하며 주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저도 행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내가 진정 사모하는 분

찬송가에 보면 88장에 ‘내 진정 사모하는’이라는 제목의 찬송곡이 있다. 그 가사를 보면 참 은혜가 된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고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으며 핍박을 해도, 영원한 친구가 되시며 위로 자가 되시는 그 예수님은 진정 산 밑에 백합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가 있다는 고백이다. 절망의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다가올 때 하늘에서 빛나는 그 새벽별과 같은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고백할 수 있는 너무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찬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진정 사모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인생의 목적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김학규

▣ 미치도록 사모하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 의사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켈리는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날 밤,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주님, 내 자신과 나의 시간과 나의 능력과 나의 열정,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오니 나를 정결케 하시고, 제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세상에서의 어떠한 성공이라도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성경말씀 중 첫째가는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 계명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6-40, 신6:5)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정열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세상과 하나님, 재물과 하나님, 가족과 하나님, 둘 다 섬기려 하면 맛잃은 소금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계명의 말씀보다도 첫째되는 계명(신6:5)을 알고 실행하기를 힘쓰는 참신자를 요구하십니다. 이제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향하고자 하는 자는 곧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가진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자기 볼장을 다 보고는 전심으로 주께 향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은 길 같으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쳐다만 볼 수 있는 떡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쫓기만 하고 생활화 할 수 없는 종교와 교리는 무의미합니다. 오늘날 세상 교회의 지도자들은 생활화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노래하고 가르칩니다. 즉 사랑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노래하고 설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전체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현실에서 쉽게 부합되거나, 사회윤리에 맞는 것만을 주로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현실에 맞게 변조하거나 뜯어 맞추어 절대적인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자가 멋대로 설명하고, 해석하여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생활의 종교입니다. 생활하는 가운데서 나온 진리의 말씀입니다.

공산주의의 주창자인 마르크스의 이론과는 다르게 한 말씀도 피상적이거나 공상적인 이론과 지식의 말씀이 아니고, 약속하신 것을 꼭 이루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 목슴까지 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마10:37)고 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나님은 최고의 정성을 기울여 섬기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고 선민의 조상이 된 것도, 세상에 둘도 없는 독자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쳤기 때문입니다. 제일 귀한 것 하나밖에 없는 것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만큼 큰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끼니인 생명과 같은 것을 드렸기 때문에 그 무서운 흉년도 거뜬히 평안하게 지날 수가 있었고, 과부가 생활비 전부라도 정성으로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자기의 결혼 밑천을 아낌없이 깨뜨려 드렸기 때문에 칭찬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드리고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이 우상숭배의 죄를 짓겠습니까?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하는 죄를 짓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연히 죄에서 떠나 거룩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참 종교 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정과 욕을 버리는 길입니다. 에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의 대결에서 아가페 사랑이 이겨야 합니다.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이 진실되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땅의 것에서 멀리 몸을 떼면 땔수록 성도는 하늘의 것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더욱 더 신령한 것을 사모합시다. 사도행전의 크리스천들은 예수에게 미친사람들이었습니다. 미쳐야 합니다. 크게 미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미치도록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사람은 종교 열정이 식어질 때 그때부터 생명은 시들고, 신앙은 껍질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참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애정, 사모, 앙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요, 관념과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종일 주님을 바라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감옥에 갇힌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치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님을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한 태 완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중에서

▣ 마음의 깨끗함을 사모하라

바퀴벌레 두 마리가 각기 다른 식당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A라는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 아주 많은 지저분한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B라는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밥알 하나 발견할 수 없는 너무나 깨끗한 식당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B라는 바퀴벌레는 잽싸게 A라는 바퀴벌레가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헐떡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얘, 지금 내가 갔다온 식당이 어떤 곳인 줄 아니? 정말 기가 막히게 깨끗한 곳이야 파리가 낙상할 정도라구." 그러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던 A라는 바퀴벌레가 불쾌한 듯 말했습니다. "야, 너는 내가 먹고 있을 때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니? 밥맛 없게!"

이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적용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속을 여행하면서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사단도 바퀴벌레와 마찬가지로 너무 깨끗한 곳은 싫어합니다. 사단이 입맛을 잃을 정도로 청결한 마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주님 보시기에 깨끗한 마음이고 싶습니다."

성경: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이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후 7: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느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20)

▣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교회

릭 워렌 목사가 “마틴 루터의 1차 종교개혁의 주제가 믿음(belief)이었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2차 종교개혁의 주제는 삶(behavior)이라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바르게 믿는 것이 중세 캐톨릭 교회가 부패하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면 오늘날 21세기 교회들의 과제는 바르게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들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이원론적으로 구별하여서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영혼구원만 강조하고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사회변혁을 강조했었는데 21세기를 들어오면서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제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참으로 건강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계도 진보적인 교회를 좌파(left wing)로 보수적인 교회를 우파(right wing)로 가르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 “오른 쪽 날개도 왼쪽 날개도 아닌 통닭 전체”가 되려는 건강한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순례자’(Sojourner) 잡지의 발행인 짐 왈리스가 작년 7월 “왜 보수주의자들은 틀렸고 진보주의자들은 아직도 핵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했습니다. 그 발표의 핵심은 보수주의자들은 예수님을 교회 울타리에 가두어 두었고 진보주의자들은 사회구원 한다고 그러다가 사회구원도 개인구원도 모두 못하고 말았다고 아픈 평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진보주의자들은 다시 예수를 그 중심에 모셔야 하고 보수주의자들은 예수를 교회의 구세주가 아니라 세상의 구세주로 인정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보이건 보수이건 중심에 예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흥(Revival)에는 회복(Renewal, 갱신)이 따릅니다. 교회는 교회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고 성도는 성도의 본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의 증인되는 것(1:8)이라 했습니다. 예수의 증인되어 어두운 세상 빛으로 밝히고 아픈 사람들 치유하고 지극히 자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Make love your aim. Earnestly desire the spiritual gifts. 고전 14:1)로 정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참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파당지음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종교적 전통의 우월감, 성령파들은 영적 교만, 자유주의자들은 윤리도덕적으로 문란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부는 세상 지식을 자랑하면서 예수님 말씀 순종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바울은 외친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요한 웨슬레는 성경말씀(Bible)을 중심으로 교회의 전통(Tradition)을 존중하며 신앙의 체험(Experience)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성(Reason)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 사랑이 우리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의 근본이 되어야 하고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축소하면 안되고 더욱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교회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될 때 진정한 하나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조동천 목사 미국생활 설교 예화집<우리동네 가나안 이야기> 중에서

▣ 주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기

주의 음성 듣기 원하네.

나의 모든 고정관념을 비우고

나의 모든 잡다한 생각을 비우고

나의 모든 세상 고집을 비우고

나의 모든 세상 경험을 비우고

나의 모든 세상 지식을 비우고

나의 모든 세상 정보를 비우고

나의 모든 세상 이론을 비우고

오직 주의 음성 듣기 원하네.

주께서 말씀하시네.

“너희는 내게 나아와 내게 귀를 기울이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주님, 나에게 말씀하옵소서.

내가 주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에게 말씀하옵소서.

내가 주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오, 주님, 간절히 원합니다.

주의 음성 듣기를…….

종에게 지금 말씀하옵소서.

<김열방 목사/ 잠실목자교회>

▣ 주님을 사모하라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건강과 안녕과 가정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 크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고 주시지 않고 간에 그분 자체만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은 그 대상을 제쳐두고서 그 주변에서 어떤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떠한지를 떠나 삶 가운데 그리스도만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삶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사모한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현재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참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는 이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 묵상: 왜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김장환 큐티365>

▣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밭

옛날 우리 동양 사람의 글귀에 선한 사람과 같이 있게 되는 것은 마치 지란지실(芝蘭之室)에 들어간 것과 같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란은 난초를 의미합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면 온 방안이 향기로 가득해서 자연히 향기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에는 우리의 심령이 향기를 피우게 되고, 우리의 생활이 향기를 풍기게 되며 무언의 감화를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까지 우리의 신앙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길바닥 같거나 바윗돌처럼 굳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비유에 돌밭에 떨어진 씨는 열매는 못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내립니다. 죄를 회개해야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굳은 그대로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를 못합니다. 강퍅한 마음이나 나만 옳다고 하는 독선적인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릴 수 없습니다. 내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그 심령 위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립니다. 여러분, 이슬이 어떤 곳에 많이 내리는지 아십니까? 산 골짜기에 많이 내립니다. 깊은 골짜기에 가보면 거기는 산 꼭대기보다 이슬이 더 많이 내립니다. 아마 신령한 은혜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한경직 예화 / 이영헌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한국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존재와 이름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이나 한국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면 어떤 곳이든지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남기는 것을 봅니다. 수년전 제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유명한 인터라켄을 통해 융프라우 꼭대기를 올라갔습니다. 그 산은 아주 아름다운 산인데 그 산꼭대기에도 한국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가노라 한국 남자 김 O O.” 제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은 아주 집요한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영원을 사모하는 본능적인 몸짓이라 할만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 진실한 예배를 사모하라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 가족은 애완견을 키웠다. 가족은 들판에서 개와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개털에서 진드기를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만일 진드기를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참 행운아다. 진드기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지만 파리만 한 것도 있는데, 참으로 넌더리가 나는 것들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그것들은 거미나 전갈과 같이 거미류에 속한다. 어쨌든 백과사전에서 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는 그들의 앞발은 기생하는 동물이나 식물에 올라타기 쉽게 한다. 그들은 숙주의 몸에서 안전한 장소를 재빨리 찾아내어 입 부분을 살 속에 넣고 빨아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숙주를 떠난다”(내 삶의 방식이 이런 ‘유’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자신들이 살아갈 만큼만 기생하다가 필요가 채워지면 떠나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산다.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가서 다음 주일까지 살아갈 만큼만 하나님께 생명을 얻은 다음, 남은 6일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면 된다. 당신은 어떤가? 때로 하나님을 그냥 방문할 뿐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의 거처가 되시는가? 당신이 예배 인도자라면 예배 사역 때문에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할 따름인가, 아니면 당신은 실제로 주님이 머무시는 본향이 되는가?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탐 크라우터 외

▣ 소망의 광채

1535년, 중세 암흑기에 개혁자 존 핏서가 사형을 당하던 날 이었다. 중병에 걸린 그는 사형대의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야만 했다. 그가 사형대에 거의 올라갔을 무렵, 먹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핏서는 두 팔을 벌려 구경꾼들에게 시편 34편 5절 말씀을 크게 외쳤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어디 핏서뿐이랴. 주를 앙망하는 사람은 영원한 '소망의 광채' 를 입는다.

▣ 앙망하는 기도

교회 청년들이 무전여행인 '거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굴과 행색은 정말 반거지였다. 그런데 눈빛이 달랐다. 말이 달랐다. 힘이 있었다. 자신들은 몰랐을 것이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 같았다. 거지순례 중 겪은 일을 나누는데 이구동성으로 돈 떨어지는 순간부터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청년예배 때 그들은 간증하면서 울었고 찬양하면서 울었다. 그동안 예배드리면서 늘 그렇게 능력 있고 충만하지 않았다. 거지순례를 갔다 오더니 이렇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은 정말 새 힘을 얻는 것을 보았다. 거지순례를 다녀온 청년들을 통해 철저히 무소유, 무능력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능력의 길임을 깨달았다.

많이 가진 것이 잘못일 리는 없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기도가 안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 예수를 앙망하는 생활

우리에게 숙명처럼 변개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고 변개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 신체조건들, 가정환경과 민족사회 환경을 그대로 수락해야 하는 것이 인생가운데는 많이 있다. 하나님은 시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 많다. 아기는 열 달을 기다려야 하고, 농부도 가을을 기다려야 하며 악한 자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시한도 하나님의 파리떼처럼 하나님의 서리바람이 불어야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여 태아가 성장을 기다리고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섰듯이 번데기가 고치 속에서 나비되기를 기다리듯이 주님을 앙모하며 신뢰하고 기다리며 그의 시간과 치료와 창조의 손에 맡겨서 여물게 하는 지혜를 배우자.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예레미야 14: 22)

▣ 사모, 앙망에 관한 성경말씀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편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123]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시편 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편 119: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편 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잠언 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아가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이사야 26:8-9]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빌립보서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2: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빌립보서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데살로니가전서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디모데전서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야고보서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후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이사야 33: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이사야 38:14]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51: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이사야 64: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사모함 예화 모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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