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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설교말씀자료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

by 진이늘이 smjin2 2013. 7. 17.

성경본문 :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제    목 :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 여기서 '싸움'이라 번역된 단어는 딤후 2:5에서 '경기'라 번역된 말과 동일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초대 교회에서는 순교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는데(Moffatt, Dods), 본문에서는 어는 박해를 가리키는지 분명치는 않다. '브라운'(Brown)은 스데반 이후의 박해와 야고보는 순교(참조, 행 12:2)를 언급한다고 보며, '이상근'은 네로에 의한 로마 박해를 의미한다고 본다.   '구경거리가 되고.' 이 말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군중들의 구경과 모욕에 노출되어 죽어 갔던 로마 원형 경기장으로 온 말이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를 볼 때 이는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묘사인 것으로 보인다(Barmby).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산업'이란 단어는 <uJpov  휘포>와 <a[rcw  아르코>의 합성어로서 존재하기를 '시작한 것'이란 뜻으로 '존재'의 의미로, 나아가서는 '소유물'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참조, 눅 12:15 행 2:45; 4:32). 고대 사회에서는 죄인들의 재산을 국가가 몰수하는 법이 있어서 일단 죄인으로 취급되면 가지고 있는 재산 모두를 빼앗겼으나 성도들은 이런 것을 슬픈 일로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래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상근).   '오실 이.' 당시 메시아를 의미하는 말로서 랍비들 간에 즐겨 사용되던 단어인데(이상근),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적 재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단어이다(김정준). 세례 요한 예수님을 가리켜 이 단어를 사용한 바 있다(참조, 마 11:3 눅 7:19).



   본문 말씀은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순교의 피가 돌게 하는 고난과 소망의 대서사시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요즘처럼 예수 믿는 것이 아무런 박해나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교회마다 사람들이 넘치는, 다시 말해서 교인이 된다는 것이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되는 시대에는 그 깊은 의미와 맛을 쉽게 알 수 없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의 자세가 필요한 지를 본문에 의거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 때 고난과 핍박을 당합니다. 그리고 죄 많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연단의 과정 없이 참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다면 사실 그 신앙은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번 신앙의 위기와 고통을 통과한 자들만이 참으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당한 고난이나 핍박을 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의 고난은 성도에게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려고 한다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받은 박해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사업 중에나 정말로 성도답게 처신하려고 한다면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여러 가지 핑계로 적당히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없을 뿐입니다. 신앙 때문에 h장된 직장을 버리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핍박이며, 고난인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성도들이 겪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늘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로마 네로 황제 때 성도들이 어떠한 핍박과 고통을 당했는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그렇다고 이 세상에 대한 비관론자도 허무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하늘의 것을 더 소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오늘날 교회에 비교해 보면 많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남편의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큰아들이 좋은 대학에 붙게 해주십시오,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등 많은 기도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축복은 구하면서 하늘나라의 축복을 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저 세상의 것은 그때 가서 주시고 지금은 이 세상의 것이나 좀 많이 주십시오 라는 의식이 현대 교인에게는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요일 2:15) 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말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빌 3:20).


   3.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성도는 궁극적인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인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승리를 위한 가장 큰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내의 부족으로 신앙의 길에서 타락했는지는 예를 들지 않아도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가 모든 사람에게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그냥 참고 있으라는 말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의사가 오니까 참으라는 것은 타당한 말이 됩니다. 즉 성도들의 인내는 아무런 소망도 기대도 없이 무작정 참는 인내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소망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한 이 신앙과 소망이 진정한 인내를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37절 말씀에도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지금 당장은 좀 억울해도, 좀 손해 봐도, 좀 답답해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내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것인 만큼 꼭 그 약속이 주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환란을 참고 핍박을 참는 자들은 반드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39절의 말씀대로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 자로서 당당하게 지금의 세상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과 핍박을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그를 통해 연단된 신앙을 갖추며,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저 세상에 소망을 두며, 또한 현실의 모든 어려움을 인내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약속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받는 자로서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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