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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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축복하신 결혼(결혼식 설교)

/ 창 2:18-25절,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요람이요 터전입니다. 가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덕과 의무를 올바르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가 사실은 가정의 가치와 질서가 파괴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인류의 첫 가정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아담과 하와의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아담의 가정을 살펴보며 결혼과 가정에 대해 바른 인식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창조(創造)와 은총(恩寵)으로 세워진 가정입니다. 1)아담의 고독(孤獨) 때문입 니다. 가정이 세워진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단지 남성과 여성이 성적인 결합을 위해서 세운 것이 가정이겠습니까? 아니면 사회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까?

가정이 세워지게 된 근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정은 커다란 위기에 처할 것이고 그 위기는 사회의 위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과연 가정은 왜 세워져야만 했을 까요? 가정의 근거는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한 것이 발단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어 놓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어놓고는 "매우 좋다"고 했습니다. 이런 축복된 창조 과정에서 유일하게 좋지 않다고 언급한 상황이 바로 홀로 있는 아담을 보신 후였습니다.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것을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이 가정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그러므로 맹목적인 독신주의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사람은 때로 고독에 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에 대해 올바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안 후에는 고독을 탈피해야 합니다. 이제는 타인과 어울려 자기 확대를 하고 타인의 사랑과 세계관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2)하나님께서 재(再) 창조(創造)하십니다. 보기에 좋지 않게 여기신 하나님이 가만 계실 분이 아닙니다.


이 좋지 않은 상황(狀況)을 변화(變化)시켜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이 시작(時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에 그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21-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가정(家庭)도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산물(産物)입니다. 좋지 않은 상황(狀況)에 대해 하나님이 행동(行動)하실 때 상황은 변화되고 가정은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성도(聖徒)들은 이 같은 가정의 창조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아담을 위하여 그의 몸 속에 있는 것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創造) 섭리 중 가장 끝에 이루어진 결과(結果)입니다. 그러기에 인간(人間)의 결혼(結婚)은 하나님의 창조와 은혜(恩惠)로 이루어지는 엄숙(嚴肅)하고 고귀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결혼(結婚)과 가정(家庭)의 가치를 무시하고 인간(人間)의 저급한 욕망(慾望)과 사회적(社會的) 욕구를 충족(充足)시키고자 하는 현대인(現代人)들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2.하나님의 뜻과 가치를 실현(實現)시키는 장소(場所)로 세우셨습니다. 1)아담 홀로 땅 다 스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홀로 있는 상황을 좋지 않게 여기셨다는 말씀은 단지 인간(人間)적 고독(孤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하나니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삶의 방식은 독단(獨斷)과 독재(獨裁)가 아닌 이웃과의 "협동(協同)"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진리(眞理)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불행(不幸)이 인간의 독단과 독재에서 기인되기 때문입니다. 가정(家庭)도. 직장(職場)도. 나라도 한 개인이나 계층의 독단과 독재로 인해 불행해집니다. 불신앙(不信仰)의 죄도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독단적인 존재가 되어 자기 삶을 독재하고 그릇된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실현시키는 삶의 현장(現場)으로 가정(家庭)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家庭)과 사회(社會)가 다스려지는 원리(原理)는 신뢰(信賴)에 기초(基礎)한 협동(協同)의 원리(原理)가 되어야 합니다. 2)돕는 배필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홀로 있는 단점(斷點)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시작하십니다. 바로 돕는 배필(配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구조해 주는 상대자"를 의미합니다. 독단이라는 극단의 상태에서 구조해 주는자. 독재자라는 죄악의 늪에서 구원(救援)해 주는 자가 "배필(配匹)"인 것입니다.


배필이란 단지 남편의 단점을 보완해 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배필이란 구조자의 개념입니다. 홀로 있는 아담을 외로움으로부터. 불완전(不完全)으로부터, 미완성(未完成)으로부터 구조(救助)해 주는 자가 돕는 배필(配匹)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아내와 남편에 대해 서로가 이런 구조자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까? 서로가 이런 절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가정의 많은 위기(危機)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3.아담의 가정(家庭)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구속(救贖) 섭리(攝理)의 한 단위(單位)입니다. 1)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십니다.(22절) 많은 청년(靑年) 남녀(男女)들이 자신의 반려자(伴侶者)를 얻기 위해 노력(努力)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해지는 흔한 풍속이 미팅이나 맞선 같은 것입니다. 남녀간 만남의 기회가 적은 우리의 문화(文化) 풍토(風土)에서 이런 형식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이런 만남을 통해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의 내면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만남의 자리에서 오가는 감정(感情)과 인상(印象). 대화를 통해 얻는 신뢰감(信賴感) 등으로 인해 교제(交際)하게 되고 결혼(結婚)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마음은 누가 이끄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음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감정(感情)과 정욕(情慾)에 이끌리는 것은 경계(警戒)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내 감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와를 이끌어 오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아담의 가정을 이끌어가셨습니다. 가정은 단지 남과 여의 결합체가 아닙니다. 가정은 이미 그 자체(自體)가 하나님의 유기체(有機體)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산술적 결합체(結合體) 이상인 하나님의 섭리(攝理)와 생명(生命)과 구조(救助) 논리(論理)를 갖고 있는 공동체(共同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가정(家庭)의 주인(主人)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가정(家庭)을 구속(救贖) 섭리(攝理)의 기반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담의 가정을 시작으로 아벨. 셋. 에녹 같은 신앙(信仰) 선조(先祖)들을 배출시킵니다. 더 나아가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 고넬료의 가정등등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가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증거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입니다. 가정(家庭)이 형통(亨通)하는 것이 교회(敎會)가 잘되는 일이고.

국가가 잘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간구하고, 그 이끄심이 실현(實現)되도록 노력(努力)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첫 가정인 아담의 가정 형성 과정을 통해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기반으로 한 거룩한 공동체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정 생할은 올바른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의 근간이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세우신 계획은 무엇입니까?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배우자로서 아내의 역할이 남편의 조력자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고전11;9절에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여 갈빗대를 취하여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배필을 만들기 위한 초자연적인 잠을 아담에게 주어 만드셨음을 말해줍니다.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끌어 오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가정의 제도를 하나님께서 제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신성성을 의미하며, 성도(聖徒)는 가정(家庭)을 귀히 여겨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엡5:22-25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 교회릐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서로 아끼면서 억지가 아닌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협력할 때 사랑은 신뢰를 구축에 갑니다.


신뢰없이는 화목한 가정과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아담의 사랑고백이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에벤트성 사랑고백을 하여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쓰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아담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 23절에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납자에게서 취(取)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독립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아름다운 가정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녀는 결혼 후에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가정의 아름다움을 지켜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부모나 자식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결과입니다.

부부는 각자의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24-25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이런 것입니다. 서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형제 자매가 끼여들면 행복은 나라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도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인간은 어리석어서 자기가 죄를 범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이 있습니다. 또한 가정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이루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격이 않마져서 이혼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똑 같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면이 있어야 발전할 수있지 꼭 같이. 늦잠자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가정을 꾸려가겠습니까? 둘따 다혈질이면 가정에 가구나 전자 제품이 남아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 부부는 환상의 쪼이트입니다. 따라 복창합니다. "우리 부부는 환상의 쪼인트다" 예 그렇습니다. 당신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환상의 부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더 아름다음가정 믿음으로 군건한 가정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기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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