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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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및 가족치료 프로그램



신과 3년 9632019 김 경 식


  짐이 너무 무거워요


1. 문제점





        나는 모태신앙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대학 때에 선교단체에 가입,선겨사로 헌신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기고 잇다. 그러다가 갗은 사역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다. 함께 복음을 전하며 평생 주님을 섬기면 너무나 좋을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열심히 사역을 했다. 사역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사역을 해 왔는데 얼해 간사 수련회를 하면서 이상하게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전 세계 복음화, 민족 복음화, 예수 그리스도!


다 좋은 것이고 그래서 이것에 내 삶을 다 드렸지만 이제는 내게 아무런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나는 다른 기도를 할수없었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죽고 싶어요. 나를 죽여 주세요. 내 짐이 너무 무겁기만 합니다.”


집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돌도 안 지난 아이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아무 힘을 주지 못했다. 다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역과 내게 주어진 일들에 눌려 그저 모든 것이 귀찮다는 생각뿐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이런 음성이 느껴졌다.


“안된다. 죽을 수는 없다”


나는그 생각에 대답했다.“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너의 그 짐은 내가 져야 할 짐이다. 내게 맡겨라.”


그러면서 마태복음의 말씀이 생각났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주님의 이 말씀과 함께 지나간 삶들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면서 주님이 나에게 왜 이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었다. 속에서부터 묵은 보따리가 터지는 것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몇 달 전 내가 처음 내적 치유 세미나에 참석했을 대였다. 강의하는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주님께서 거지와 같은 자의 옷을 벗기고 물로 씻어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이 찔렸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거지와 같은 얼굴과 옷에 무엇인가가 묻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곤했다. 그래서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 얼굴을 문지르는 습관이 생겨 버렷다. 그 세미나 이후 내 안에 깊은 무언가를 주님이 만지시기 원한다고 행각했지만 그 일은 더디기만 했기에 괴로웠다.


나는 또 사역을 하고 그 와중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여름을 지내고 나에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의 짐을 나에게 맡기라고 나는 주님이 이 말을 왜 무슨  으로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말은 정말이지 주님이 나를 아시지 않고는 하실 수 없는 말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님의 그 말과 함께나의 지나온 일들이 순간적으로 지나가며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정은 아버지가 외도를 하셔서 집안에 많은 고통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교회를 갔는데, 그곳에 어머니도 계시고 그리고 다른 아주머니들이 함께 있다가 나를 보고는 말했다. “상호야 너는 너의 아버지같이 되지 마라. 너의 엄마 불쌍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부끄러웠다. 그 뒤로부터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기에 더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더러운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는 염려가 내 안에 자리잡았나보다.


그 뒤로 성인이 되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나는 내 얼굴에 무엇이 묻지 않았는지 불안해서 항상 얼굴을 만지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다니고 씩씩하며 당당한 척 하는 버릇이 생겼다. 목소리도 크게 하고 교회 생활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서 내가 더럽지 않다는 것, 내가 거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어수선하고 괴로운 가정에서 나는 내 몸을 기댈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갔더니 어머니는 울면서 응얼거리며 기도하고 계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나에게, 그리고 형에게 갔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하고 모두들 자기도 힘들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어서 어린 마음에 너무 고통스러워 죽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끈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국민학교 때의 일이었다. 그러면서 어디에서 죽을까 죽을 장소를 궁리했다. 그 근은 아주 오랫동안 내 가방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우리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나라도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결혼을 하면서 이제 쉴수있기를 바랬다. 아내에게 나를 의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도, 가정도 내가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주님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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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론적 접근





1) 성서적 접근





        (1)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마음이라면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을 것이다. ① 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② 관심은 기대하지만 감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③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칭찬하고 어떤 사람은 악의적으로 판단한다. ④ 어떤 사람과 우정관계를 맺을 때 소유욕이 강하다. ⑤ 표면적으로만 행복할뿐 내부적으로는 대단히 예민하고 까다롭다. ⑥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데 극히 조심성을 기울인다. ⑦ 내가 누구로부터 고통받았던 대를 상세히 기억한다. ⑧ 그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에 분노와 고통을 느낀다. ⑨ 그 사건을 기억하여그 사람을 나브게 생각하는 데 사용한다. ��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2) 왜 용서해야 하는가? ①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가 나 자신에게 체험되지 않는다. ② 용서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로 말미암아 실의에 빠져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들의 불쾌한 행동과 태도가 자꾸 생각나서 우리의 마음은 점차 나쁘게 귿어져 가고 쓴 뿌리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③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상대방생각에 사로잡혀 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그를 닮아가게 되고 미워하는 대상은 결국 둘이 되고 만다. ④ 용서하지 않으면 죄의 파생을 끊을 수 없다. 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모임이나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한다. ⑥ 쓴뿌리가 자라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계속 계발되지 못한다. ⑦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에 대한 바른 이해 ① 용서란 상대방의 잘못을 눈 감아주는 것이 아니다. ② 잘못 행한 자의 심리를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용서가 아니다. ③ 상대의 잘못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이상의 것들은 대단히 인격적이고 너그러운 태도 같지만 이것은 용서가 아니다.


        (4) 용서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① 상대에 의해 우리 자신에게 가해진 구체적이고 명확한 잘못을 직시한다. ② 상대에 의해 내 마음에 생긴 상처와 고통을 직시한다. ③ 상처받은 나의 마음의 분노를 직시하고 인정한다.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분노조차 내지 못하고 그것을마음속 깊이 숨겨버리는 것이 자신에게 향해질대 극심한 우을증과 자신에 대한 협오감으로 이러지기도 한다. ④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생각하며 그 십자가 앞에서 상대방의 잘못된 행덩을 용서하겠다고 내가 의지적으로 선택하고 고백한다. ⑤ 심판과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나는그를 용서하겠다고 입으로 시인한다. ⑥ 용서하지 못했던 잘못을 주님께 자백하고 깨끗하게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감사하라.


        (5) 용서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나의 감정의 변화이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과 사건이 정리되면 감정은 결국 따라온다. 그리고 대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즉시 감정이 변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의 변화이다. 상대의 감정은 내 권한 밖임을 기억해야한다. 상대방의 감정은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1)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감정을 바꾸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대신에 그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명령하을 내리신 이유는 내가 해야만 하는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대가 잘못을 행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서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명심해야한다. 


        (6) 왜 용서하기 어려운가? ① 상대에 대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용서하기 어럽다. ② 내 안에 같은 죄가 있을 때 정죄의식이 강해져 용서하기 어렵다. ③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모르기에 내가 하나님 대신 심판하려는 마음이 용서를 막는다. ④ 하나님의 용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할 때 용서하기 어렵다. ⑤ 용서한 후 결과에 대해 불안하기에 용서하기 어렵다. 이 두려움에 대하여 로렌 커닌헴은 이렇게 말한다.2) “이 두려움이란 내가 상대방을 용서했을 때 앞으로 더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용서는 당신이 장래에 받을 상처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또한 용서의 행위는 정서적인 치유를 가져와 당신으로 하여금 장래에 받게 될 상처들을 견딜 수 있도록 당신을 충분히 강하게 해줄 것이다.”


        (7) 용서의 세가지 방향  먼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일1:9에도 “만일 우리가 윌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한다. 죄와 고통에 대한 성경적 처리는 단 하나이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용서하라. 마22:39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게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용납하심과 같이 당신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해야 한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학대하고 비하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무서운 거역이며 당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결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심과 같이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해야 한다. 계속 죄책감에 머물러서 자신을 비하시키고 학대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신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22:39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5:43-47에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롬13:9-10에는 ”간은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용서의 단을 쌓으십이오. ①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상대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대를 향한 나의 태도를 지금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를 나 스스로 재판하고 판결하는 권리를 하나님에게 넘겨드리는 것이다. ②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겠다고 우ㅢ지적으로 결심하였을지라도 어떤 경우에 감정은 여전히 그에 대한 미움이 씻어지지 않고 있을 수가있다. 그 감정과 상관없이 바른 선택을 지금하라, 이것은 결코 위선적인 행동이 아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바른 행동이다. ③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도록 기도하라. 표면적인 사건보다는 지나가 버리고 싶이 묻혀 버린 사건들이 더욱 당신이 용서함으로 해결해야 할 사건일 수 잇다. 이런 결박된 사건들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지금 기도하라. ④ 떠오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용서해야 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라. ⑤ 용서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그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시다는 약속에 의지해서 입을 벌려 용서의 기도를 드리라. ⑥ 믿으리. 행동하라. 그를 위해 기도해 주라. 주님의 시선으로 그를 보라.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라. 당신 안에 봉해진 채 썩고 있던 우물이 열려졌다. 어느 우물은 원망과 한이 많아 깊이가 깊어 그 속의 오물이 다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수 있지만 분명히 그 뚜껑이 열릴 것을 믿으라. 성령께서 결국은 그 우물 안의 오물을 다 퍼내시고 맑은 평안의 물로 채우실 것이다.





2) 이론적 접근





        아처 토레이는 “ 우리는 상처를 잊고자 마음 속에 상처들을 감추지만 결국은 모든 축적된 상한 기억들이 더 이상 눌려 있지 않고 오히려 지배하게 될 때에 마음은 태풍의 눈과 의식까지도 빨려들어가면서 올바른 생각을 못한다. 그대 영은 하늘과도 연락이 안되어 항상 마음이 아픈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내적치유는 우리의 잠재의식의 치료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3)


        이제 우리는 이론적 접근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본인은 이를 세대간 가족치료모텔로 접근하고자한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는 Bowen을 든다. 그는 정신분열증으로 발전하는 모자 공생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정신분열중은 미해결된 모-자 공생관계로써 미성숙한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와 공생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이론은 가족의 분화(individuality)와 통합(togetherness)이다. 먼저 자기분화는 가족에서의 유일한 문제는 정서체계와 지적체계를 분화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자기분화는 정신내적이고 인간관계적 개념으로 자신과 타인의 구분, 정서과정과 지적과정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과 확고한 자기와 거짓 자기의 구분이다. 확고한 자기는 지적이고 합리적이며 대안적인 고려를 통해서 신념, 의견, 믿음 등의 삶의 원칙을 가진다. 그러나 거짓 자기는 감정적 압력에 기반해서 선택하며 결정과 선택에 일관성이 없고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 분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은 유연하고 적응력이 강하며 자율적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객관성과 감정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분화가 잘 되지 못한 사람은 감정적으로 반발하기 쉽고, 자신의 감정만을 느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모르고, 융통성이 없으며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한다.


        그리고 가족투사과정에서 원가족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단절된 남편이 부인을 차갑고 거리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면 부인은 아이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남편으로부터 멀어지고 아이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특히 한 아이에게 바리게 되는데 주로 장남이나 장녀 또는 막내, 자신과 닮은 아이 또는 결함이 있는 아이에게 집착하게 된다. 정서적 단절로는 격리와 위축, 멀리 떠남, 부모에 대한거부 등의 방법이 있다. 불안이 높고 정서적 의존이 높은 사람에게서 단절이 일어나며 이들은 대화가 피상적이고 짦다. 부모와 조부모간의 정서적 단절은 부모와 아동간의 단절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한 사람의 심각한 역기능은 여러 세대에 걸친 가족 정서체계 기능의 결과로 가장 큰 손상을 받은 자녀를 추적해보면 가장 낮은 계보를 볼 수 있고 정신분열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한 3대가 관련된다고 한다.





3. 실제적 접근(FootNote)





        갈등의 기본은 불일치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갈등의 요소에는 나에게 속한 것, 상대방에게 속한 것, 상황에 속한 것, 주제에 관한 것이 있다. 그리고 갈등을 대처하는 방법에는 희생과 공격, 계산, 무시형이 있다. 희생형은 자신의 영역을 완전히 없어지는 형이며 흔희 한국의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완전히 나를 희생함으로 그 갈등을 해소하고자하는 것이다. 나를 주장하기 보다는 평화유지가 더 중요해,갈등은 나쁜 거야, 그리고 갈등은 피해야 하는거야. 이 정도는 내가 참을 수 있잖아. 그러면서 너무 빨리 동의를 하며, 자기 애기를 할 때에 수식어를 너무 많이 붙인다. 말꼬리를 흐려버린다. 공격형은 상대의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인데, 위에 서려고 하고, 목소리는 크고, 당당하며, 권위적이며, 손가락질을 잘하는 형이다. 나만이 옳다는 것이다.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중간은 없다. 의미를 따지지 않고, 우리편 너희편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계산형은 주제가 되는 것만 남겨놓고 나,너,상황에 속한 것을 없애는 형이다. 무표정하며, 상대와 상황을 무시하고, 오로지 주제에만 관심이 있다. 이들의 생각에는 성숙한 인간은 감정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감정이란 위험한 것이며, 감정과 이성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상황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기계적이며, 변화가 없고, 자연스러운 동작이 없고, 청취 때에는 한귀로 흘러버린다. 그리고 내가 말할 차례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시형은 이 4가지 영역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갈등은 나쁜 것, 관계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생각해서 갈등을 일으킬 때에 주제를 바꾸려하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갈등을 대처하는 길은 나,상대,상황,주제에 속한 것이 서로 균형이 있어야하며, 나는 자기 표현을 확실히 하고 용기가 있어야하며,나를 주어로 해서 과감히 이야기를 하는 훈련을 해야하며, 상대의 몫을 확실히 인정해야하며, 경청할때에 TUNE IN 의 배려도 격들여야 한다. 상황에 대하여는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주제에 대하여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저달해야하는데 어떻게 분명히 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주의깊게 준비해야한다.


        가계도를 통하여 옛 선조들의 외도 사실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그렇게 할 경우에 아버지께서 왜 외도를 해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먼저 아버지를 치료해야한다. 그러나 이 러한 것은 아버지의 전적인 잘못임이 분명하다. 이로 인하여 가족들 간의 갈등의 요소들이 많이 싸여왔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살이클을 맟추어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며. 역할을 분답하여 드라마를 만들어 이럴 경우에 아버지는,어머니는,자식들은,각자의 의견을, 느낌을 서로 나누는게 어떨까? 그리하여 어떤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이 될거이다. 지금도 아버지의 외도가 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집안을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통하여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일에 적극적으로 함께 동참해야한다.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간의 사랑을 돈독하게 하기 위한 대화의 장과옛날의 감정을 모두 털어버리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성경이 제시하는 원리들이 있다. 첫째원리는 롬12:17,19로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에 의하여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국의 대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다운 일이요.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다운 일이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마귀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짐승의 일이다.” 원수를 친히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겼던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축복을 받았지만, 끝까지 미움을 버리지 아니하고 다윗을 해치려했던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온국민에게도 버림을 받아 그와 온 가족이 최후를 마쳤다. 작은 미움의 씨앗은 큰 멸망의 구덩이로 사람을이끌어 넣게 되는 것이다. 둘째 원리는 모든 사람을 선으로 대하라는 아가페적 원리이다. 롬12:20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어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피해를 입은 돈 거래 한 건만 가지고도 혹은 시시한 미운 감정만 가지고도 “그 사람 사고나 나라”는 살인적인 생각이 들때가 있지않는가? 어떤 경쟁자가 아파있을 때에 은근히 좋아하는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2차 대전이 끈나고 일본 천황이 영국 여왕을 예방할 기회가 있어서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자 이 여황이 하는 말이 “용서할 수는 있으나 잊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믿는 사람도 이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서야 하는게 당연하며 그러한 평화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롬12:20 하반절에는 우리에게 다시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샇아 놓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옳고 그름의 원리보다 더 위대한 원리인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아가페의 원리로 살아야만 천국민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미워하는 병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증세를 찾는다면 그것은 내가 죽지 않아서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늘 미움의 대상자를 그려놓고 그를 미워하기 때문에 그를 닮게 되지만,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 주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기도하는 일를 변화시키시고 능력을 주셔서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하십니다.





4. 결과 및 전망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생활을 종합해보면서, 여러 가지 심리 테스트를 사용하여 나름대로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상담자에게 “당신안에 든 것은 이것이며 당신의 진단명은 이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다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이다. 이 치료는 약물이나 전기요법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저적인 환자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환자에게 대한 기대는 이러하다. 먼저 아버지에 대한 용서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역에 있어서 보다 열심을 품고 맡겨진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어야하며, 이로 인하여 가정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또한 있었을것인데, 이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기대한다. 아버지께서 외도를 하시게 된 배경에 대하여 깊이 통찰을 하여야한다. 혹 선조들 중에 외도를 한 사람들이 있는지 가계도를 통하여 알아보도록한다. 더 나아가 본인과 독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형제들의 아픔을 찾아가 치료하는 일이 필요하며, 더 깊은 상처를 입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자녀로써 해야 할 순종과 공경의 도리를 잘 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본인도 또한 상처를 받았지만 당사자인 어머니의 마음은 지금 어떠하실까? 이로 인하여 아버지를 향한 적대감으로 인하여 자신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았는지를 돌이켜보며 자녀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본인의 대에서 이러한 아픔을 모두 청산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3-4대(영원히)까지 저주가 아닌 복의 가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결  과》════════════════════════════════════════


        나에게 있는 이 짐의 무게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죽게 해 달라고 이제는 죽게 해 달라고 그 어릴 때 그 심정으로 주님에게 기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어린 나의 모습을 보이시며, 그 모든 것이 내가 져야 할 짐이 아닐고 해셨다. 나는 내가 이렇게 짐을 져 온 사람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 짐을 지고 살아왔음을 알았다. 내가 그것을 알고 주님께 내 짐을 드리겠다고 했을 때 내 임에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주님 이제는 살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정말 살 것 같았다. 그러면서 아내 생각이 났다. 내가 그에게 짐을 지워 주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도 지기 어려운 짐을 내가 그 사람에게 지워주고 있었구나‥‥‥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의 선물로 주신 사람인데, 나는 그에게 짐을 안게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했을 때 아내는 나의 말을 이해했다. 그 뒤로 나의 사역과 가정 생활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내 짐을 져 주시는 주님! 오늘도 나는 그분에게 내 짐을 다 맡긴다. 이제는 어떤 시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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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언 2: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는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Loren Cuningham Winning, God'S Way 「네 신을 벗으라」(예수전도단) p.102.




3) 아처 토레이, 「우리와 하나님」(서울:도서출판 예수원,1980),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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