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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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혼란, 10장-11장


1. 인간의 교만

 니므롯(참의 손자)이라고 하는 자가 바벨론 부근의 시날 평지에서 종교 건물 건축 계획-성과 대의 시날 평지에서 종교 건물 건축 계획-성과 대로 된 건축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창 11:1-4).


2.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이 이 악한 시도를 벌하기고 한 때 통일되어 있던 언어를 많은 방언들로 혼잡케 하심으로써 인류를 적은 인종 무리들로 분리시키셨다(창 11:5-9).


3. 민족들의 기원

 고대 세계는 이제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1) 야벳의 후손(창 10:2-5).

  야벳의 후손과 그들이 이룬 민족은 다음과 같다.

  (1) 고멜(독일)

  (2) 마곡, 두발, 메섹(소련)

  (3) 마대(페르샤)

  (4) 야완(그리이스)

  (5) 디라스(이태리)

  (6) 도갈마(아르메니아)

  (7) 달시스(스페인)

  (8) 깃딤(키프로스)

 2) 함의 후손(창 10:6-20).

  함의 후손과 그들이 이룬 민족은 다음과 같다.

  (1) 구스(에디오피아)

  (2) 미스라임(애굽)

  (3) 붓(아프리카)

  (4) 가나안 (팔레스틴의 가나안 인)

  (5) 니므롯(바벨론과 앗수르)

  (6) 시돈(페니키아)

  (7) 헷 (히타이트)

  (8) 여부스(여부스족, 다윗 통치 이전의 예루살렘 거주자)

  (9) 가슬루힘(블레셋)

  (10) 신(중국, 인도 등의 창시자였으리라)

 3) 셈의 후손(창 10:21-32창 11:10-32)

  (1)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 이스라엘 민족을 이룸.

  (2) 아브라함, 이스마엘, 에서를 통하여 : 중동 아랍 국가들을 이룸

 인류학자 커스탄스(Arthur custance)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아의 가문에서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의 모든 세계 인류가 시작되었다고 결론 짓는 바이다. 창세기 6장부터 10장에 기록된 사건들과 특별히 창세기 9:25-28에 기록된 그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미래에 관한 노아 자신의 예언은 다 같이 인류의 초기 역사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우리에게 제공하여 주는데, 이처럼 올바르게 이해된 역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현재의 인간이 한 마리의 원숭이에서부터 시작하여 길고 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명화된 오늘날의 상태에 이전 세계의 축적된 유산을 물려받은 한 가계로서 새 출발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논문을 통하여 설명하려고 했던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잔존해 있는 화석(인간 화석)의 지리학적 분포는 그 화석들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간, 또는 부분적으로 강제 분산된 사람들-그들 모두에게 중심이 되는 한 지점에 형성되었다가 급격히 증가되어가는 인구 집단으로부터 분산된 사람들-의 일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논리적인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인구의 분산은 계속 되는 이주의 물결을 낳게 하고 또 이 물결은 이전에 분산되어진 사람들을 더 먼 주변으로 확산시켰다.

 ② 가장 퇴화된 인간 화석은 매우 살기 힘든 곳으로 쫓겨난 전반적 이주 물결의 한 표본인데, 그들이 살도록 강요받은 그곳의 환경 탓으로 그들은 육체적 퇴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③ 그들 화석들의 엄청난 신체적 다양성은 그들이 각기 소규모이고, 고립되고, 근친 결혼을 한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이에 반하여 그들의 폭넓은 분산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문화적 유사성은 그들 모두의 기원이 같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④ 화석 인간에 해당되는 사실들은 소멸된 원시사회와 현존하는 원시사회에 다같이 해당되는 사실이다.

 ⑤ 이들 모두의 초기 인구 분산은 근본적으로 한 혈통에서 연유한다. 즉 창세기 10장의 함의 가족이다.

 ⑥ 그들은 그 후에 인도-유럽어족(예, 야벳족)에 의해서 대치되거나 압도당했는데, 인도-유럽 어족은 물려받았거나 새로 개방된 다양한 기술로 그들이 분산된 지리적 위치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⑦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인류 이동의 전 과정에 있어서 노아의 가족과 그 후손에 속하지 않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었다.

 ⑧ 마지막으로 이 논제는 역사적 증거에 의해서 입증된다. 그 역사적 증거란 이주 활동이 앞에서 언급한 유형을 따르며 간혹 개인이나 온 부족의 퇴화를 수반해 왔고 항상 문화적 관계의 일반 유형을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 유형은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 유형은 고대로부터의 과정을 연구한 고고학이 전해주는 바이다"(「창조와 고대 인간」, p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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