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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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90:9-17, 딤후4:7-8

제    목 : 후회가 없는 삶


 오늘은 2014년도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맞는 자가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유대의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왕 다윗이 보석 세공인에게 반지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내게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보석 세공인은 여러 날 고민했지만 어떤 글을 넣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아 여러 날 고민했습니다. 고민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당시 지혜롭기로 소문난 다윗의 왕자 솔로몬을 찾아갔습니다. 솔로몬은 웃으면서 보석 세공인에게 이 한마디 글을 새겨 넣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글귀가 무엇이었을까요?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이 문구는 문장만 다르지 솔로몬의 전도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굉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하고 있든지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을 한다면 교만할 수도 절망할 수도 낙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이 말씀 하나가 다윗을 온전케 하고, 또 우리들까지 영적으로 강건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그런 맥락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 때 이렇게 말합시다. 함께 따라서 합시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오늘 본문에도 그와 같이 지혜로운 말씀 나타납니다. 본문에 모세는 “날 수를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는 속히 지나가는 인생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매일매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 만난 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주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소망 중에 기다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지난 2014년 365일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정말 값진 날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날이 얼마나 됩니까? 나아가 우리의 생을 다 마치고 죽음 앞에 서 있을 때 그간 얼마나 값진 인생의 날 수가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안타까워하는 모세를 봅니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일생이 하나님 자녀다운 생활한 번 못해보고 온갖 연단만 받다가, 좋은 말로 연단이지 바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도 없이 징계의 채찍만 받다가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모세는 본문 13-15절에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도 기쁘시고 우리도 기쁜 날들이어야 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모세는 여호와께 돌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불신앙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살면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시면 참 기쁨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셔야 기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할 때 기쁨과 감사와 담대함과 은혜와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이 값지고 가치 있게 됩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광야 40년이 세월 얼마나 아쉬운 세월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이 믿음이 있었다면 40년의 세월,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세월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시내산 언약에 근거하여 신혼부부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랑이고 그들은 신부입니다. 또 부자관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그들은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크신 사랑과 은총을 주시려는 때입니다. 믿음이 있었다면 그간도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지만 더 큰 사랑, 더 큰 은혜, 더 큰 소망, 더 큰 능력, 더 큰 영광, 더욱 큰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의미한 허송세월하지 않아도 되는 때였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어가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애굽을 나온 수백만의 자기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불신과 반역으로 광야에서 다 죽고 2세 백성만 데리고 요단강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 모세의 마음 얼마나 허탈하고 안타깝고 죄송하고 심적 고통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믿음 없는 죄입니다.


 딤후 4장 7절에서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어떠한 장소나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고 그가 받은 사명을 감당하고 믿음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온갖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번 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지어는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차디찬 감옥 속에서 내가 육체적으로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지만 나는 믿음을 지키므로 이제 후로는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자기의 명예와 재산을 지키느라고 얼마나 머리를 쓰고 있습니까? 그러나 정말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내게 참 기쁨이 없음을 알고 남은 생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사명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으려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인도하기 위해 애급의 바로 왕을 대항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쫒아오는 애급의 군사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불신앙의 동족들과 싸워야 했고, 대적하는 아멜렉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사명을 따라 선한 싸움을 잘 마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4:7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생애는 일평생 싸우는 생애요 날마다 사선을 넘는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에베소서 6: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 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멋있게 승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정말 앞장서 간 훌륭한 신앙의 사람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처절한 문제인 것으로 알고 때로는 생명을 내걸고 싸웠습니다. 이러한 피나는 싸움에서 기어이 승리하고 이제 후로는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가는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들도 이렇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금년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얼마나 싸웠습니까? 어떠한 자세로 싸움에 임하였습니까? 우리의 원수 마귀는 영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귀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싸워 이기려고 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대충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걸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 시간 한 해를 반성하면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자세로 싸웠습니까? 우리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하여 보십시다. 세상의 돈과 자존심, 내 소유를 위하여서는 그렇게 처절한 싸움을 하였으면서도 정작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에 있어서는 너무나 쉽게 손을 들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 자존심과 명예의 유지를 위하여서는 지나치게 반응을 보였지만 주님의 자존심과 명예의 손상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길뿐임을 알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기도의 무릎을 꿇었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였습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적인 나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습니까?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단언하였지만 저부터도 날마다 죽기는커녕 혈기나 부리고 육신의 편안함만을 위하여 살아온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다. 그리고 우리의 힘은 약하나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악의 영들과의 싸움에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기를 우리의 대장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내로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앞까지 인도하여 오기까지 참 우여 곡절이 많았습니다. 믿음 없는 완악한 백성들의 공격을 받아 때로 돌을 들어 치려고 했을 때도 참았습니다. 시내 산에서 40일간 말씀을 받아 내려왔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고 하는 한심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그래도 인내하며 목숨 건 기도로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냈습니다.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참아야 했습니다. 그는 120세 되는 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비록 약속의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그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면서 자기를 이어 그 땅으로 인도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사명까지 감당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4:7절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경주자의 생애였습니다. 마치 마라톤 경주자가 정하여진 코스를 다 달려서 결승테이프를 끊은 것처럼 바울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 중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처럼 위대한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통쾌한 승리의 선언을 통하여 우리들이 죄 사함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다 닦아 놓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도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단판 승부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달려가는 인내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칠전팔기", 안되면 될때까지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금년 한해도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오면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경주하는 경기는 장거리 마라톤 같은 경기에다 또한 장애물 경기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거리 경주하는 것만도 피곤한 일인데 거기에 사단이 만들어 놓은 장애물까지 겹쳤으니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기에 우리들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음박질 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갔을 때에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만 파도가 이는 바다물결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물속에 빠져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장애물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 바라보고 인내로 달려갈 길을 마쳐야 승리자가 될 수 있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2-3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오직 주님 바라보면서 인내로 달려 갈 길을 다 마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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