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송구영신 예배 설교문


성경본문 : 요한복음 15장 1절-17절

제    목 : 진정한 성공을 향하여



<사람이 보는 성공,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

시인 안도현씨가 쓴 시 중에 아주 짧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는 제목의 시입니다. 추운 겨울날 연탄을 다 쓴 뒤 재가 될 때 발로 뻥뻥 찰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때를 착안해서 쓴 시이지요. 연탄은 자기 몸을 벌겋게 불태워 추운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물도 끓이고 밥도 안치고 참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 몸을 다 연소해서 뜨겁게 불태운 뒤 하얗게 변합니다. 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기분이라도 안 좋은 날이 있으면 연탄재부터 걷어찹니다. 그 때 연탄재가 우리에게 항의를 한다는 발상입니다. "야, 네가 나를 이렇게 걷어차는데 너는 한 번이라도 네 몸을 뜨겁게 불태워 이웃에게 도움을 줘 본 적이 있냐? 나보다도 못한 녀석이 나를 이렇게 구박할 자격이 있니!" 참 준열한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저는 새해에 여러분 모두가 다 성공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 분도 실패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진실로 성공하기를 원하신다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꼭 아셔야만 합니다. 선배 목사님들 중에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목회에는 성공하지 못해도 인생에는 꼭 성공할거야." 참 그럴듯한 말입니다. 아마 목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ABC, 즉 'Attendance'(출석 교인수), 'Building'(교회 건물), 'Cash'(헌금)에 있어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크게 부흥시키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인생만큼은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새해에는 반드시 성공하시기를 바라면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이지요. 사람들이 볼 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유명해지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석이나 구정이 되어서 멋진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면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 성공했다고 추켜세웁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성공입니까?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의원에 당선만 되어도 인생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공입니까? 부자 되고 권세 얻고 명예와 인기를 얻으면 다 무조건 성공한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보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 이들 중에 실상은 실패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 보기에 형편없이 실패한 것처럼 보인 이들 가운데 진짜 성공한 이들도 많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선생의 서시(序詩)이지요. 윤동주는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일본에서 옥사(獄死)했습니다. 요절했습니다. 그 당시 누가 봐도 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불우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윤동주를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쓴 주옥같은 시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고결하고 뜻 높았던 삶을 내남없이 추앙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본 성공>

오늘 여러분은 사람이 볼 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진짜 성공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유명한 말씀이지요. 여기에서 예수님은 참 흥미로운 비유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요, 하나님 아버지는 포도원 주인, 즉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는 땅위나 울타리 위에 타고 올라와 포도송이를 맺는 참 허약하고 가시가 많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시 80: 8-11; 사 27: 2-6; 호 10: 1 참조). 이런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문 위에다가 황금으로 된 큰 키의 포도송이를 새겨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뽑아 세우신 포도나무와 같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백성은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렘 2: 21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자가 가장 좋은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었지만 엉뚱하게도 들포도나무로 바뀌었다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제일 좋은 포도나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들포도나무가 되었을 때 이제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 생명의 포도나무가 되셨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이들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가지인 우리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일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다 잘라버리신다고 말씀합니다(2절).


중동 팔레스타인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땅위나 울타리 위로 줄기가 치올라와 아주 신속하게 자라납니다. 이 포도나무는 줄기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기 때문에 적어도 12피드(약 3미터 60센티) 정도의 간격을 떨어뜨리고 심습니다. 줄기가 서로 엉겨붙지 못하도록 충분한 유격을 두는 것이지요. 그런데 새로 심은 포도나무는 처음 3년 동안 일부러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더 굵어지고 강해지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가지치기 작업을 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포도나무가 숙성해지면 두 종류의 가지가 나옵니다. 열매 맺는 가지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이지요. 사람들은 포도 열매가 나올 때까지 이 두 종류의 가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열매를 봐서만 좋은 가지와 나쁜 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드디어 포도열매가 알알이 열릴 때 농부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마다 손질해서 버립니다. 전지(剪枝) 작업, 즉 가지치기를 한단 말이지요. 열매 맺는 가지로부터 생명과 에너지를 빼앗지 못하도록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잘라낸 포도나무 가지는 백해무익했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목재로 쓸려고 해도 너무 약하고 부드러워 쓸 수 없었습니다. 불에 잘 타지 않고 연기가 많이 났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기 위한 불쏘시개로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 그대로 버림받아 말라버린 가지들은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지는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열매를 잘 맺던 가지가 폭풍우나 사람들의 장난으로 꺾여져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그 순간부터 말라 비틀어져 볼품 없게 됩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만 생명과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우리가 가지라고 할 때 이제 세 종류의 가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데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꽃은 피웠는데 충실한 열매를 못 맺습니다. 이파리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생명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굳게 붙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과 에너지를 끌어당기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지요!


둘째로, 포도나무로부터 잘려 나오기 전까지는 열매를 잘 맺다가 손질되는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매를 잘 맺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열매가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예수 믿는 기쁨과 감격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열정이 사라집니다. 둔감해집니다. 현실에 안주합니다. 감격도 없고 열정도 없습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의 감격이 사라진지 오랩니다. 예수 믿는 기쁨이 사라진지 오랩니다. 왜 그럴까요? 더 이상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찰싹 붙어 있었을 때에는 열매가 있었지만 떨어져 나온 그 순간부터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만일 예수 믿는 열매가 없다면 여러분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순간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열매가 중단된 그 시점이 언제부터인지 조용히 반성해보세요.


셋째로, 포도나무에 항상 붙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가지가 농부가 가장 바라는 가지이겠지요. 8절을 보세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 많이 맺는 가지는 당연히 농부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포도원 농사가 잘되어서 포도나무 가지가 풍성한 포도열매를 맺을 때 농부가 제일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바로 이 세 번째 종류의 가지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셋째 종류의 가지가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틀림없이 성공적인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항상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서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9절 후반부에 보니까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머물러 있으라는 말은 가지가 나무에 꼭 붙어 있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10절을 보세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서 예수님께 꼭 붙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면 도대체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할까요? 12절을 보세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3: 34-3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지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꼭 붙어있는 가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실까요? 오늘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세 가지 특징>

첫째로,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본문 13절에서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10: 11절에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요일서 3: 16절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을 희생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형제 자매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지요. 여러분이 형제 자매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보이신 적이 언제입니까? 언제 여러분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정성을 바쳐 희생적으로 이웃을 사랑하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았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조금이라고 손해볼 요량으로, 희생적인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적입니다. 이유가 붙습니다. 만일 네가 이렇게 하면 나도 이렇게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아무 조건이나 이유가 붙지 않는 사랑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나 무조건적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사랑하십니다.


롬 8: 35-39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누구에겐가 아무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상처를 입었습니까? 무례한 일을 당했습니까? 중상모략을 당했습니까?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because of', 그렇기 때문에의 사랑이 아니라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새해에 여러분이 이기적이지 않고, 타산적이지 않고, 조건과 이유를 붙이지 않는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사랑은 봉사하는 사랑입니다. 섬기는 종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주신 세족식에서 잘 나타납니다(요 13: 1-5). 예수님 시대에 남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천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도로포장도 되지 않았고 항상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사막 지대에서 샌들을 신고 하루 종일 다닌다고 생각할 때 그 발이 얼마나 더러웠겠습니까? 너무나 더럽고 냄새가 났기 때문에 주인이 노예에게조차도 잘 부탁하지 않은 행위가 발 씻겨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당신을 배신하게 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친히 씻겨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주신 그대로 서로 발을 씻겨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 14).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사랑을 베풀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 여부를 'TITLE', 즉 어떤 지위를 가졌는가가 아닌 우리의 'TOWEL', 즉 형제 자매의 발을 씻겨주기 위해 우리의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평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낮은 마음을 품고 이웃을 섬기고자 봉사할 때 우리의 삶은 주님 보시기에 성공적인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만일 우리 역시 우리의 이웃을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때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서 항상 남아있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16절a). 이와 같이 끊임없이 알찬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될 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농부되신 하나님께는 존귀와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스승되시는 예수님께는 참 제자가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이 되셔서 진정한 성공을 맛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진정한 성공을 찾아서>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무엇이 성공인가?'(In Search of Success)라는 시를 썼습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신을 감내하는 것/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알며/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아니면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지 해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당신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사실 때문에 단 한 생명이라도 더 쉽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렇게 할 때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할 것이다."(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참 의미심장한 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해에는 자주 그리고 많이 웃으십시오. 어리석고 미련한 이에게 존경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지혜롭고 현명한 이에게 칭찬 받으려고 애쓰십시오. 어른들의 사랑보다 천진난만하고 거짓 없는 아이들로부터 사랑 받아보십시오. 부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야 소용없습니다. 정직하고 올곧은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받는 것이 진짜입니다. 때로 친구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잘 참아내십시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식별해서 그 아름다운 것을 마음껏 즐기십시오. 이웃에게 최악의 것만 찾아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흠이 없고 결점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할 수 있으면 타인에게서 최선의 것, 가장 좋은 장점만 발견하려고 애쓰십시오.


그리고 건강하고 슬기로운 아이 하나를 낳아서 잘 기르든지, 아니면 한 뙈기 밖에 안 되는 작은 정원이라고 할지라도 잘 가꾸든지, 아니면 사회 환경을 조금이라고 더 나은 환경으로 개선을 하든지 해서 이 세상이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십시오. 내가 이 세상에 살아서 이 세상이 조금 더 더러워졌다는 말을 들어서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서 이 세상이 조금 더 불의해졌다는 말을 들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나의 작은 사랑 작은 봉사 때문에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누군가 더 쉽게 숨을 쉬면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인생은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공은 결코 거창한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실천할 때 우리의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입니다. 2008년도 새해에는 여러분의 삶이 다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생명의 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가지가 되셔서 많은 열매를 두루 맺으십시오. 하나님과 이웃을 힘써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는 존귀와 영광을 돌리시고 예수님의 좋은 제자들이 되십시오! 아멘.


송구영신 예배 설교문.hwp

송구영신예배 영상 보러가기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