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시편 1편 1-6절                     

제    목 : 말씀의 생활화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간한 ‘세계축구기록 2010’에 따르면 축구스타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하던 시절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외국인 선수 중 최고 기록입니다.

그런데 골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1978년부터 은퇴를 선언한 1989년까지 경고를 딱 한 번만 받았다는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친 리그에서 겨우 한 번의 경고만 받으며 선수생활을 했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FIFA는 ‘20세기 아시아의 선수’로 차범근을 선정하며 “그는 탁월한 실력을 지녔으며 경기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자기 절제’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삼손은 특별한 힘을 가졌지만 절제가 부족했기에 힘을 잃고 비참한 신세가 됐습니다. 절제는 곧 성공의 키워드입니다. 일본의 사상가 미즈노 남보쿠는 저작 ‘절제의 성공학’에서 ‘절제는 인생을 만들어가는 도구’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갖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말을 절제할 수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10장 19절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 말씀의 역할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어거스틴도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는 그 인생이 변했습니다. 그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아이의 아버지가된 그는 방탕한 생활과 술 취함과 못된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때문에 거듭나고 구원받아서, 기독교 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또 어거스틴 때문에 구교와 신교가 다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어느 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말씀을 깨닫고, 모든 율법으로부터 해방을 받아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리교를 시작한 웨슬레도 말씀(벧전 1:4)으로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분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분이 신혼 여행을 가는 도중에 신부하고 싸웠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말도 안하고 등을 돌린 채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냥 멍청히 앉아 있다가 웬 책이 책상 위에 있어서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신랑의 모습을 보고 속상해진 신부는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신부한테는 신경을 안 쓰고 그 책만 뒤적거렸습니다. 그 책에서 '하나님', '세상', '믿음', '영생', '사랑'이란 글자가 눈에 뜨였습니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스무 번쯤 읽었는데, 그 내용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스무번쯤 읽고 나서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그 분은, 그 성경 구절 하나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주일에 교회를 찾아서 들어간 것이 시작이 되어 올해로 십 년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눈에 영원한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사람의 영혼 속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사는 길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태도와 삶이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없이 거룩해질 리가 없고, 진리가 없이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또 기도할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변화 시켜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 같다고 합니다.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비친 나의 모습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건강하고 평화가 있는 사람들은 늘 순간순간 자기를 검토하면서 자기의 때묻은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자신을 씻음으로써 양심을 새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AFKN을 보니까 미국의 NBC방송에서 한국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하더군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 제목이 "Kingdom of Fake"이지 뭡니까? "가짜의 왕국"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표를 전부 가짜로 만들어서 국내에서도 팔고 전세계로 수출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천만 명이 그 프로그램을 보았을 텐데, 한국은 '가짜의 나라', '거짓의 나라', '양심 없는 나라'로 낙인이 찍혀 버린 것입니다. 참 부끄럽고 기분 나쁘고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이 사회의, 이 나라의 양심이 누구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가짜 상품의 왕국'이라고 알려진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 백성들의 가슴이 양심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믿는 사람들부터 출발하여,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양심을 싹트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의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우리 자신이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 양심은 죽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중에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 나갈 때,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이 나라의 양심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양심을 살려 줍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승리하게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투쟁입니다. 육체적인 아픔으로 인한 전쟁이요, 마음의 아픔으로 인한 전쟁이요,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인한 전쟁입니다. 또 우리는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사업 때문에 날마다 전쟁을 합니다. 이 전쟁을 이겨 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건하게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말씀의 힘으로 어떤 적과도 싸워서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이 말씀이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머리가 되고 호흡이 되어서 우리를 강하게 할 때, 우리는 이 인생을 얼마든지 승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에 대해서 네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좋아하는 자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 시편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 말씀을 좋아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


시편 1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구절들에는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이 네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여호와의 율법(말씀)을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즐거워한다'는 단어는 그저 좋아한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어로는 'delight' 인데, 이것은 보통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스크림도 '아이스크림 딜라이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컵에다 아이스크림을 가득 집어넣고 그 위에 빨간 체리를 얹어 놓은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면 고함을 지르고 야단이 납니다. 그 정도로 여호와의 율법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율법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 율법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머리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씹고 또 씹어서 피와 살이 되고 뼈가 되고 머리카락이 되고 호흡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인격의 전부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임하는네가지축복을구체적으로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1절의 '복 있는'이란 말은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행복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보통 복을 말할 때는 오복(五福)을 말하는데, 이가 좋고, 아들 낳고, 부귀영화 누리고 하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가졌는데도 불행한 사람을 저는 여럿 보았습니다. 반면에 아들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내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이 나를 불행하게 하려고 해도 내가 불행할 것을 거절하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악에게 지지 않습니다. 악은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우리에게 죄의식을 줍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악과 싸워서 이기기 때문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깨끗한 물가에 심어 놓은 나무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때의 '나무'는 20m쯤 높이 솟은 '데이팜'이라는 나무입니다. 특별히 여리고라는 도시에 가면 이 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잎사귀가 크고 아주 길어서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둘째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열매가 많습니다. 왜 열매를 잘 맺을까요? 나무가 쭉쭉 뻗으면서 잘 크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시냇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내는 물 흐르는 데 아닙니까? 물도 깨끗한 물이 흐르니까, 그 깨끗한 물에서 계속해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70%가 물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나쁜 물을 마셔 놓으면 70%가 병이 듭니다. 제가 듣기로는 물만 마셔도 두세 달을 산다고 합니다. 그만큼 물이 중요합니다. 물속에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밤이나 낮이나 영양분을 공급받으니까 잘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영양분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영적 영양분을 계속해서 공급받으면, 그것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70%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놓으면, 건강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런 사람은 악을 좋아할리가 없습니다. 악을 싫어하니까 악한 자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삶이 정결해지고 생각도 깨끗해집니다.


이러니까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렇습니다. 좋은 과실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누구든지 먹고 싶은 사람은 나를 통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나 자신을 통해서, 내 인생을 통해서, 내 힘을 통해서, 내 지식을 통해서, 내 가진 것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든지 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이것은 잎사귀가 말라 비틀어지지 않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잎사귀가 너무 청청해서 기름기가 돌고 사람들이 쳐다만 봐도 위로가 되고 힘이 생기고 삶의 재미를 느끼게 될 정도로 신선하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나무가 좋은 시냇가에 있어서 신선한 물을 항상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만사가 형통합니다. 이 사람은 하는 것마다 다 잘 됩니다. 그래서 줄 것이 많습니다.  시간도 줄 수 있고, 재주도 줄 수 있고, 힘도 줄 수 있고, 사랑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가난합니까? 여기서의

가난은 돈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영혼과 육체와 인간 관계의 가난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형통'이라는 단어는 여호수아서 1장 8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형통'은 영어로 "good success"입니다.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건드리면 되고 만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 사람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번창하게 해주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놀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는 일을 번창하게 해 주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제(前提)를 간과하지 마십시오. 이 축복의 약속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참 열매가 있는 삶을 살고, 보기만 해도 신선한 모습을 갖고 있고, 무엇65을 해도 번창하는 사람, 이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 자신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좋아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청청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합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읍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이 축복을 흠뻑 누림으로써 언제 만나도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말씀의 축복.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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