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의 섭리

시69:13-18, 시107: 2- 20


한 젊은 의사가 알프스 몽블랑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알프스 등산로의 출발 지점 샤모니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정상에 깃발을 꽂고 하산하던 중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자 마음의 긴장을 풀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안전을 위해 감았던 로프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프를 풀어 버리고 안내원의 도움 없이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했습니다. 안내원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습니다. “선생님, 아직 몽블랑 정복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샤모니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들은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못해서 앞서 가던 의사는 급경사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를 도와 줄 장비가 없었으며, 더구나 그가 스스로 로프를 풀어 버렸기 때문에 안내원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앞서 가던 의사의 시체는 비탈 아래 기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자기를 환영할 준비로 바쁘던 그 시각, 의사는 자신을 지탱하던 로프에 싫증을 느껴 그것을 풀어 버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정복한 그 산자락에 묻히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로프’처럼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것에 싫증을 느끼지만 영원한 안식처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 인도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려면 그의 뜻과 섭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시요 삼위일체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그의 피조물을 유지케 하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주권은 완전하며 포괄적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시135:6)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도서에 보면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 4:28)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엡1:11)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 대해 어떻게 섭리 하실까요?


첫째,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시69:13)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 박사가 별들이 빛나는 어느 날밤 프린스턴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줄곧 밤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습니다. 한참 후 그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쨌든 원자가 저 하늘을 파괴하지는 못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의 섭리나 주권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처럼 인생의 생사 화복은 하나님께 있지 세상의 주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주권자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어 세운 사람일뿐이며, 주권자 중의 주권자로서 절대 주권을 가진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시며, 생사 화복을 주고자 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16:6)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시25:10)


둘째,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미워하는 자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어느 중국 가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정에 30여명이 모여 숨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가정의 아들과 어머니가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자주 집을 비우자 속이 상한 남편이 “내 며느리는 반드시 믿지 않는 여자로 내가 고를 것이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반드시 예수 믿는 여자를 고르셔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속이 더욱 상한 아버지는 그만 가정교회를 경찰에 고발해 버렸습니다. 경찰에 붙잡혀간 30여명의 성도들은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겠다며 30명이 유치장에 앉아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댔습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와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전도해 버렸습니다. 시끄러운데다 세끼 밥까지 먹여주어야 하니 경찰도 낭패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불러 그까짓 일로 고발했느냐고 호통을 치고 성도들을 내보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사도행전 시대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시69: 14)


셋째, 권세와 깊음이 삼키지 못하게 하십니다.(시69:15)

조선조 태종이 모든 정사를 세종에게 넘기고 풍양궁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두 아전이 서로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이 말하였습니다.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에게서 나온다” 이에 을은 “아니 그렇지 않다. 한 계급이 오르거나 한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비록 임금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서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그 말을 엿듣고 나서 “지금 이 글을 가지고 가는 아전을 한 직급 올려 주기 바라오”라는 글을 종이에 써서 갑을 시켜 세종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은 그 쪽지를 받아 나오다가 갑자기 복통이 나서 그 쪽지를 을에게 대신 부탁하였습니다. 다음날 인사 발령 내용을 보니 을은 직급이 올랐으나 갑은 그대로였습니다. 태종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태종은 경탄하여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주권자에게 은혜를 받아 성공해 보겠다고 탄원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 말미암느니라"(잠29:26)


넷째, 인자와 많은 긍휼을 베푸십니다.

샤르니(Charney)라 하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의 노여움을 사서 토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서 버림받고 바깥 세상으로부터는 완전히 잊혀진 듯이 보였습니다. 고독과 절망에 빠진 그는 작은 돌 조각 하나를 들어 그 쓸쓸한 독방 벽에다가 이렇게 새겼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그런데 어느 날 그 토굴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들 틈에서 푸른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그것은 벽 위에 뚫린 작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향해 뻗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넣어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 그 푸른 잎사귀에 부어 주곤 했습니다. 새싹이 마침내 아들다운 파란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될 때까지 자라났습니다. 꽃나무가 탐스러운 꽃송이를 터뜨리자 그 고독한 죄수는 전에 벽 위에 새겼던 글귀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하나님이 돌보신다”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이 죄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샤르니가 갇혀 있는 독방 옆에는 또 한 사람의 죄수가 갇혀 있었는데, 그에게는 감방 면회가 허락된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아버지를 면회 왔다가 샤르니의 감방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물론 그 토굴 감옥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꽃나무를 보았고, 이 소식은 곧 조세핀(Josephine) 왕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은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상냥하고 진실한 여인이었으므로 그녀는 곧 황제에게 샤르니를 석방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샤르니는 그의 꽃나무를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꽃나무를 소중하게 돌봐 주었다 합니다. 토굴 감옥에서 피어난 그 꽃나무는 샤르니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시69:16)


다섯째, 얼굴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69:17)

중국 내륙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은 1975년 봄 몇 군데 회의에 참석하고 런던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러시아의 공작이 인사를 했습니다. "테일러 목사, 어디 가십니까?' "런던에 갑니다. " "그러면 저하고 함께 앉으실까요?' 두 분은 객차 속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바브린스키 공작이 지갑을 꺼내더니 무엇인가를 테일러 목사님께 건네주었습니다 "이거 작은 돈이지만 중국 선교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 목사님은 수표의 금액을 보고는 깜짝 놀랬습니다 '아니 이거 오십 파운드 아니야. 무슨 실수라도 했겠지? 당시 50파운드는 지금 미화로 몇 만불의 큰 금액입니다 "혹시 저에게 5파운드를 주시려고 한 것은 아닙니까? 이건 50파운드 군요." "천만에요 제가 도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님, 실상 저는 5파운드를 드리려고 한 것인데 50파운드라고 쓰고 말았군요. 이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 테일러 목사님이 선교본부에 와보니 기도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중국 내륙선교회에 송금을 해야 하겠는데 49파운드 11실링이 부족했습니다. 이 부족액을 채우는 것은 기도 뿐 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테일러 목사님이 호주머니에서 50파운드 수표를 꺼내 사무실 책상 위에다 가만히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6:25)


여섯째, 구속과 속량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정하여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00달러씩을 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날, 마을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면서도 멈칫대며 그 돈을 받아 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현관 앞에 나와서 돈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돈 받는 일은 마치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 기간이 끝나고 돈을 나누어주던 사람은 다른 날과는 달리 그냥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우리 돈은 어디 있는 거요?"

왜 오늘은 100달러를 안 주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비와 해와 공기를 무상으로 주는 데도 감사치 않다가 비가 조금만 안 오거나, 많이 와도 사람들은 하나님임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구원의 메시지와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의 머리에 귀한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기념하여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삽니다. 아니 감사는 고사하고 오히려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더 많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가 부족한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시69:18)


일곱째, 대적의 손에서 구속하십니다.(시107:2)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아주 절박한 순간에 무심코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은혜가 진정한 영적 은혜입니다.


여덟째, 하나님의 섭리는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사람들을 모으시고 그들의 조화를 이루십니다.(시107:3)

하나님의 섭리는 조화롭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 28). 모든 일에는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빚어지는 각종 일들도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고 이것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 여러 가지 약들을 혼합해서 조제를 해줍니다. 만일 이 약들을 따로 사용했을 때 독이 되거나 해로운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중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된 약들은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바클레이는 위의 성경 말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선하게 혼합하심을 안다.” 우리의 삶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전혀 선하게 보이지 않지만 이것들을 하나님이 섞으셔서 내어놓으시면 선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신자들도 불행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이것이 선을 이룰 수 있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위대한 의사가 올바른 처방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라”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궁극적으로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화가는 일반인들이 볼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을 이리저리 섞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모든 이들이 감탄하지 않습니까?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시107:3)


아홉째,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성도에게 고통을 주시기도 하고 또한 고통에서 건지시고 함께 하십니다.(시107:4-6)

제임스 톤힐 경은 유명한 모자이크 화가입니다. 하루는 런던의 성 바울 교회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높은 받침대 위에서 하는 위태한 작업이었습니다. 톤힐 경은 일을 하는 도중 서너발씩 뒤로 물러나서 되어져 가는 그림을 살피면서 계속하곤 했습니다. 그를 돕던 하인이 톤힐 경을 바라보니 위험 직전이었는데 경이 반발만 뒤로 내디디면 떨어져 버릴 찰라였습니다. 하인은 얼른 페인트 통을 들어서 그 모자이크 그림에다 던져 버렸습니다. 톤힐 경은 깜짝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림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림이 못쓰게 된 것을 알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하인을 마구 책망하려고 하던 톤 힐 경은 하인의 결단적인 행동으로 비록 그림은 다 버렸지만 자기의 생명이 구원받은 것을 깨달았고 그에게 크게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페인트 통을 그림에 던져 톤힐 경으로 하여금 앞으로 달려가게 하는 길만이 그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결코 우연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진대 비록 낭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꽃줄기를 일직선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잘라야 합니다. 그러면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훨씬 넓어져서 싱싱한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습니다. 병에 약한 꽃나무는 줄기를 대각선으로 자르고 그 자리를 불로 태웁니다. 불로 태우면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지고 나무의 부패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병든 꽃에 가위를 대지 않으면 그 꽃은 곧 시들어 버리고 주변의 꽃들에게도 병을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노련한 정원사는 꽃나무에 가위질을 해야 할 때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훈련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 줄기를 자르는 아픔을 주십니다. 그것이 부족할 경우에는 불에 태우는 따끔한 고난도 주십니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역경 없는 인생은 건조합니다. 바다에 적당한 파도가 있어야 윈드 서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난은 필요한 아픔일 뿐입니다. 고난이 두려워 피하려는 사람에게 역경은 거대한 파도처럼 두렵게만 느껴지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수평선이 보이는 모래밭 위를 걷는 꿈이었습니다. 긴 모래 길은 자신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것, 또 하나는 늘 동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생을 통해 극심한 고통을 당했을 때마다 모래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늘 함께 하신다고 하셨잖아요."라고 그가 물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발자국이다. 네가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는 내가 너를 업고 지나왔단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고 돌보시고, 고통을 당하는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열 번째, 바른길로 인도하시고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십니다.(시107:7)

어느 날 죠지 커팅은 길거리를 가다가 갑자기 마음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을 외쳐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외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외치고는 자기의 길로 갔는데 6개월 후에 그는 그가 말씀을 외쳤던 마을을 한집씩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자기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약 6개월 전에 자기 영혼이 심한 갈등가운데서 죄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디에서인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하나님 이것이 당신으로부터 오는 말씀이라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소서' 라고 기도했는데 다시 한번 어디선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영혼들의 간증은 모두가 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돌아오게 된 것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그리고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은혜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열한 번째,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위경에서 건지십니다.(시107: 19- 20)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하나님께 나라를 지켜달라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데인 족 군사들이 심야에 스코틀랜드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군사들은 경계선 근처에 머물면서 공격을 노렸습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야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데인 족의 장군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모든 병사들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군화를 벗고 맨발로 접근하라" 병사들은 숨을 죽이며 스코틀랜드군의 막사로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운 없는 한 병사가 그만 가시가 돋친 엉겅퀴를 밟고 말았습니다. "아-얏!" 고함소리가 마치 '공습경보'처럼 적망을 깨트렸습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한 손에 신발을 든 데인 족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엉겅퀴가 스코틀랜드를 멸망으로부터 구해낸 것입니다. 그때부터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로 결정됐습니다. 하나님은 가끔 지극히 작고 비천한 것을 사용해 큰 일을 이루십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하나님에게 알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확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변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의 기도는 ‘기도의 고백’이라는 시와 같았을 것입니다. “기도의 언어는 있었으나 기도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소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형식은 있었으나 기도의 내용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입술은 있었으나 기도의 가슴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머리는 있었으나 기도의 발길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생각은 있었으나 기도의 손발은 없었습니다. 기도의 풀잎은 있었으나 기도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기도의 하늘은 있었으나 기도의 땅은 없었습니다.”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알았으면 능력 있는 기도, 하나님이 들으사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존 라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는 시내 관광 여행을 위한 세련된 자동차가 아니다. 기도는 창고로 직행하여 짐을 싣고 돌아오는 화물차다.” 기도는 곧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섭리의 특징은 우주적이고(시103:19), 측량이 불가능하고(요11:7-9, 전3:11), 의롭고 은혜로우며(시145:17), 거역할 수 없습니다.(단4:35)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대상29:11,12, 잠3:6)

지구가 고정된 중심이고 다른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반박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중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천문학을 여는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창조섭리에 관한 분명한 신앙을 갖고 연구한 과학자요 천문학자였습니다. 그의 묘비명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 하나님,바울이나 베드로에게 베풀었던 은총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 강도에게 베푸셨던 그 은혜만이라도 베푸소서"

2. 하나님의 섭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욥1:21, 시119:75)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Moody)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찾기 위해 창세기부터 침을 묻혔습니다. 무디는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기독교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디는 그래서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사용될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 친구들은 무디를 향해 놀려댔습니다. 무디는 그래서 늘 고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독한 시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무디는 미약하나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결국 무디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작고 미미한 것을 놀랍게 사용하십니다. 무디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쳐졌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해야 합니다.(시37:1-40, 시139:10)

인도의 마을을 차례로 순례하던 중, 존 하이드는 한 특정 마을에서 많은 남자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복음의 메시지를 거부했습니다. 그곳에서 첫날 아침을 맞은 하이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을을 걸어서 돌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통증이 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리 두통이 심해도 방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이드는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님 얘기를 해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요량으로 들것에 실려 나무 그늘로 나갔습니다. 순회 설교자가 아파서 나무 밑에 누워 있는 것을 본 여자들은 하나둘씩 하이드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하이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간증했고, 많은 여자들이 회심했습니다. 그중 몇은 세례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이드는 그날 저녁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아침 두통이 심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두통이 없었다면 여자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속수무책 닫힌 듯 보였던 문이 실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어딘가 다른 데 더 효과적인 사역의 문을 여시기 위한 준비일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시107:42)

매튜 헨리라는 유명한 주석가가 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지갑을 빼앗겼습니다. 그 날 그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강도를 만났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첫째로, 이제까지는 한 번도 이렇게 강도들 만나지 않았던 것 때문에 감사하고, 두 번째로, 비록 지갑은 강탈당했어도 나의 생명은 빼앗기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세 번째로, 내 돈을 다 빼앗아 갔어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었음을 인해서 감사하고, 네 번째로는, 내가 강도를 당했지만 남을 강도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강도 만나기 전까지는 생각지 못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병들어보아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파산을 해보아야 물질의 귀함과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있어 봐야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와 사별해보아야 부부가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모반을 피하여 동굴속에 숨었던 그의 곤궁한 처지를 시편 142편에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굴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닳았습니다.

5.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시107: 43)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섭리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나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으로 점철된 날들 때문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먼 훗날 지나온 발자국을 보며 감격할 수 있도록 이 하루도 신실하게 채워가게 하소서. 당신의 은혜로운 섭리 안에서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탓에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줄 아는 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직업을 구하던 중에 은행 수위 모집 광고를 보고 시험에 응시했으나 글자도 다 모르는 사람이 그 시험에 합격할 리가 만무했다. 이에, 낙심한 그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 ! 나는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공부도 못하고 수위 시험에도 떨어져야만 합니까?" 통곡하며 기도하는 그에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 계획은 거기에 있지 않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라." 그는 곧 그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고 이내 봇짐만 하나 챙겨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자기 후손들만은 못 배운 설움을 겪지 않게 하리라는 각오로 무엇이든지 손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고 큰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사업은 번창하였고,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에는 그의 이름이 금융가인 월가(Wall Street)에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가 60회의 생일을 맞던 날, 그는 저명한 재계 인사들을 불러 멋진 생일 파티를 열었다. 그때, 파티에 참석한 한 기자가 제안했다. "선생님 ! 자서전을 하나 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자서전이요 ? 나는 내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데 어떻게 자서전을 쓴단 말입니까 ?" "아, 그렇습니까 ? 그렇다면, 선생님이 글을 아셨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분이 되셨겠군요."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만약 글을 알았더라면 난 은행의 수위밖에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이렇듯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계획해 놓으신 바가 있게 마련이다. 부(富)하든 가난하든, 명석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섭리하시는가 ? 지금 이 순간 깊이 생각해 보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에베소서 1:11)


2. 묵상 및 토의

0 불행하게 느껴지는 날을 은혜의 날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를 묵상해 봅시다.

0 나는 불신 세계에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가?

0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범죄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훈육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0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한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0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 일들을 묵상해 보십시오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하나님의 섭리


인도의 썬다 싱이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열차 승객들에게 요한복음이 기록된 작은 책자들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것을 받아 든 어떤 사람이 보지도 않고 갈기갈기 찢어 창 밖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마침 한 사람이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종이 조각이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그것들을 주웠습니다. 그가 주운 종이에는 ‘생명의 떡’이라는 글이 씌여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알기 위해 성경책 한 권을 샀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찾기 위해 성경을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예화(2): 섭리의 횃불


「아프리카의 횃불」데이빗 리빙스턴은 본래 중국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아프리카로 보내셨고 거기서 선교사 탐험가 의료전도자가 되었다.

「인도선교의 횃불」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도 남태평양으로 가려다 뜻하지 않게 인도로 간 인물이었다. 그는 인도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인도선교의 전기를 마련했다.

때때로 우리는「삶의 방향전환」에 당황해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이「섭리의 횃불」이었음을 알게 된다.


* 예화(3): 공통점


링컨과 케네디 사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1. 링컨은 1860년에 대통령을 했고, 케네디는 1960년에 대통령을 했다.

2. 링컨의 부통령 앤드류 죤스는 1808년생이고, 케네디의 부통령 린든 죤슨은 1908년생이다.

3. 링컨의 암살범 부스는 1839년생이고, 케네디의 암살범 오스왈드는 1939년생이다.

4. 암살범 모두 재판이 열리기 전에 다른 범인에 의해 암살되었다.

5. 링컨과 케네디의 비서 모두 대통령께 그 사건 장소에 가지 못하도록 했었다.

6. 부스는 극장에서 저격하고 창고로 숨고, 오스왈드는 창고에서 저격하고 극장으로 숨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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