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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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부르는 노래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중략)…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역대하 20장 20∼23절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요 믿음·감사의 표현

전쟁 같은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 찬양할 때

우리 위해 친히 싸우시고 승리 가져다 주셔


 ‘안식일의 찬송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시편 92편은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일에 사용했던 예배 시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시간만 있으면 이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시편 92편의 찬양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가득차 있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는 모습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노래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와같이 다윗은 시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온 백성들로 하여금 읽고 묵상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1. 찬양은 믿음의 표현


 다윗의 생애는 찬양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그쳤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때는 언제나 찬양이 가득 넘쳐났습니다. 찬양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충실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찬양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찬양이 없습니다. 믿음은 찬양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호사밧 왕이 모압 자손, 암몬 자손, 세일산 주민 연합군의 침략을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방나라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점령하려고 하는 상황속에서 여호사밧 왕에게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군대도 없었고,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고, 무장도 부실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이 누구와도 달랐던 것은 찬양이 바로 원수를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뿐 아니라 마귀를 대적해서 싸우는 무기가 되고, 더불어 자기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무기는 입술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에 보면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는데 찬양대를 조직해서 군대에 앞서서 노래를 부르며 나가게 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찬양을 부르는 자기들로 인해 감춰져 있던 처소가 다 드러나고 공격 목표가 분명하게 보이게 되는데 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를 받은 왕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하여 싸워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다가왔을 때 원망하며 탄식하지 말고, 늘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 앞에서 부르면 그 찬송을 부르는 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대신 싸워 승리를 얻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들로서 다윗이 가장 많이 지어 찬양했습니다. 150편의 시편 중에 75편이 다윗의 찬양들입니다. 찬양을 부르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다윗은 언제나 찬양을 불렀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찬양하고, 어려울 때도 찬양하고, 평안할 때도 찬양했으며, 전쟁 중에 있을 때도 찬양을 불렀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는 빼앗겼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빼앗겼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얼마나 좋았던지 체면에 상관없이 뛰고 춤을 추며 찬양했는데, 이때 허리띠가 끌러져 바지가 다 내려간 것도 모르고 춤을 췄던 것입니다. 그 장면을 사울의 딸이었던 다윗의 아내 미갈이 목격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윗 왕이 법궤를 모셔놓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들어오자마자 그 아내 미갈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왕의 체면에 바지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춤을 출 수가 있습니까?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노했습니다. “당신 눈에는 내 바지가 벗겨지는 것 밖에 안보이더냐?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을 하기 위해서 바지가 다 벗겨져 내려가도 나는 괜찮다”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그 아내 미갈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 흉을 본 대가로 한평생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예배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이 찬양을 기쁠 때만 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시편 거의 모두가 광야에서 고통 당하던 순간에 쓴 것입니다. 그는 고독한 광야에서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도 고난 중에 쓴 찬송시가 많습니다. 미국의 윌리엄 커싱(William Orcutt Cushing;1823∼1902) 목사님은 갑자기 목에 큰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른 목적에 자신을 사용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300여 편의 찬송가를 썼는데, 그의 신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곡이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419장)라는 찬송입니다.


 우리의 삶이 여호사밧 왕의 치열한 전쟁터와 같고, 다윗 왕의 고독한 광야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전쟁터에서도 찬양할 수 있고, 광야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가 되고,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무기가 되며, 내 마음에 용기와 힘을 가져다주는 격려제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찬양을 하면 곡조를 붙인 기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 찬양은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우리가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괴로움이 있을 때 찬양을 부르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찬양의 노래가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얻어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업을 하러 와서 이렇게 얻어맞고 옥에 갇히니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기도를 하고 난 다음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들의 찬양은 그 밤 온 감옥을 성령의 감동으로 뒤흔들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한 노래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감동을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찬양을 불렀고, 그들의 노래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하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 그 밤에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행 16:25∼26)


 찬양에는 해방을 시키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유와 해방이 없고, 가정이 슬픔과 고통의 쇠사슬에 묶여 있거든 찬양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같이 하셔서 옥문이 열어지듯 모든 문제의 사슬이 끊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곡조 있는 기도인 찬양을 불러 큰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슬픔과 우울한 생각이 올 때 이런 생각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찬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하려 해도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막막하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은 이미 정해놓은 가사가 있고 곡조가 붙어 있으니 그를 따라 부르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슬플 때나 병들 때나 괴로울 때나 바쁠 때나 고달플 때 하나님을 찬양하면 우리를 돕고 위로하는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 나는 제사입니다. 시편 69편 30∼31절에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야훼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재료가 찬송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좋아하십니다. 시편 100편 4∼5절에도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들어오는 사람, 찬송함으로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대대에 미치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독일에게 공격을 받아서 런던이 다 파괴됐고, 국민들은 낙심천만해서 전쟁할 용기가 사라지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이때 신문 기자들이 2차 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해야 될 태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전쟁은 누가 이기겠습니까? 독일이 이기겠습니까? 영국이 이기겠습니까?” 그러자 몽고메리 장군은 “독일이 이길 수도 있고 영국이 이길 수도 있는데요. 노래를 잘 부르는 쪽이 이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이 전쟁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정신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노래할 수 있고, 그렇게 노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연합군은 과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싸워나갔고 결국 전쟁에 이겼던 것입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 엉뚱한 대답 같지만 이 대답 속에 승리의 비결이 들어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안되고 부도가 날 가능성이 있거든 공장문을 걸어 놓고 찬양을 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부를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니 일천만 성도들이 생겨났고, 일천만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찬송을 부르니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신 것입니다. 원망, 불평, 탄식 말고 찬양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큰 축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힘들고 고통 받을 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면 마음속의 불안이 사라지고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주 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늘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욱 풍요롭고 여유 있는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는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라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드시 위험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같이 오기 때문에 위기에 직면했을 때 90%의 사람들은 위기를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나 10% 정도의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감사하며 다시금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나갑니다. 그럴 때 위기는 오히려 더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린 10%의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고 이기게 되나 낙심하고 절망한 90%의 사람들은 위기에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이라는 책을 쓴 페리 노블 목사님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뉴스프링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그는 전혀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목회자요,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빡빡한 일정과 산더미 같은 책임에 치여 살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살기 싫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3년 동안이나 심각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공황 발작까지 겪으면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과 전쟁을 치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풀무불 속에도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내 상황보다 크신 분임을 잊고 있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어려운 것만 자꾸 눈에 보이고, 어려운 일들과 사람들을 뛰어 넘어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은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만을 보고 그 뒤에 도와주기 위해서 서 계신 예수님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고개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눌리는 인생에서 누리는 인생으로 바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를 불러서 예수님을 믿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찾아와서 선택해서 믿게 해주셨으니 예수님이 우리 편에 서 계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이 나흘이 지나 그 집을 찾았습니다. 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통곡하며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무덤을 찾아가셔서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 말씀하시고, 연이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수의를 칭칭감은 나사로가 즉시 걸어 나왔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죽고 썩어 냄새 나는 오라비 나사로만 보았지 그 건너편에 서 계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말씀에는 기적이 따르는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4차원의 영성 중에 ‘말씀’이 있는데, 말씀이 선포되면 4차원의 능력이 나타나서 3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서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위대한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몸이 약하고 병들었거든 “나는 나았다. 나는 건강하다. 지금도 힘이 있다. 씩씩하다. 튼튼하다”라고 한결 같이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권세와 능력이 되어 어떤 약보다 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나는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주님이 기쁨을 주신다. 감사하다”라고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면 그 말이 나가서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너지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내 속에 있을 때는 말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에너지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무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고, 그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내가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면 긍정적인 찬양을 부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찬양이 밖에 나가서 굉장한 에너지가 되고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은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통스럽고 힘들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는 어두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 찬양은 입술의 고백


 또 찬양은 입술의 고백이기 때문에 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했습니다. 믿음은 구원받을 후보가 되지만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의 능력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찬송으로 거룩한 제사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또한 찬양함으로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풀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20절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고, 이사야 43장 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 찬송을 듣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하면 하나님이 너무나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 1∼6절은 찬양이라는 단어로 가득합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얼마나 찬양이 중요하기에 한 장 전체를 찬양하라고 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복잡하고, 모든 것이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이 세가지만 기억하기 바랍니다. “내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찬양은 마귀의 쇠사슬이 다 끊어지고 한 길로 와서 일곱 길로 도망치게 하는 원자탄과 같은 무기가 된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찬양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오늘부터라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지럽고 고통스러울 때 이를 극복하고 다스리기 위하여 기도와 찬송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처럼 유창하게 기도하지 못할지라도 찬송은 그것을 다 감싸주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늘 입술에 찬양이 넘쳐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찬송 중에 거하시는 야훼 하나님! 우리에게 찬송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시고, 하나님을 찬양케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광야 같은 인생, 고통 받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입술에서 찬양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찬양 가운데 임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우리 주님의 능력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없을 때 찬양케 하시고, 찬양속에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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