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우리가 사는 시대의 풍조

​본문: 롬1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사는 사회를 4무주의(四無主義)시대라고 합니다. 네 가지가 없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없는 네 가지는 『무감동, 무책임, 무관심, 무목적』입니다.

첫째, 『무감동』은 둔감한 이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감정이 병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지, 무엇을 슬퍼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둘째, 『무책임』은 도덕적 질병을 의미합니다. 서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사생아(私生兒)』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병든 사회에서는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남한테 전가시킵니다.

셋째, 『무관심』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낳은 결과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기 말고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넷째, 『무목적』은 종교적인 병리 현상을 말합니다. 굉장히 애쓰고 수고하는 것 같으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치도 목적도 분명치 않은 수고를 합니다. 허무한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없을 무(無)』를 『있을 유(有)』로 바꾸면 됩니다. 즉 생각을 바꾸면 이 시대는 정말 살고픈 행복한 시대로 바뀝니다. 그래서 『변화하여야 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건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12:41)

 

이 시대의 풍조는 실로 안타깝고 놀라운 것이 많습니다.

첫째는 생명경시 풍조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자살, 살인 그리고 낙태, 안락사, 장기매매 등이 만연하여 생명윤리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생명은 존재에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생명의 존귀함과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둘째는 음란한 풍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음란한 풍조가 아주 많이 퍼져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간음하는 일이 많고 그 중에는 성매매를 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비디오, 출판물, 전화, 영화, 방송 등을 통해서 음란한 영상들과 음란한 말들과 음란한 글들이 아주 많이 유포되고 있읍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음란한 말과 음란한 행동과 음란한 생각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음란을 조장하는 것들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셋째는 인터넷 풍조입니다. 현대인들은 현실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오가면 살고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현실보다는 사이버 공간에 묻혀 살고 있어 사이버 공간이 현실공간을 잠식해 버린 것 같습니다. 사이버 공간이 현대인이 사는 공간이고 현실은 그림자에 부과합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킹스 캐니언 국립고원의 숲 속에 살고 있는 88세의 할머니를 찾아 갔더니 『컴퓨터가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그것 없이 자연과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이버 공간을 모르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풍조는 IT가 휩쓸어 그 속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넷째는 오늘의 물결은 휴대폰 사용자의 범람입니다. 길거리를 걸어보면 휴대폰을 귀에 대고 걷는 사람, MP3 음악을 다운 받아 귀에 꽂고 다니는 학생들……, 전에는 보지 못한 풍조입니다. 우리나라는 휴대폰 사용자 수가 3000만이 넘었으며 중국은 5억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귓속에 들리는 음성은 먹자, 마시자, 놀자는 약속으로 사람을 바쁘게 하고 이웃에 대한 험담을 즐기고 학생들은 선정적인 음악을 하루 종일 듣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는 시위 풍조입니다. 모든 문제를 대화나 정치로 풀지 않고 시위로 해결하려는 급한 성미의 표출입니다. 독재 치하에서 생긴 의견 표출 형태가 생활화 되어 이제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힘의 정치로 치달으며 이성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민주화로 나라를 살리자는 것인지 집단 이기주의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바울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 기지씩만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 우리는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도로 변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 때문에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도, 말씀을 묵상할 시간도, 천천히 자연을 찬양하며 산책할 시간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나를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가 있을 까요?

 

여섯째는 무조건 뒤따라 하는 풍조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전도지를 하나 보내 주었는데, 『삶을 위한 정지』 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파크라는 양떼가 살고 있답니다. 이 양들은 떼를 지어 풀을 뜯어먹다가, 무리가 많아지면 더 넓은 풀밭을 찾아 집단이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 놈이 뛰게 되면 다른 놈들은 멋도 모르고 뛴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속이 붙어 굴러 떨어져 집단자살을 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글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대학을 가니까 나도, 저 사람이 좋은 차를 사니 나도, 저 사람이 집을 사닌 나도, 저 사람이 돈을 버니까 나도...』

우리들이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세대를 단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얘기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진학율은 83%로 세계 2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통계는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직업구조가 이만한 대졸자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대학진학율은 고학력 실업 문제와 또 다른 차원에서 실무 기술 인력의 부족 문제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높은 대학등록금 문제로 인한 가계의 빚 문제와 청년 신용불량자 양산 문제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진학 과정에도 엄청난 사교육비가 투입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부모 세대가 노후를 준비할 수가 없으며 아이들이 엄청난 교육노동으로 인해 전인적으로 자라지 못하는 문제까지 생각하면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우리 사회는 교육과 관련해서는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낭비하는 사회다』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직업별 보수와 안정성의 차이 때문입니다.

즉 삶의 모든 것을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 직업에 안정성과 높은 보수가 치중되다 보니 사람들이 그러한 직업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 체계를 다르게 설계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재능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면에서 다 같이 존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진학할 때 직업교육과 인문교육을 나누되,높은 세금과 복지 제도를 통해 어느 직업에 있든 일정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공부할 사람만 대학에 진학하게 하되 그들은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시키고 나중에 그들이 사회에 대한 많은 책임을 지면서 높은 세금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모든 가정이 모든 가정의 경제력과 에너지를 교육에 쏟아 붓지만 이것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낭비만 가져올 뿐이고 결국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할 뿐입니다.

교육은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의 큰 틀을 바꾸는 부분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자각과 노력이 함께 있어야 교육이 변하고 우리 다음 세대가 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더 많은 세금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교육과 의료, 주택에 있어서 일정한 수준의 혜택을 받게 하며, 직업별 안정성과 임금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이 있어야 우리 자녀들이 대학진학에만 목숨 걸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소질과 적성을 따라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일곱 번째는 이 시대의 풍조를 한마디로 규정하라면 『쓰고 버리는』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만이 아닙니다. 유행은 물론이고 예술 사조와 경향까지도 참으로 빨리 바뀌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와 충격』에서 낭비의 사회를 진단했습니다. 그는 영속성이라는 이상이 무너지고 일시성으로 이행이 일반화되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행어의 교체가 점점 빨라지고 인스턴트식 명성이 잠깐 사이에 오르내립니다. 지식과 정보의 가치 유효기간이 아주 짧아졌습니다. 심지어 베스트셀러조차 한 달 이상 가는 것이 드물 정도입니다. 광고도 이미지와 상징 기법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도 사이버 공간 어느 한곳에 편안하게 머물지 못합니다. 그 결과 우리 내면을 향한 진지한 물음이 사라졌습니다. 물음이 없으니 진지한 대답도 듣기 힘듭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여덟 째는 사치와 낭비 풍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였으나, 사회전반에 사치향락과 뇌물거래가 확산되고 이기주의와 한탕주의가 만연됨으로 발전과 풍요의 과정 속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고 헌신한 계층과 신음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무책임 풍조와 함께 사치와 향락을 일삼을 때 그 결과가 어찌되겠습니까? 행복을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햇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제를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즉 정신적 절제와 물질적 절제입니다. 정신적 절제는 분노가 일어날 때 노(怒)하지 말며, 시기가 일어날 때 시기하지 아니하며, 탐욕이 일어날 때 탐내지 아니하며, 음욕이 일어날 때 음란하지 아니하며, 말을 많이 하게 될 때 그 말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절제는 술이나 담배 같은 무익한 소비는 금지하여 사치와 일락에는 돈을 쓰지 아니하며, 자기를 위하여 쓰는 돈은 언제나 절제하는 것으로, 의인(義人)의 하는 일입니다.(고전7:30-31) 그리고 전기 한 등,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도 절약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1-5),

『화 있을진저 너희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눅6:25)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아홉째는 미혹의 시대입니다.

근 십 년 사이 국내에는 굉장히 많은 수의 신흥 종교들이 생겨나고, 또 유입되고 있습니다. 한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파악된 국내의 종교는 약 35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토속적인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흥 종교들이 특히나 급성장하여 그동안 51종파나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런 종교들이 점점 성장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비율은 오히려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성장하는 종교들의 특징은 대부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교주로 모시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피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특히 기존의 기독교에서 벗어난 이단 종파가 많이 생겨, 기성 교회들을 비방하고 적대시 하는 것을 전략으로 사용해 기독교계에 큰 피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땅에 진리가 전파되지 않을 때 많은 부작용들이 생깁니다. 잘못된 종교는 사람들의 인생과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진리를 믿는 기존의 성도들이 더욱 자신 있게, 담대하게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거짓 영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1-7)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조들 특히 생명경시풍조와 음란풍조, 물질만능주의 팽배 등을 경계하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수없이 많은 유혹이 우리를 도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겸손과 온유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승리로 이끄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구원의 하나님,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시대에 쫓기며 사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묵상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악한 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거하지만,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성령의 사람으로서 승리의 삶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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